우리의 소리, 판소리
2023. 6. 7. 19:00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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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가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세계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문화재청은 1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 선정위원회가 우리나라 판소리를 비롯한 세계 28개 무형유산을 제2차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보호 협약에 의해 판소리가 세계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자동 등재될 예정이며 판소리의 세계 무형문화유산 등재는 2001년 종묘제례악에 두 번째이며 마침내 판소리는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판소리에서의 ‘판’은 ‘씨름판’ ‘굿판’ ‘판놀음’ 등에서 쓰이는 것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판’과 고리의 합성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판’은 여러 가지 놀이로 이루어진 놀이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판소리는 판놀음을 벌이고 부르는 소리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또한 ‘판’의 의미를 ‘판에 막히다’로 해석할 수 있어 판소리는 판에 박힌 듯이 정해놓고 부르는 소리로 볼 수 있습니다. 판소리는 평민문화가 발달한 조선 중기 무렵부터 남도지방 특유의 곡조를 토대로 자리잡기 시작했으나 ‘판소리’라는 말 자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부터입니다. 당초에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옹고집타령’ ‘장끼타령’ ‘변강쇠가’ ‘배비장타령’ 등 열두마당이었지만 현재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다섯마당만 전승되고 있습니다. 판소리는 흔히 서양 오페라와도 비교되지만 특유의 장단과 선율, 창법, 여기에 극적인 효과를 더하는 아니리(말), 발림(몸짓)을 사용하는 독특한 멋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한명의 소리꾼이 여러가지 역할을 소화해내며 서너시간 이상씩 하므로 이는 누구에게나 경이로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판소리 12마당은 조선 후기에 하나씩 사라져 조선 말기에 활동하던 명창을 마지막으로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다섯 마당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전승이 끊어졌습니다. 그리해 현재는 판소리 다섯마당 즉 춘향가, 심청가 등 이렇게 불리게 된 것입니다. 12마당에서 5마당만 남게 된 이유로는 판소리가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해주는 내용들이 주를 이뤘을텐데 양반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양반들의 기호에 맞는 내용으로 변화됐을 것이라는 추정과 그 사설의 내용이 외설(猥褻)하고 황탄(荒誕)해 조잡한 내용을 가진 소리는 차차 안 부르게 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판소리는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전승되었는데, 지역적 창법의 특징에 따라 ‘창제(소리제)’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전라도 동북지역의 판소리는 ‘동편제(東便制)’라고 부르며, 전라도 서남지역의 판소리는 ‘서편제(西便制)’라고 부릅니다. 경기도와 충청도의 판소리는 ‘중고제(中古制)’라고 부릅니다. 동편제는 비교적 우조(羽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무겁게 하고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고 굵고 웅장한 시김새로 짜여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기교와 수식이 많지 않은 창법으로 사설이 빈틈없이 진행되며 템포가 빠르기 때문에 발림이 적은 판소리입니다. 반면 서편제는 계면조(界面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가볍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고 정교한 시김새로 짜여 있습니다. 그래서 기교와 수식이 많아 템포가 느리고 대신 발림도 풍부합니다. 따라서 서편제에서는 연행적 성격이 더 발달했습니다. 중고제는 동편제도 서편제도 아닌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편제 소리에 더 가까우며 소박한 시김새로 짜여져 있어 성량이 풍부한 창자가 부르기에 좋은 판소리입니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바로 추임새입니다. 고수의 반주는 소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면서 “얼씨구”, “좋다”, “으이”, “그렇지” 등의 감탄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청중의 반응이라는 것이 바로 추임새로 이것이 공연자의 마음을 움직여 공연시간을 늘리게끔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판소리는 공연의 길이가 정해져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공연시간이 한 시간이었다고 하더라도 청중의 반응이 좋으면 서너시간으로 늘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판소리의 가장 큰 특징인 즉흥성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판소리는 소리꾼에게 관심이 집중되지만 이것만으로 공연이 성사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리꾼과 더불어 장단을 맞추는 고수, 그리고 구경꾼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판소리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판소리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습니다. 유추한다면 무당이 굿을 하며 음악 소리에 맞추어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설과, 길거리 광대가 평민을 대상으로 풀어놓은 이야기가 원류라는 설, 그리고 이 둘이 서로 영향을 주며 발달했다는 혼합된 설도 있습니다. 그래도 호남지방에서 예술적인 모습으로 정착되었고 양반층이 아닌 일반 하층민을 대상으로 시작된 예술 문화라는 것이 나중에 양반들에게도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판소리는 순조(재위 1800~1834) 무렵부터 판소리 8명창이라 하여 권삼득, 송흥록, 모흥갑, 염계달, 고수관, 신만엽 등이 유명하였는데 이들에 의해 장단과 곡조가 오늘날과 같이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판소리는 현재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다섯마당만 전승되고 있습니다. ‘심청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가장 비장한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슬프고 비통한 내용이 많아 가락 또한 무겁고 어두운 계면조가 주를 이룹니다. 그 때문에 ‘심청가’는 ‘춘향가’ 다음으로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 ‘심청가’는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이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제비 몰러 나간다.’가 인상적인 문구로 기억에 남아 있는 ‘흥보가’는 중국고사나 시구를 인용한 어려운 한문사설이 많지 않아 서민들의 삶이 잘 투영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웃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청중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판소리이기도 합니다. ‘수궁가’는 ‘별주부전’, ‘토생전’을 판소리로 각색한 것으로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희극적인 요소가 많고 풍자성이 더 짙은 작품입니다. ‘적벽가’는 배경이 전쟁터로 소리꾼의 역량을 가늠하는 판소리로 여겨집니다.
시대를 풍미한 명창 중에는 양반 출신도 있었습니다. 권삼득은 신분이 양반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재질이 뛰어나 글 배우기는 하지 않은 채 판소리만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문중 사람들은 그를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거적을 뒤집어쓴 채 꼼짝없이 맞아 죽기 전 권삼득은 마지막으로 소리 한 번 해달라고 청합니다. 마지막 부탁마저 거절할 수 없었던 문중사람들은 이를 허락하였는데 목청을 다해 하는 소리가 기가 막혔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목숨만은 살려주고 그를 가문에서 내쫓았다고 합니다. 명창 중에는 여성도 있었습니다. 바로진채선(1842~?)으로 그는 고창군 삼원면 월산리 검당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소리에 소질을 보이며 성장하다가 17세 때 신재효 문하에 들어가 명창 김세종으로부터 소리를 배웠습니다. 원래 판소리는 남자가 부르는 소리였지만 신재효와 김세종은 판소리뿐만 아니라 가곡과 춤도 가르쳤습니다. 1867년 7월 흥선대원군이 경회루에서 경복궁 낙성 축하연을 베푸는 자리에 전국의 명창들과 함께 불려 나가게 되었습니다. 신재효는 그녀에게 고사창(告祀唱)을 작곡해주며 판소리 전에 부르게 했습니다. 청아하고 미려한 그녀의 소리는 빼어난 미모와 함께 대원군의 마음을 빼앗았습니다. 그녀는 대원군의 총애를 받으며 운현궁에서 살게 되었으니 그녀의 나이 21세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1929년 명창대회에서는 임방울이 쑥대머리 명창으로 화제를 뿌렸고 음반을 취입하여 20만 장의 판매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후에도 여류명창 김소희가 나왔으며 그의 문하에서 판소리의 주역이 길러지기도 했습니다.
1920년대에는 일제가 이른바 문화통치로 정책을 바꾸면서 판소리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신문사, 레코드회사 등이 주최하는 명창대회가 열렸고 조선성악연구회가 만들어져 판소리가 유행하게 되어 전통음악으로서 그 맥을 계속 이어나가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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