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기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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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속의 소금
소금은 아주 옛날부터 우리의 식탁 위에 올라온 재료인데요.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각종 질병의 근원이 지목되어 천덕꾸러기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소금에 대한 인식이 달랐습니다. 말 그대로 작은 금이라고 불린 것인데요. 소금은 금과 같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았으며 화폐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니 소금은 하얀 황금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사에서 소금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동양에선 중국 산서성(山西省) 운성시(運城市) 해지(海池, Xiechi Lake)의 수면에서 BC 6천년 경 소금을 수확했습니다. 이전 동유럽의 전(前)쿠쿠테니문화의 신석기시대(Neolithic people of the Precucuteni Culture) 유물에서 BC 6천 50년에 해수를 끓어서 소금을 생산했다는 사실을..
2023.05.02 -
고대 영산강 정치세력은 옹관묘를 썼다.
옹관은 항아리나 2개의 독을 맞붙여서 만든 관을 말합니다. 옹관의 길이는 190cm, 그리고 연결하면 그 길이가 2m를 넘습니다. 이것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주로 어린아이의 매장시설로 이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옹관은 중국, 베트남, 일본 등 세계적으로 다 있었던 것으로 영산강 유역의 옹관묘는 다른 지역에 비해 크기가 크다고 합니다. 특히 이 지역의 옹관은 5~6세기가 되면 다른 지역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U'자 형의 대형 옹관을 제작합니다. 대형옹관은 왜 나타난 것일까. 다른 고대국가들, 삼국시대의 목관묘나 고구려나 백제의 석실묘가 아니었습니다. 옹관은 흙은 쌓아 봉분을 만들고 그..
2022.12.06 -
고대 국가들은 왜 죽막동에서 제사를 지냈나.
지난 1992년의 일이었습니다. 전북 부안군 격포면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삼국시대의 제사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다량의 삼국시대 제사유물이 출토되어 학계의 관심을 끈 것입니다. "개양할미[해신(海神)]는 키가 어찌나 큰지 서해바다를 걸어 다니며 깊은 곳을 메우고 위험한 곳을 표시해 어부들을 돌보고 고기를 많이 잡히게 했다." 부안 죽막동 제사 유적은 서해안에 돌출된 해안절벽에 형성된 해식동굴 옆에 만들어졌습니다. 이곳은 백제 때부터 신라, 고려, 조선시대까지 제사가 이루어진 곳입니다. 이 유적지는 바다여신 개양 할미를 모신 곳으로 전설에 따르면 개양할미는 키가 매우 커서 나막신을 신고 서해를 걸어 다니면서 수심을 재고 풍랑을 다스리며 이 곳을 지나는 선박과 어부들을 보호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개양할미는 바다..
2022.12.05 -
신창동 유적이 말하는 마한
마한은 백제가 그 지역을 병합하기 이전의 국가들로 BC 1세기~AD 3세기에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소국들을 말합니다. 문자기록이 많지 않은 시기이고 고대 왕권국가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자료가 빈약하지만 그나마 여러 유적지를 통해 마한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주목할만한 유적지는 바로 신창동 유적지로 1962년 서울대학교 고고학팀이 53기의 옹관(독무덤)을 발굴하면서 처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2년, 신창동 유적은 학술적·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곧바로 사적 제37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수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유적지가 저습지였기 때문입니다. 습지의 지하층은 완전 밀폐되어 공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유물을 ..
2022.12.04 -
낙랑 금제띠고리의 발견, 낙랑은 어디 있었나.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발견된 금제띠고리는 기원후 1~2세기의 낙랑의 유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버클 판에 금실과 금 알갱이로 엮어 만든 용 1마리와 작은 용 6마리가 새겨져 있는 이 유물의 가장 자리는 금실로 꼬아서 마감하였습니다. 길이 9.4㎝, 너비 6.4㎝인 이 허리띠 고리의 화려한 장식과 뛰어난 제작기술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유물에 대해 제작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학계에서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후에 한반도로 유입되었거나 평양을 지배하던 낙랑군이 흉노계 북방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아 제작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석암리 금제띠고리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용 일곱 마리의 눈에서 모두 적색물질이 감입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특정물질을..
2022.12.02 -
전라도 장고형 무덤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고도 하는 장고형 고분은 사다리꼴의 네모형, 뒷부분은 원형으로 열쇠 구멍 모양을 하고 있는 무덤으로 고대 일본 지배자들의 무덤 모양입니다. 이는 일본역사의 자존심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이러한 형태의 무덤은 일본에서만 보이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일단 일본에서 행해진 전방후원고분은 서기 3세기 중엽에서 6세기 후반에 걸쳐 일본 고대국가형성기에 조성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시기를 아예 고분시대라고 일컫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러한 무덤과 야마토 정권 형성에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이러한 무덤을 조성하려면 대규모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최고 권력자나 지역의 유력자의 무덤으로 알려진 전방후원분은 일본 전역에 2000여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 역대..
2022.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