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 충격을 준 전곡리 주먹도끼 발견

2022. 5. 31. 21:0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선사시대부터 고조선이야기

728x90

 

전곡리 주먹도끼

위 사진은 무엇인지 아나요. 바로 전곡선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입니다. 학교 역사수업시간에 흔히 배우는 것인데요. 바로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지요. 이 유물이 발견된 것은 1979년경이었습니다. 미군병사 그렉 보웬이 한탄강변에서 발견한 것인데 이것이 전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 이유는 당시 관점으로 동아시아에서는 전기구석기 문화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는데 이 주먹도끼의 발견으로 기존의 이론을 폐기되어야 했습니다. 그 기존의 이론은 바로 모비우스(Movius) 같은 학자들이 주장한 '구석기 문화 이원론'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모비우스 학설은 전곡리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됨에 따라 폐기되어야 했다.

이 이론은 모비우스라는 가상의 선을 만들어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는 지역과 발견되지 않는 지역으로 나누고 거기에 따라 인류의 발자취를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석기가 동아시아지역에서 발견되지 않았음을 근거로 하여 동아시아 지역에는 인류가 좀 더 늦게 이동하지 않았나 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석기의 발견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모비우스 학설은 그 힘을 잃었습니다. 그럼 아슐리안 석기란 무엇이냐?
 바로 프랑스의 생 아슐(St. Achule) 지방에서 대대적으로 발견된 유물로 양쪽면을 가공하여 사용자의 손에 맞게 제작된 석기라고 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다용도로 제작된 맥가이버칼을 연상케 하는 도구로 약 70만 년전에 처음 제작되어 철기시대의 유적지에서 발견될 정도로 혁신적인 유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석기는 주로 백인들의 주거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백인들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곡리에서 이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백인조상만이 첨단석기를 사용했다는 생각은 폐기처분해야만 했죠. 
물론 전곡리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를 포함한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주먹도끼들은 전체 면을 가공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서 아프리카, 유럽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아슐리안 주먹도끼에 비해 초라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손에 잡히는 부분은 원래대로 두고 날 부분만을 가공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죠. 또 잔손질을 정교하게 가하지 않은 편이어서 거칠고 투박한 편인데요. 학자들은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유럽과 아프리카 쪽은 입자가 매우 고운 부싯돌을 이용하여 만든 주먹도끼인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단단한 규암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를 주목할 것은 그동안 주먹도끼가 주로 프랑스와 북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되었는데 뜬금없이 한반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간지역에서 이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그것보다 발달기술이 뒤떨어진 올도완 석기가 인도네시아나 중국에서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주먹도끼를 제작한 거 아니냐는 생각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주먹도끼를 발견한 그렉 보웬

이 유물이 나온 전곡리 유적지에 대해 일본 도쿄대학에서 연대측정했을 때 약 27만 년전의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그러던 86년, 국내 한 연구진이 이 유적지가 약 4만 5천년전의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연대측정결과가 차이가 났던 이유는 연대측정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도쿄대학실험실에서 이루어진 것은 포타슘/아르곤 연대측정법이었는데 이 방법은 포타슘의 자연반감기가 매우 길기 때문에 50만~1백만 년이 채 되지 않은 암층에 적용했을 경우에는 오차범위가 꽤 크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를 신뢰할 수 없었던 국내 대학의 한 교수는 발열광연대측정법으로 조사했습니다. 이 방법은 그 적용범위가 5만~30만년전의 유물이기 때문에 좀 더 정확성을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한편 2003년에는 경기 연천군 전곡리의 구석기유적에 대해 일본고고학 연구팀이 30만~35만 년전의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 연구팀은 현장조사에서 지하 6m에서 출토된 석기층이 이러한 연대를 갖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방사성 동위원소에 의한 연대측정에서는 석기층보다 1m 아래에 50만 년전의 현무암층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내 해당 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유골이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그리고 이 곳 전곡리에서는 8500점이 넘는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고 그에 따라 선사박물관이 세워져 한국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림출처동아시아 사이언스 [주말 고고학산책] 고고학자들도 속아 넘어간 희대의 사기극

그리고 이 전곡리에서 이러한 유물이 발견된 것은 일본에게도 큰 충격이었는데요. 바로 1981년 후지무라 신이치가 석기유물조작사건을 일으킨 것입니다. 후지무라 신이치는 자신이 구석기유물을 파묻고는 출토한 것처럼 꾸민 것이었는데요. 70만 년전의 유물의 발견으로 둔갑한 희대의 사기 사건이 일어난 것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에서 구석기유물이 발견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일본은 한국은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유물이 발견되고 나니 자기네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역사가 한국에 뒤쳐질리가 없다며 조사에 나섰는데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던 학자 후지무라 신이치는 그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희대의 사기극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그의 조작으로 일본의 구석기시대는 잠시나마 연대가 올라갈 수 있었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입니다. 
우리가 보면 이러한 주먹도끼는 그저 그런 돌덩이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먹도끼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여러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요. 일단 돌을 선택하고 그 돌을 기본적인 형태로 가다듬어야 하며 세부적인 잔손질을 거처야 이러한 도구가 만들어집니다.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작업이야 우스울지 모르지만 주먹도끼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입니다. 일단 이러한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것을 만들기 위한 공정이 머릿 속에 그러져야 하고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진 설계도대로 구현해낼 손놀림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추상적인 개념에 대하여 논리적, 체계적, 연역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이러한 도구를 만들 수 있으며 이러한 것을 아동심리발달 단계에서는 12세 정도에 해당하는 ‘형식적 조작기’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주먹도끼의 제작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유인원과는 다른 인류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지 총남 공주 석장리

우리나라에서 구석기 유적하면 도구뿐만 아니라 생활공간도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70년에 발견된 충남공주 석장리의 구석기 유적지가 그것인데요. 발굴 당시 이 곳에서 집자리가 발견되었고 그와 더불어 구석기인들이 사용한 긁개와 밀개, 새기개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수렵생활을 하며 이동한 구석기인들이 잠자리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의미가 큰 것이었는데요. 탄소연대 측정 결과  ‘3만690년 전’ 유물로 밝혀짐에 따라 구석기 유적지가 맞느냐 아니냐는 논란을 일단락되었고 이 때 탄소연대측정을 처음으로 국내에 실시하게 한 손보기 선생은 연세대 학보에 기고문을 실어 일본인의 식민사관에 의한 선사 편년은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손보기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식민사관이라는 것이 있었으며 그에 따라 일본학자들은 한반도엔 구석기 시대가 없다고 발언하여 우리 민족을 자극하였습니다. 사실 1934년에는 함북 종성군 동관진 유적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어 나오라 노부오가 논문을 발표했지만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는데요. 파른 손보기 선생도 이에 동조하지 않았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같은 자연과학 분석법을 국내에 도입하여 이를 밝혀낸 것입니다. 
또한 구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아슐리안 주먹도끼와 더불어 슴베찌르개가 있습니다. 전곡리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됨에 따라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동아시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잘못되었음이 밝혀졌는데요. 2022년에는 국내 대표 구석기 유적지인 충북 단양 수양개에서 발견된 슴베 찌르개가 4만 636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세계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이르다고 합니다. 이로써 한반도에 구석기 문화가 없었다는 잘못된 주장을 뒤엎고 ‘슴베찌르개 한반도 기원설’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