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와 물음표의 구석기 유물, 흥수아이와 소로리 볍씨

2022. 6. 2. 06:18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선사시대부터 고조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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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구석기인들을 어땠을까.

구석기 시대는 뗀석기를 도구로 사용한 시기로 이동생활을 하며 수렵채집으로 경제를 유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직 농사가 시작되지 않은 구석기시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짐승의 가죽이나 털로 만들어 옷을 입고 나무작대기 끝에 날카로운 돌을 매달아 동물을 쫓던 시기로 생각하는 시대가 아닐까 하는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일반적인 구석기 시대와는 다른 모습의 오래된 유적,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구석기 시대는 문명과는 동떨어진 원시인들이 살던 시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석기의 흔적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존재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가 한 나라 역사의 시발점으로 가치를 갖고 그 나라의 자존심이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데요. 구석기 시대의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 나라 역사의 긍지이자 자랑으로 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구석기시대는 워낙 오래된 시기이고 문자조차 없던 시절이라 구석기 시대의 유적, 유물이라 하면 그 시기의 것들이 맞는지 물음표를 달고 정밀한 조사를 통한 검증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그럼 구석기 시대의 것이지만 물음표를 달고 바라보게 되는 우리나라의 대표유물은 무엇이 있을까요.

흥수아이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바로 ‘흥수아이’입니다. 충청북도 청주시의 흥수굴에서 발견된 선사 시대 인류의 화석으로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흥수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983년 석회산 광산을 찾기 위해 산을 헤매던 김흥수씨에 의해 발견된 ‘흥수아이‘는 이를 발견한 김흥수 씨의 과감한 결단이 있어 가능했는데요. 그가 이러한 뼈 존재를 알려 해당 지역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모든 광산 업무를 중단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제적 타격을 감수하고 그는 역사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이 사실을 충북대학교에 알리게 됩니다. 그렇게 세상에 드러나게 된 ’흥수아이‘는 주변에서 출토된 동물뼈와 석기에 근거하여 약 4만 년 전의 구석기 시대 뼈화석으로 알려졌고 이는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발견된 ‘흥수아이’는 한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에 따라 이를 기념하고자 1997년에는 흥수아이의 전신을 복원하기도 했는데요. 그 때까지 유럽에서는 전신상 복원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아시아에서는 두상이나 흉상 복원이 있었을 뿐, 온 몸이 발견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전신복원이 힘들었습니다. 북한에서도 ‘승리산인’, ‘역포인’등이 발견되었고 이는 시기적으로 흥수아이보다 앞선 것이었지만 머리뼈뿐이었습니다. 그러면 흥수아이가 뼈가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에 대해서 특이한 매장법과 석회암 지대라는 지형적 특수성 덕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넓적한 돌 위에 고운 흙을 10cm두께로 깔고 그 위에 시신을 바로 누인 뒤 다시 흙을 덮고 돌을 올려놓는 독특한 방법이 사용되어 일종의 샌드위치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카리성인 석회암도 뼈의 부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 ’흥수아이‘가 구석기 시대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근거로는 흥수굴 입구가 바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는 점과 구석기 시대의 일반적인 매장방식과 달리 특별한 흔적이나 부장품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치아에 충치가 많은 것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곡물농사가 행하기 이전 구석기인의 치아에서 충치가 발견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뼈의 화석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는데요. 보통 1만 년 전을 기준으로 화석여부를 결정하는데 화석화가 되지 않은 흥수아이를 4만 년 전의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주장한 미국의 한 교수는 어린 아이의 유골이라는 것에만 동의했습니다.

한 반도의 첫 사람일까. 흥수아이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곧 제기되었습니다. 흥수굴 입구가 바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광산 활동으로 파괴되지 않았다면 흥수동굴은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레거리가 없다는 점에서는 의도적 매장에서 확인되는 치레거리는 유럽과 러시아에서 주로 발견된다며 치레거리가 없다고 해서 구석기 시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후기구석기시대에 충치를 치료했다는 점을 통해 반박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흥수아이가 안정된 구석기 시대 층에서 나왔다는 점은 구석기 시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뼈 화석 연대 측정에 여러 차례 실패하여 흥수아이가 구석기인이라는 명확한 증거도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석회암 광산허가개발로 발굴현장이 모두 파괴되어 교과서에서만 그 유적지를 감상할 수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소로리 볍씨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소로리 볍씨입니다. 소로리 볍씨는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의 다층위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이전에 발견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알려졌던 중국 후난성의 11,000년 전 볍씨보다 수천 년 더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2009년 국내 한 대학교수에 의해 소로리 볍씨가 세계 최초라는 것에 대해 근거가 부족하다며 검증되지 않은 가설단계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단순한 볍씨의 발견이 아닌 야생벼에서 재배, 정착까지 이루어지는 변화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소로리가 도작기원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로리볍씨가 1만 5천 년 전의 것이라 하더라도 세계 최초라는 증거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검증되지 않은 단계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일 경우 자민족중심주의로 변질될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게다가 1998년 발견된 소로리 볍씨에 대해 여러 차례 탄소연대 측정이 이루어져 1만 2000~3000년전의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일각에서는 연대측정범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2013년 진행된 연대조사에서 기존과 비슷한 1만 2000년 전 것의 확인되며 일단 연대논란에 대해서는 해소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소로리 볍씨를 연구를 진행한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소로리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불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다만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일 뿐’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소로리에서 이러한 볍씨가 발견되었다면 동남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혹은 훨씬 이전의 볍씨가 발견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소소리 볍씨에 대해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것보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됨을 의미하는 최고(最古)라는 수식어를 다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벼농사

하지만 이후로도 소로리 볍씨에 대한 물음표는 존재했습니다. 물음표를 단 그들의 주장은 과연 1만 5천에서 1만 3천 년 전의 소로리에서 벼의 생육이 가능했냐는 것입니다. 당시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지 않은 시기로 기온이 높아야 재배가 가능한 벼가 소로리에서는 그 재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만 5천 년 전의 것이라 하더라도 문화흔적이 없다면 그 의미가 크게 감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반도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 남부지방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이 완전 정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기존의 견해와 어긋난다고 하였는데요. 소로리볍씨가 이제껏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라는 주장에 대해 소로리가 벼농사의 기원지라면 벼의 흔적이 주변에서 추가적으로 발견되거나 관련 유물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소로리 볍씨가 야생벼와 재배 벼의 중간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 때문에 그에 대한 반박견해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워낙 오래전에 있었던 인류의 흔적이기 때문에 진위여부와 의미부여에 커다란 숙제를 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구석기시대의 유물입니다. ‘흥수아이’와 ‘소로리 볍씨’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객관적이고 대중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학문적 성과로 구석기 시대의 역사 유물이 평가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한반도에 발을 딛고 살았던 사람들의 유산을 보존하는 것도 후대인들에겐 또다른 역사적 사명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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