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이 된 강화도령
2023. 3. 15. 09:42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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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25대 왕은 철종입니다. 강화도령으로 불린 그는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었을까. 당시 왕위에 오를 수 있던 사람은 철종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남연군의 아들 흥선군 이하응 당시 30세의 나이였고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종손인 이하전으로 당시 8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은언군의 손자 이경응이 나이는 22살, 은언군의 손자 이원범이 나이 19세였습니다. 이 외에도 이하응의 형제들이 왕위에 오를 자격이 있었습니다. 왕위를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은 왕실에 있었고 그에 따라 이하전이 유력해 보였습니다. 그에 따라 이하전이 거의 내정되었다시피 되었는데 중간에 강화 도령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하전은 매우 영특하고 기개도 넘쳤기 때문에 차기왕으로 적합했을지 모르나 당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에게 필요한 것은 똑똑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김조순(1765~1832)의 딸이었던 대왕대비 순원왕후는 안동 김씨 권력에 방해가 되지 않을 허수아비 왕을 원했고 적임자가 바로 이원범이었습니다.
그럼 이원범은 후보자로서 어땠을까. 그는 왕족이었지만 역적집안의 후손이었습니다. 이원범은 사도세자 서자인 은언군의 손자였고 은언군은 1779년 정조 3년에 장남 상계군 역모사건이 발각되면서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1801년에는 그의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가 천주교를 신봉했다는 이유로 탄핵받아 사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은언군의 서자이자 철종의 아버지는 전계대원군으로 부모와 형, 형수의 죄에 따라 연좌되어 강화부 교동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이 때 이원범의 나이는 11세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15세 때에는 그의 맏형인 회평군이 또다시 역모에 연루되어 사사되었습니다. 그러더니 4년 뒤에는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왔는데 이 때 그에게 사약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왕으로 받든다는 봉영행렬이었습니다. 그를 왕위에 오른 것은 안동 김씨의 노력이 컸습니다. 그리고 이원범을 왕으로 모시기 위해 파견된 행렬을 그림을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강화행렬도」입니다. 그런데 역적의 아들이었으므로 이는 후대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철종이 왕이 되기 전의 행적과 그의 집안에 대한 기록을 파기하라고 합니다. 이를 지시한 것은 순원왕후로 바로 안동 김씨 집안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이 얼마나 허접하면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졌는지 일성록이라던가 승정원일기를 뒤져 은언군과 관련된 자료를 마치 자를 대고 칼로 도려낸 것처럼 삭제해버린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강화도령에서 왕이 된 철종은 아무래도 왕실의 예법이라던가 조정대신들을 대하는 과정이 낯설고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를 왕을 만드는 과정에서 순원왕후는 강화도령을 자신의 아들로 입적시킵니다.
‘밤중마다 광기가 잠저의 남산에서 보였으며, 여위가 갑진을 건널 적에는 오색무지개가 큰 강에 다리처럼 가로 질러 있었으며, 양화진에 이르렀을 적에는 양떼가 와서 꿇어앉아 맞이하여 문후하는 형상을 하였습니다.’ 『철종실록』
‘(임금께서는) 순조 신묘년(1831) 6월 17일 정유에 경행방의 사제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이 때 순원왕후의 꿈에 영안 국구(김조순)가 한 어린 아이를 올리면서 말하기를, “이 아이를 잘 기르시오.”하였는데 오아후께서는 꿈에서 깨고 나서 그 일을 기록하여 두었었던바, 그 후 임금이 궁궐에 들어오게 되자 이를 살펴보니 의표가 꿈속에서 본 아이와 같았습니다.’ 『철종실록』
철종의 즉위와 관련하여 있지도 않은 강화도의 양떼가 등장하고 순원왕후의 꿈이야기도 나옵니다. 사실 철종과 관련하여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것은 그가 왕위로 즉위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강화도령이라 불린 철종이 강화도에 산 것은 5년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강화도령이라 불리기에는 5년이란 시간이 결코 긴 시간이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강화란 명칭을 붙인 것은 왕 자체를 미천한 출신인 것처럼 보이려는 당대의 역사 조작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왕위에 오른 철종의 나이는 19세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미혼이었습니다. 당시 혼인나이로는 늦은 편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순원왕후가 철종의 혼례를 주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금혼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1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혜당댁(김수근) 나귀는 약식을 잘 먹고, 호판댁(김좌근) 큰 말은 하도 물려 약과를 안 먹는다“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철종 때 세도가 안동 김 씨 집에 연회가 있을 때면 고기와 술이 산과 바다를 이루었으며 그들은 집안의 나귀와 말에게 장난삼아 약식과 약과를 먹였습니다. 당시 "높은 벼슬아치의 집에는 약식이 썩어 나, 가축이 사람의 음식을 먹어도 이를 말리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풍년이 든 해의 겨울인데도 아래 백성들은 오히려 헐벗고 굶주리는 자가 많습니다."라는 상소가 올라오던 시절이니 백성들이 힘든 시기였음에도 세도정치라는 아래 권세가들의 부정부패가 심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철종의 장인인 김문근은 자신의 생일에 상평통보 스무 말을 지붕 위에서 길바닥에 뿌려 거리의 아이들이 아귀다툼을 벌였고, 대원군의 둘째 형인 흥인군 이최응은 7곳간에 쌓인 꿩고기와 동태가 따뜻한 날씨에 썩어가 악취가 풍기니 이웃에 나눠주자는 청지기의 제안을 듣고도 "너는 먹는 것을 좋아하느냐? 나는 모여 쌓이는 것을 좋아한다"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철종은 그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뿌리치고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하긴 했을까. 순원왕후의 수렴청정기간은 3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안동 김씨를 견제하기 위해 노론에 의해 희생된 증조부 사도세자의 존호를 왕으로 격상하자고 제안하엿습니다. 그리고 1862년(철종 13년)에는 삼정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엿습니다. 삼정은 전정, 군정, 환정 등 조선정부가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세금입니다. 전정은 농사짓는 땅에 매기는 토지세인데 이것에 대해 권세가들의 토지에서는 전세를 걷지 않고 농민들에게 수취하였는데 토지가 없음에도 장부를 허위조작하여 세금을 걷거나 황폐한 토지에다 세금을 매겼습니다. 한편 비옥한 토지를 원장부에서 누락시켜 조세를 빼돌렸으며 도결이라 하여 전정은 1결당 4두이지만 2배인 8두로 걷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군정이라 하여 16세에서 60세의 남성들에게 군포를 거두었는데 이 과정에서 죽은 사람에게 세를 거두는 백골징포, 어린이에게 세를 거두는 황구첨정, 60세를 초과한 노인에게 세를 거두는 강년채, 도망친 자의 친척에게 세를 거두는 족징, 오가작통법이라 하여 한 가구가 도망치면 다른 4가구가 감시를 똑바로 하지 못한 책임을 져 도망자의 몫까지 내게 하는 인징 등이 있었습니다. 본래는 춘궁기에 먹을 것이 없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관에서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에 되받는 바람직한 의도의 복지제도였으나 세도정치 때는 각종 고리대의 온상이 된 것이 환곡으로 환곡을 이용하지 않는 자에게 억지로 빌려주고 강제로 받아내는 늑대, 높은 이자를 매긴 장리, 빌려주는 곡식에다가 쌀겨, 모래, 돌 등을 섞거나 물로 부려서 양을 속이는 분석, 이외에도 장부조작, 허위기재등으로 전임관리나 지방의 아전들이 잇속을 챙겼습니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 삼정(三政)의 잘못을 바로잡는 임시 관서가 바로삼정이정청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전정에서 모든 부가세의 도결을 철폐하고 궁반전 등 지나친 도조징수를 금하고 군역세는 연령을 준수하여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유생 또는 사대부를 사칭하여 군역을 면제하려는 자들을 가려내도록 했으며 환곡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토지 1결당 2냥씩 징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정책을 주도하는 삼정이정청의 관리자들이 판부사에 김홍근과 김좌근, 그리고 판돈령에 김병기, 지사에 김병국이었습니다. 안동 김씨가문 사람들에게 개혁의 칼날을 맡겼으니 제대로 될 리 없었습니다. 철종은 개혁의 의지는 갖고 있었으나 현실은 너무나도 암울했습니다. 썩은 가지만 잘라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뿌리까지 썩어있던 셈입니다. 그리고 1863년 갑박한 현실에 의욕을 잃고 건강마저 악화된 철종은 승하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나이 불과 33세, 그가 강화도에 머물렀다면 어쩌면 이보다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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