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심청전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
2023. 4. 8. 09:45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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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고전소설 중에는 『심청전』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요. 그러면 심청은 소설 속의 허구인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청이가 실존인물이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라도 곡성이 심청이 나온 배경이라는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졌으므로 그는 해안가 마을에 살았다고 생각할 것인데 의외로 곡성이란 곳은 내륙지방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나온 데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던 것일까요.
전남 곡성군 오곡면 송정리가 바로 심청마을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그러면서 이 곳 사람들은 심청이가 자신의 동네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 안에는 심청이가 마을 아낙네들한테 젖을 얻어먹었다고 하는 심청 우물이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이 우물은 마르지 않으니 심청이의 효심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화천이라고 하는 곳에 심청이가 목욕을 했다는 옥녀탕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심청이가 왜 이 곳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할까. 전남 송광사라는 절에는 곡성에 있는 관음사에 대한 창건 기록(절의 역사)을 담은 『관음사 사적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고승들의 이야기가 아닌 서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심청과 같은 효심 깊은 처녀와 맹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심청전의 모티브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심청이 아닌 원홍장이라는 처녀입니다. 그리고 화주승을 따라가던 원홍장이 중국인을 만나 제물을 받고 중국을 건너갔으며 원홍장은 고국을 그리워하며 불상을 고향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기뻐서 눈을 떴다고 합니다. 사실 『심청전』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그러한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심청전과 한 두부분만 일치한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관음사적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심청전과 이야기 대부분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럼 원홍장은 어느 시대 사람일까. 기록에서는 서기 300년의 사람, 즉 삼국시대 사람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관음사적기』에 따르면 원홍장이 중국으로 건너가서 불상을 보낸 시기가 바로 이 때라고 적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전남 곡성군에 있는 관음사. 여기서 홍장보살상이라고 생각되는 불상머리가 있는데 이 불상의 제작연대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영파시에 남방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서기 300녀 경에 이미 천동사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한반도로 관음사에 있는 홍장보살상이라고 생각되는 조각품처럼 불상을 보내지 않았을까. 관련된 불상은 확인할 수 없지만 4세기에 제작된 중국황실 불교관련 문헌 『변종론』이 있습니다. 여기서 진 효무황제(4세기 초)대에 멀리 불상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3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한반도로 불상을 보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전남곡성에 있는 관음사가 1700여 년 전에 창건되었고 그와 더불어 심청이의 모티브가 되는 원홍장이 1700여 년 전의 실존인물일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불상을 보낸 곳이 바로 절강성으로 이 곳에는 신라초라고 하는 바위가 있으며 서긍이 절강성에서 출발하여 고려로 갔으며 대각국사 의천은 1085년 절강성으로 불교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고려사신들의 객사가 따로 있을 정도였으며 조선시대 화폐 상평통보가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항해술과 선박기술이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동남부를 떠난 배가 바다를 지나 전라도 해안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쉬웠던 것입니다. 따라서 원홍장도 이러한 국제교류의 류트로 중국으로 건너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편 전남 곡성의 심청마을에는 중국상인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마을의 뒷산은 공방산으로 불리우는데 공씨성을 가진 중국상인이 머물렀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럼 왜 중국상인들이 내륙깊숙한 곳이 곡성까지 왔을까. 그것은 바로 철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일본의 왕에게 하사했다는 백제의 칠지도 역시 곡성의 철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곡성에는 노천광산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쇠챙이마을이라는 지명과 함께 철광과 함께 철을 제련하는 야철지가 있던 것입니다.
대신 원홍장의 이야기에서는 인당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데요. 그럼 어느 알 수 없는 작가의 상상의 장치로 인당수가 등장한 것일까요. 사실 서남 해안 지역 주민들은 예전에 안전한 항해를 위해 석상을 빠뜨리기도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적어도 8세기 이전에는 사람을 제물로 삼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발해 사신이 바다에 재물로 던져서 그 책임을 물어 하옥됐다.’ 『속 일본기』
결국 인당수와 용궁도 고대 사람들이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중국 절강성 주산시에는 심가문항라는 항구가 있는데 이지역의 세력가였던 심씨일가의 성을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따라서 소설 속의 심청과 조선이나 일본을 대상으로 한 무역상인이었던 심씨간에 무슨 관계가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심청전』의 줄거리를 기황후와 연결시켜 생각하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소설 속의 배경은 중국 송나라 말년입니다. 그리고 남송이 멸망하면서 원나라가 지배하는데 따라서 심청이가 살았던 시대는 고려시대가 됩니다. 따라서 용왕에게 바쳐질 운명의 심청은 고려시대 때 공녀로 끌려갈 처녀를 의미하며 인당수에 빠져죽을 줄 알았던 심청은 중국황제의 부인이 되어 기황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심청이의 아버지 심학규는 맹인인데 이는 재물에 눈이 멀어 딸은 팔은 사람, 즉 당대의 권력가인 기철로 대표되는 권문세족으로 볼 수 있으며 심청은 중국황후로 다시 환생한 명문가의 딸로 볼 수 있습니다.
원형이야 어찌되었든 곡성에서의 설화도 『심청전』의 이야기가 완성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후에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덧붙이며 현재의 심청전의 이야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 중에는 현종대의 일화가 덧붙여졌을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효종의 양녀 의순공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효종 1년(1650년) 당시 청나라 구왕에게 시집갈 딸을 조선에 요구해 왔습니다. 구왕은 청나라 황제 순치제의 삼촌으로 당시 순치제는 12살의 어린 황제였고 따라서 삼촌이 섭정을 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가 충신이던 왕족 금림군 이개윤의 딸을 효종의 양녀로 삼아 의순공주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16세의 의순공주에게는 시녀 16명과 함께 여의, 유모 등이 따랐으며 이를 본 도성의 백성들이 모두 비참해했다고 합니다. 1650년 4월에 조선 땅을 떠나 청에 도착한 의순공주는 그해 5월 도르곤과 혼인했으나 같은 해 12월에 도르곤이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도르곤이 죽은 이듬해에 청 조정에서는 그가 황제 자리를 엿보았다는 죄목으로 묘를 파내 부관참시한 후 재산과 식구들을 몰수했다. 이 과정에서 의순공주도 도르곤 조카인 정친왕 박락(博洛)에게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이 박락마저 1642년에 사망합니다. 러자 아버지가 베이징으로 가서 청 임금에게 딸의 귀환을 간청했다. 1656년에 간신히 고국으로 돌아온 의순공주는 6년도 채 못 되어 병으로 세상을 뜨니 당시 나의 28세였습니다. 그러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죽은 이후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돌았으니 . 아버지가 청국에서 보내온 많은 비단에 눈이 멀어 자청해 딸을 보내 부자가 되었다거나, 의순공주가 도르곤에게 소박맞았다가 그 부하에게 시집갔다는 등 악의적인 기록이 그것입니다. 한편 민간에서는 그와 관련하여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청국으로 가던 의순공주가 평안도 정주에서 짐승보다 못한 오랑캐에게 몸을 더럽힐 수 없다며 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는데, 시체가 떠오르지 않자 그녀가 쓰던 족두리로 무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곡성에서 전해지는 원홍장의 이야기와 조선의 마지막 공녀 의순공주 이야기가 결합되어 『심청전』이 완성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안타까운 우리들의 역사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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