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을 그린 조선 후기 화가 윤두서
2023. 4. 12. 15:49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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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는 조선후기의 선비 화가입니다. 김홍도나 신윤복에 비해 윤두서란 우리에게 낯설게 들릴 수 있는데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는 자화상이 있습니다. 종이를 뚫고 나올 듯 강렬한 눈빛, 넘치는 기개와 결연한 의지, 그 강직한 얼굴에 고독과 우수까지 엿보이는 풍모를 보이는 이 그림에는 그의 얼굴이 집중적으로 부각되어 있으며 특히 살아 움직이는 듯한 수염이 인상적인 그림입니다. 사실 이 그림은 얼굴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실제로는 가슴 부분의 옷깃과 옷주름까지 선명하게 표현된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종이에 달라붙은 점착력이 약해져 지워져 버렸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그가 죽기 5년 전에 그린 그림으로 자화상으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만큼 조선 후기의 회화의 한 면을 잘 표현하였다고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전에 보여준 조선 초기에서 중기의 자화상이나 초상화는 윤두서의 「자화상」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얼굴은 맑고 표현하다 못해 창백해 보였고 옷차림도 신선이나 도사처럼 보였습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담백해 보일 수 있지만 인상에서 주는 강렬함은 윤두서의 「자화상」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윤두서의 「자화상」은 정면을 뚫어져라 보는 시선이 인상적인데 이런 식의 정면 초상화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재능은 인정받아 숙종의 초상화 제작에 추천되었습니다. 하지만 영의정을 세 번이나 지낸 남구만의 반대로 좌절되었습니다. 남구만은 서인이었는데 그는 젊은 시절 윤선도의 상소를 반대했던 인물로 남인의 수장이었던 윤선도는 효종의 묘지 문제와 자의대비의 상복문제로 서인의 송시열과 정쟁을 벌이다가 유배를 당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실세였던 남구만은 윤선도의 증손에게 숙종의 어전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윤두서의 재능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는 자화상뿐만 아니라 풍속화와 산수화에서도 상당한 재능을 발휘하여 조선 후기 새로운 화풍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남긴 시가 있습니다.
'눈 내려 두터운 구름과 합쳐지니/ 하늘은 낮고 밤은 캄캄하네/
매서운 추위 두려워서/ 매화꽃 일찍 피지 못하네’
이 시는 그가 24살 때에 지은 시로 아버지 윤이후가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자 정치에 휘말려 자신의 목숨은 물론 집안까지 몰락시킬 수 있는 현실을 매화도 피지 않는 겨울에 비유하여 글을 쓴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이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매화가 일찍 피지 못했을 뿐, 언젠가는 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관직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집안의 장손으로 집안을 지켜야 했고 그래서 그는 벼슬 대신 서화와 학문에 정진하며 숨어 지냈습니다. 그러한 그의 노력으로 그는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 누구보다 더 한 재주를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대륙의 주인이 되면서 조선사회에서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생겼고 화풍에서는 중국의 것을 그리는 것 대신 우리의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의 그림은 사람들의 모습이나 옷차림, 그리고 동물들까지 중국풍으로 그렸는데 이제 사람들은 조선의 그림에는 조선 사람과 조선동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실천한 것이 바로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요,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입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선구자적인 화가가 바로 공재 윤두서인 것입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하루 종일 뚫어져라 관찰하고 난 뒤에 그림을 그렸으며 관찰했던 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그리기를 다시 했습니다.
그는 해남에서 꽤 명망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해남 윤씨 어초은공파의 종손으로 그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소위 금수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린 그림들은 양반들이 즐겨 그렸을 법한 인격을 수양하는 차원에서 그린 지극히 개인적이고 철학적인 그림이 아니라 바로 서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들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그의 그림 주제를 보면 단순히 서민을 주제로 삼은 것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서민들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파격적인데요. 1713년 해남으로 내려왔을 해남에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는 윤두서는 집안이 소유하고 있던 백포마을 망부산의 나무를 베어 소금을 굽는 염전사업을 추진합니다. 황무지였던 땅을 경작지로 바꾼 것은 집 없는 사람들의 생활터전을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노비세습제도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노복과 하층민들을 사람답게 대접하는 것이 집안을 길이 보전하는 길’이라고 자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이 가지고 있던 빚 문서를 태우는가 하면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는 등 그는 서민들에게 당시 양반 같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분적 특권의식을 내세우지 않고 하인에게 이름을 불러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지게 된 서민에 대한 애착은 그의 그림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재능은 미술에만 그치지 않고 천연두 예방과 치료법에 대한 저술을 남기고 조선과 일본의 정밀 지도를 그리는가 하면 양반 사대부의 금기를 깨고 악기를 직접 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는 실학에 관심을 보인 것인데 별의 움직임과 땅을 재는 법 등 실생활에 필요한 공부를 하였고 그가 읽은 책들은 그의 생각에도 영향을 주어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자화상」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가치는 풍속화에서도 유효합니다. 「짚신 삼기」라는 작품은 조선 후기 풍속화를 여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선비 대신 농부가 등장하고 자연을 벗 삼는 것이 아닌 짚신을 삼는 것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전체적인 배경은 또한 16~17세기 유행한 산수 인물화를 하고 있습니다. 산수인물화의 주인공이 선비에서 농부로 바뀐 것입니다. 따라서 윤두서의 작품은 서민이라는 소재를 삼으면서도 후대 김홍도의 작품에 비해 선비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배경과 소재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목기깎기’라는 작품에서는 좀 더 풍속화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짚신 삼기」에서 선보였던 산수의 배경을 과감하게 도려내고 풍속적인 모습을 담아낸 것입니다. 산수인물화에서 풍속화로 좀 더 가까워진 것입니다. 앞에서도 윤두서가 그림뿐만 아니라 실생활에 유용한 것에 관심을 가졌는데 「목기깎기」는 그러한 것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윤두서가 그린 「채애도」를 보면 두 여인이 산비탈에서 나물을 캐고 있습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저고리와 긴 차미가 불편한 지 걷어 올렸습니다. 이른 봄날의 모습인지 제비가 날아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일하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첫 번째 작품이자 제대로 그려진 서민 풍속화의 등장입니다. 일에 몰두하는 것 같으면서도 잠시 한 눈을 파는 듯한 포즈도 절묘하게 포착해 내었습니다. 단지 그림일 뿐이지만 일하는 여인들의 피로감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이런 그의 그림들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순수하게 서민풍속화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그림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도 물론 서민풍속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림들은 주로 임금의 정치행정용 참고자료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술보다는 교재에 가까웠던 그림입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저속한 그림이라는 의미를 가진 속화라 불렸고 이러한 이유로 그런 그림들은 서민이 주인공이 될 수 없었습니다. 시장이나 경기장 등 현장을 주제로 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풍속화뿐만 아니라 말 그림에 커다란 애착을 보였고 꽃과 과일을 직접 '예쁘게' 배치한 뒤 그림을 그린 한반도 최초의 화가라고 하니 추사체로 잘 알려진 김정희는 공재를 가리켜 “옛 그림을 배우려면 마땅히 공재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했던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화상」으로 익숙한 윤두서는 우리의 생각보다 조선후기 회화에 있어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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