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역사의 비극 환향녀
2023. 4. 13. 15:52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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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병자호란 이후 2년이 지난 뒤인 1638년,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나라로 잡혀갔던 많은 인질 중에 일부가 돌아왔습니다. 그 중에 윤씨 여인이 있었는데 그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판서 윤근수의 증손녀이자 영의정 윤두수의 종증손녀, 그리고 군수 윤종지(尹宗之)의 딸로 꽤나 이름있는 집안의 자녀였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돌아왔을 때 윤씨의 시부모는 아들 내외의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단자를 예조에 올립니다. 돌아온 며느리에게 조상 제사를 밑길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런 윤씨의 시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장유였고 시어머니 김씨는 김상용의 딸이며, 남편은 장선징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며느리를 내치려한 장유는 봉림대군의 장인이었습니다. 그는 조정의 대신으로 당시 병자호란을 수습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은 둘째 치고 윤씨가 이미 절개를 잃었으며 남편의 집과는 의리를 저버린 것이니 억지로 다시 합하게 해서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포로들을 소환하기 위해 노력했던 좌의정 최명길은 장유의 이러한 요구가 사회적 이익을 저해하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몸을 더럽혔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도 진실을 밝히지 못한 여인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리고 사로잡힌 부녀자들이 모두 몸을 더럽혔다고 볼 수 있습니까.’
하지만 이에 대한 최명길의 의견을 비판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포로가 된 부녀자들은 비록 본심은 아니었지만 변을 만나 죽지 않았으니 결국 절개를 잃은 것이다. 그러니 억지로 다시 합하게 해서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왕 인조도 숙환 부녀에게 책임을 묻는 꼴을 용납하지 않을 뜻을 밝혔습니다.
‘이것은 음탕한 행동으로 절개를 잃은 것과 견줄 수 없다.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조야첨재』
그런 가운데 시아버지 장유가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윤씨의 이혼문제는 사그라지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2년 6개월 뒤 장유의 아내 김씨가 죽은 남편의 유언이라며 다시 아들의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소를 올립니다. 그러면서 ‘며느리의 타고난 성질이 못되어 시어른에게 순종하지 않고 또 편치 않은 사정이 있다.’라고 한 것이니 이는 당시 관념이던 칠거지악을 내세운 것이기도 했습니다. 계속된 요구에 이기지 못하고 장선징의 이혼을 특례로 인정하였는데 그러면서 ‘이혼을 인정할 수 없지만, 장선징이 훈신의 독자임을 고려하여 특별히 그에게만 허락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외의 이혼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영을 내렸으나 장선징의 선례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사대부의 기풍에 누가 된다는 이유로 환향한 부인과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윤씨와 이혼한 남편 장선징은 경주 이씨와 재혼하여 딸 둘을 낳았고, 윤씨의 아들 장훤은 계모 이씨의 아들로 입적되었습니다. 한편 이러한 사실은 아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남편 장선징이 효종비 인선왕후의 오빠로 벼슬은 판서에 이르렀으나 장유 부부가 절개를 잃었다는 이유로 며느리를 내쳤듯이 자신과 그 조상의 제사를 맡아줄 손자 장훤도 사회에서 내침을 당했습니다. 한 재상가가 장훤과 혼인을 추진하자 송시열은 환향녀의 소생이라는 점을 들어 ‘추잡함이 막심’하다며 조롱하고, 실절(失節)에 무감각한 대신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러한 장훤에게는 하급 관직 참봉마저도 녹록치 않았습니다. 환향녀의 아들이라는 주장에 생모와는 연이 끊어져 계모의 자식임을 증명하자 천륜을 저버린 배은망덕한 자식으로 다시 공격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윤씨 여인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장유와 반대되는 소도 올라왔습니다. 왕의 비서실(承旨)에서 근무했던 비서 출신 한이겸(韓履謙)은 “본인의 딸이 청국에 포로로 사로잡혔다가 속환을 내고 돌아왔는데 사위 놈이 내쫓고 다시 결혼을 한다고 하니 원통해서 살 수 없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듯 병자호란 때 오랑캐에게 끌려갔던 여인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라는 뜻의 환향녀(還鄕女)라고 불렀습니다.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 군신관계를 요구하는 청의 요청에 따라 인조의 두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인원은 약 60만 명 정도인데 이중 50만 명이 여성이었습니다. 그에 대해 조선 정조 때 박지원이 지은 한문단편소설 「열념함양박씨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랑캐 장수들이 장안의 재물과 부인들을 잡아갈 새, 잡혀가는 부인네들이 박씨를 향하여 울며, ’슬프다, 우리는 이제 가면 생사를 모를지라, 언제 고국산천을 다시 볼까?‘하며 대성통곡했다’
정묘호란 때 수만 명의 조선인을 끌고 가서 거액의 몸값을 받고 풀어주며 이득을 챙긴 청은 병자호란 때에는 포로들을 확보하는 데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들 포로들 중에는 사대부 집안의 여성들이 많았던 것은 그들은 잡아가야 재물을 두둑히 챙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인들이 남녀 인질들을 모아놓으니 수만 명이 됐다. 모자가 상봉하고 형제가 서로 만나 부여잡고 울부짖으니 곡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심양일기」
이른바, 인질장사인 셈인데 양국간 교섭에 따른 1인당 몸값은 은(銀) 25~30냥이었지만 실제로는 1인당 100~250냥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일부 사대부집안들은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빼오려 했고 그러면서 몸값은 더욱 폭등했습니다. 김류가 첩의 딸을 구하기 위해 용골대에게 1000냥을 불렀고, 병조의 사령 신성회는 600냥을 냈으며, 영중추부사 이성구는 무려 은 1500냥을 지불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성구는 조선인 출신의 청나라 통역관에게 온갖 모욕을 받으며 거액을 뇌물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귀국했을 때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적지에서 고생한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기는커녕 그들이 오랑캐들의 성(性) 노리개 노릇을 하다 왔다고 하여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을 뿐더러 몸을 더럽힌 계집이라고 손가락질한 것입니다. 그것은 전에 있던 임진·정유 양난에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던 여인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환향녀들은 가까스로 귀국한 뒤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았는데, 선조와 인조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인조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대신 첩을 두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환향녀는 현대의 단어 화냥년의 어원이 되었는데 화냥년은 현대에서는 가 있는 정숙하지 못한 좀 헤픈 여자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나 그 기원을 살펴보면 더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후 이혼한 여자들은 쫓겨난 뒤, 동구 밖 정자나무에 목을 매거나 강물에 몸을 던졌으며 이에 조선 조정은 고심 끝에 최명길의 진언에 따라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냅니다. 그것은 전국 고을마다 강을 지정하고 그 강에서 몸을 씻으면 회절한 것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강원도는 소양강, 충청도는 금강, 황해도는 예성강, 평안도는 대동강, 한양과 경기지역은 홍제천이 ‘정조를 되돌리는 강’으로 지정되었으나 이것은 의례적인 미봉책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도성 안으로 들거갈 수 없었고 수많은 환향녀들이 회절의 강에서 스스로 목을 맨 것입니다. 그리고 산 사람들은 성 밖에서 모여 살았으며 가족과 인연도 끊겨 바느질품을 팔거나 몸을 팔아 생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청에서 임신하고 돌아온 여인들이 낳은 자식들은 호로자(湖奴子)라고 불리며 손가락질을 받았고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 바로 호로자식입니다. 그리고 성리학이 뿌리 깊게 박힌 조선사회에서 환향녀들과 호로자는 천민 그 이하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어찌 보면 이러한 것은 당시 청나라와의 외교와 전쟁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위정자들의 잘못에 비롯된 것이지만 그로 인한 상처는 고스란히 여성들이 떠안아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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