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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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는 왜 스스로 미륵이라 했을까.
궁예는 후삼국시대의 군웅이자 태봉의 유일한 국왕이고 한국사 유일의 승려 출신 군주입니다. 궁예는 태어날 때부터 비상했고 삶은 드라마틱했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5월 5일 단옷날 이빨을 가진 신라 왕자로 태어납니다. 또 지붕에서 하얀 빛깔이 무지개처럼 하늘 위로 뻗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신이함은 영웅의 탄생을 예고할 때 흔히 쓰는 표현방식입니다. 궁예는 천기를 받고 태어난 신라의 왕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실 궁예가 누구의 아들인지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학자는 궁예는 헌안왕의 아들이며, 죽이라고 명한 왕은 경문왕이고 어머니는 강릉을 기반으로 한 김주원계의 여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궁예를 왕위쟁탈전의 희생양으로 본 것입니다. 당시 비주류에 속했던 헌안왕은 중앙 정계가 아닌 지방호족과 손을..
2024.05.13 -
신라는 평양을 차지했을까.
670년에서 676년까지 이 땅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바로나당 전쟁입니다. 나당전쟁은 한국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학자들은 한민족 공동체가 만들어진다고 보고 있으며 김, 이, 박, 최 등 성씨 이들 모두는 신라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신라는 5세기만 하더라고 경북 지역의 약소국에 불과했습니다. 진흥왕을 중심으로 6세기 팽창하기 시작했고 한강 유역을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곧 위기에 봉착합니다. 600년대 초반부터 백제는 줄기차게 신라를 공격해 대야성을 함락하고 전선을 지리산에서 낙동강 동쪽으로 이동시켰습니다. 고구려 역시 북쪽에서 밀고 내려왔습니다. 급기야 백제-고구려 연합군의 당항 공격으로 신라는 국가의 ..
2024.05.10 -
광개토대왕비는 왜 세워졌을까.
광개토대왕은 담덕이라는 이름으로도 제법 알려진 인물로 『삼국사기』 기준으로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 추모의 13세손입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는 17세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8세(만 17세)에 보위에 올라 39세(만 38세)의 젊은 나이에 죽기까지 수많은 업적들을 남겼으며 특히 전쟁에 대해서는 한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정복자이자, 세종대왕과 더불어 대왕이라는 칭호를 대중들이 가장 자주 붙여 부르는 군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삼국사기』에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 않습니다. 영토확장에 힘을 기울인 군주이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며, 힘든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인간적인 부분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전혀 없고 땅을 넓..
2024.05.06 -
비류와 온조는 형제였을까.
비류와 온조왕은 각각 미추홀과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비류가 도읍을 정한 미추홀은 땅이 기름지지 못하고 메말라 살기에 적당치 않았습니다. 비류는 비류국을 세웠으나 13년 만에 멸망하여 십제에 병합되었다는 이야기가 백제 건국 설화에 대한 요약입니다. 한편 문학산 일대의 전설과 민담의 수집을 한 결과 비류와 온조(온조왕)은 삼각산에 올라가 서로 살 곳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형인 비류는 바닷가에 살기를 원했으므로 미추홀의 문학산에 성을 쌓고 살게 되었고, 동생인 온조왕는 한강 남쪽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여 십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비류가 세운 곳은 땅이 기름지지 못하고 메마르며, 물이 짜서 사람 살기에 적당치 않았으므로 나라의 기틀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비류는 동생 온조가 세운 십제에 ..
2024.05.03 -
허황옥은 진짜 인도에서 왔을까.
허황옥(許黃玉, 32년 ~ 189년)은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왕후로, 허황후 또는 보주태후라고도 합니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따르면, 아요디아의 공주로, 48년에 오빠 장유화상 및 수행원들과 배를 타고 가락국에 와서 왕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등왕을 비롯해 아들 10명을 낳았다지만 여전히 그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추측이 난무합니다. 1970년대 후반 그의 출생지가 시인이자 한 아동문학가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그 아동문학가는 펜클럽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에 들렀다가 아요디아를 다녀왔습니다. “아요디아시의 수많은 건물에 쌍어문(雙魚紋)이 새겨져 있다. 그 모양은 김해의 수로왕릉에 있는 쌍어문과 흡사하다.” 그럼에도 여러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쌍어문이 ..
2024.04.29 -
근초고왕이 마한을 정복했을까.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서 백제 근초고와아 시기에 이미 영산강 유역을 비롯한 전라남도 전체를 병합했다는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으로는 황해도 지역을 놓고 고구려와 다투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도 근거는 있습니다. 바로 『일본서기』의 신공황후 49조, 그러니까 369년의 기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신공황후가 파견한 군사가 비자발, 남가라, 록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등의 7국을 평정했다. 이어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고해진에 이르고 남만 침미다례를 정벌하여 백제에게 주었다. 이에 초고(근초고왕)와 왕자 귀수가 군대를 이끌고 합류하니 비리, 벽중, 포미. 지반, 고사의 읍이 스스로 항복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왜군이 단독으로 가야 7국과 이른바 ‘마한’ 침미다례를 정벌하고 나서..
202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