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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외교관 이예
조선시대 초기 이예는 학성 이씨의 시조이자 조선 전기의 외교관이고 일본을 가장 많이 왕래한 통신사입니다. 통신사 사행에는 많은 수행원이 따르는데, 보통 통신사라 하면 정사·부사·서장관의 삼사(三使)를 말합니다. 조선을 통틀어 통신사는 모두 24회 파견되었는데, 그 삼사 중 이름이 알려진 이는 61명입니다. 이예가 4회, 윤인보가 3회 파견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각 1회 파견되었습니다. 이예는 일본 국왕을 알현한 4회 이외에도 이런저런 일로 유구국, 쓰시마, 규슈 등 일본 각지에 파견되었습니다. 이예가 8세 되던 해(1380년·고려 우왕 6년)에 어머니가 왜구들에 의해 일본으로 잡혀갔습니다. 28세가 된 1400년, 그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가서 쓰시마와 이키시마(壹岐島)의 집집마다 ..
2023.10.27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혜초(慧超, 704~787)는 신라 시대의 승려입니다. 밀교를 연구하였고, 인도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왕오천축국전』은 신라의 승려 혜초가 고대 인도의 5천축국을 답사하고 쓴 여행기입니다. 책은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P.펠리오가 중국 북서 지방 간쑤성[甘肅省]의 둔황[敦煌] 천불동 석불에서 발견하였으며 중국의 나진옥(罗振玉)이 출판하여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 책에는 당시 인도 및 서역(西域) 각국의 종교와 풍속·문화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그때는 벌써 불타(佛陀)의 유적은 황폐하여 기울어져 가고 있었으며 사원은 있으나 승려가 없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느 큰 사원에는 승려가 3,000여 명이나 있어서 공양미가 매일 15석이나 소요되어 유지하기가..
2023.10.26 -
원성왕릉 무인상은 정말 서역인인가.
9세기에 필사된 이븐 쿠르다드비(820~912)의 『도로와 왕국총람』은 “신라에는 금이 풍부하다. 그곳에 가는 무슬림들은 좋은 환경에 매료되어 영구 정착해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문헌 속에서도 신라를언급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신라’라고 부르는 땅이 있다. 신라는 가장 아름답고 부유한 나라다. 그곳에는 금이 아주 많다‘ 『세계 각 나라의 목록(Al Fehrest)』, 이븐 나딤 ‘중국과 가까운 또 하나의 도시는 신라다. 그곳은 강하고 견고하다. 신라의 왕은 매년 중국에 조공을 바쳐야 한다. 만약 조공을 보내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아 폐허가 될 것이다. 만약 조공을 보내면 이러한 상황은 완전히 변한다’ 『갈렙』 타바리(Mohammad Bin Ayub Tabari) ‘중국 영토의 가장 끝에..
2023.10.25 -
발해는 동이인가 북적인가
2022년 조선족박물관은 발해 건국과 관련해 "발해국은 속말말갈인을 주체로 건립된 정권이다. 말갈 수령 대조영이 부하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망명해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박물관은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말갈인과 함께 세운 발해의 역사적 의의는 물론이고 건국 과정 설명에서 고구려 관련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발해 시조 대조영을 말갈인으로 규정해 발해가 중국 소수민족이 세운 나라인 것처럼 만들어 사실상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시켰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발해와 말갈은 어떠한 관계일까. 일단 말갈에 대해 중국은 북적이라 했는데요. 북적(北狄)은 북쪽 오랑캐라는 의미로, 중국 기준 북쪽에 있는 이민족을 칭한 호칭입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지리상 중국 동쪽과 북쪽은 육로로 쭉 이어져 있어..
2023.10.24 -
위만조선은 위만 어떻게 보아야 할까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역사발전 단계상에서 후기(後期)에 해당하며, 일반적으로 왕조의 개창자를 국명으로 칭하지 않는 점에서 '위만조선'이라는 용어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위만왕조'나 '위만집권기의 고조선'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조선의 왕이었던 위만은 옛 연국(燕國) 사람이다. 연국의 전성기때부터 일찍이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속하게 하고 아전[吏]을 두고 장새(鄣塞)를 쌓았다. 진국(秦國)이 연국을 멸하고 요동 밖 요(徼)에 소속시켰다. 한국(漢國)이 일어나고 그곳이 지키기 어려우므로 요동의 옛 새(塞)를 수리하고 패수(浿水)를 경계로 하여 연국에 소속시켰다. 연국 노관이 반하여 흉노로 들어갔고 위만은 망명하였다. 1000여 명을 모아 무리를 지어 상투를 틀고 만이(蠻夷)의 복장을 하여 동쪽으..
2023.10.23 -
방랑시인 김삿갓
“…책은 한권을 읽고도 시를 말하고/ 돈은 천금을 쓰면서 오히려 붖고해해/붉은 문 앞에 가서 온종일 머리를 수그리고 섰던 자가/ 문득 고향사람을 만나더니 그 의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구나.” 조선왕조 후기 양반관료들의 허풍선이 탐욕생활을 꼬집고 권력에 아부해 매관매직을 일삼던 그들의 부패상을 풍자한 시로서 유랑시인 김삿갓의 한문시를 번역한 것입니다. 김삿갓의 방랑인생은 조선왕조의 봉건적 신분질서가 무너져 가며 동요하던 19세기 전반기의 시대상황과 얽혀 있습니다. 중앙에서는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지배질서가 문란해지고 전국 각지에서는 양반관료들의 가렴주구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조직적으로 항거하고 나서던 시기였습니다. 김병연이 다섯 살 때인 순조 11년(1811년) 12월, 조정에서 서북인을 등용하지 않는 ..
2023.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