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초반 제주도의 모습 탐라순력도

2023. 1. 5. 07:45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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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봉진

2022년 현재 제주도에서 국보로 추진하고 있는 보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탐라순력도입니다. 탐라순력도는 조선시대 지방관의 순력을 그린 국내 유일의 기록화첩으로 남아 있으며 당시 이형상 제주목사가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순력과정을 그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1703년에 완성된 이 화첩은 그림 41면과 서문 2면 등 총 43면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림 41면은 순력 행사 장면을 담은 그림 28면, 평상시의 행사 장면을 담은 11면, 제주도와 주변 도서 지도인 「한라장촉」, 후에 덧붙여진 「호연금서」 1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탐라순력도가 소중한 이유는 희귀할 뿐만 아니라 18세기 초 제주도의 사회상을 그대로 담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탐라순력도를 통해 제주도의 지리·지형은 물론 관아, 군사, 물산, 풍물, 의례 등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화첩은 제작자가 이형상이고 화공은 김남길, 제작시기가 1703년로 제작시기와 사람이 명확하여 그 가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그럼 탐라순력도의 배경이 된 제주도는 조선시대 어떤 곳이었을까요. 지금은 관광도시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에만 하더라도 척박한 섬이었으며 농사는 해안가에서만 가능하였습니다. 현대에도 그렇지만 태풍이 빈번한 곳으로 산 중간지대에서는 말을 사육하던 섬이었고 그럼에도 조선정부로부터 과중한 공물을 부담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여건이 좋지 못해서 이 섬을 탈출하려는 사람들도 많아 1629년 인조 7년에는 제주 섬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였습니다. 이 금지령이 200년간 지속되었으니 탐라순력도가 제작된 18세기 초에는 고립된 제주사람들의 모습이 육지에 비해 더 독특한 풍습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고스란히 탐라순력도에 담겼을 것입니다. 

한라장촉

당시 제주도의 실상을 담아낸 탐라순력도의 서두에 수록된 것은 바로 ‘한라장촉’입니다. 제주도의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도면식지도로 이전에도 제주도 지도가 있었으니 제작시기가 확실한 지도로는 최고(最古)의 제주도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한라장촉’에는 관방시설과 목장, 도로, 오름, 마을명, 하천, 포구 등이 상세히 그려져 있는데 특이한 것은 현대 지도와는 달리 남쪽을 위쪽으로 놓았다는 점입니다. 남쪽을 위쪽으로 놓는 것은 옛날 지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인데 제주도와 같은 섬 지방은 본토인 한반도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주변에 그려진 외국 지명이 있는데 중국의 영파부(寧波府), 소주(蘇州), 항주(杭州), 양주(楊州), 산동성(山東省), 청주(靑州)를 비롯해 일본, 유구(琉球), 안남국(安南國), 섬라국(暹羅國), 만자가(滿刺加) 등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제주도와 관련된 과일하면 감귤을 떠올릴 수 있는데 탐라순력도에  망경루 앞뜰에서 각 종류의 감귤과 한약재로 사용되는 귤껍질을 봉진하는 ‘감귤봉진’이라는 그림이 잇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망경루 앞뜰에서 여인들이 귤을 종류별로 나누고 있고, 이형상 목사를 연회각에 앉아 이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아래에는 귤의 종류가 적혀 있는데 금귤, 감자. 유감, 동정귤, 산귤, 청귤, 유자, 당유자, 치자. 진피, 청피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귤림풍악’이라는 그림에서는 망경루 후원 귤림에서 풍악을 즐기는 장면을 담고 있는데 날짜를 기록되지 않아 순력 일정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그림의 나타난 열매의 색깔로 미루어 볼 때 과일이 익어가는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제주성 안에 6개의 과원이 있었는데 이 그림은 위치와 보이는 건물로 미루어 짐작할 때 북과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하단에는 1702년 감귤 결실수를 표기하고 있는데 그 개수를 상세히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당시 귤 관리가 철저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래대렵

‘교래대렵’은 교래 지경에서 진상을 위한 산짐승과 날짐승을 사냥하는 기록화입니다. 제주지역에는 산짐승으로 노루, 사슴, 돼지, 지달, 오소리가 있고 날짐승으로는 꿩, 까마귀, 솔개, 참새 등이 서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그림에서는 포수 120명이 사냥을 통해 사슴 177마리와 돼지 11마리, 노루 101마리, 꿩 22마리를 잡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는 흑악, 여윤영아리, 구두리 등 사냥장소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냥과 관련된 그림으로는 ‘비양방록’이 있는데 사슴을 생포하여 비양도에 방사하는 기록화로 1702년 10월 11일 사슴을 잡아 1703년 4월 28일 비양도에 방사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그림에도 제주목 서면의 53개의 마을 위치와 더불어 제주읍성의 서문에서 명월진에 이르는 지형을 담고 있습니다.

산장구마

제주도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말인데 ‘산장구마’에서는 1702년 10월 15일 산장에서 말을 몰아 일정한 장소에 모으고 그 수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산장은 산마를 목양하는 목장으로 각 산장에는 원장과 사장이 설치되었습니다. 원장은 우마를 모아놓기 위해 만든 원형의 목책이고 사장은 모아놓은 우마들이 한 마리씩 통과할 수 있게 만든 좁은 목책통과로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장을 통해 우마의 수효를 파악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상 혹은 다른 목장으로 보내기 위해 하나씩 붙들 수 있는 장치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림의 산장의 점마는 제주판관, 정의현감, 산장감목관이 책임을 담당한 가운데 결책군 2,062명, 구마군 3,720명, 목자와 보인 214명 등 총 6,536명에 이르는 막대한 인원이 동원되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도점마’라는 그림에서는 우도 목장 내에 있는 말을 점검하는 것을 그렸는데 262필의 말을 목자, 보인 23명이 관리하고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당시 우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민가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주 유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별시의 모습을 그린 ‘승보시사(陞補試士)’라는 그림이 있는데  승보시는 본래 성균관 유생들에게 치러진 소과(小科)의 초시(初試)에 해당하는 시험인데, 지방에서는 개성, 제주, 수원에서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림에서는 응시자 12명에 답안지도 12장이므로 응시자 전원이 답안지를 제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건포배은’이란 그림은 향품문무 300여 명이 관덕정 앞과 건입포에서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은혜에 감사하는 절을 하는 배례의 모습과 더불어 신당을 불타는 모습을 그려넣고 있습니다. ‘건포배은’과 ‘신당파괴’라는 두 사건을 동시에 표현하였습니다. 나라의 은혜에 감격한 섬사람들의 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섬의 어리석은 몇가지 풍속을 스스로금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인데 이는 제주 사람들의 정서에 반하는 그림일 수 있겠으나 이렇게라도 표현한 이유는 이러한 조처를 한 이형상의 일이 아마 큰 업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건포배은

탐라순력도에서는 제주도의 풍광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산관일’은 성산일출봉에서 해뜨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으로 일출봉과 우도의 지형이 자세히 나타내었는데 일출봉 입구에 진해망(鎭海望)의 옛터가 표시되어 있고, 그 위로 일출봉의 정상에 있는 성산망까지 오르는 등정길이 자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 때 ‘성산망’은 성산 위에 있었던 망(望:봉수)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산방배작’은  산방굴에서 배작의 광경을 그린 그림으로 돌산은 산방산을 웅장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그 남쪽에 암문이란 굴이 있는데 여기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산방산과 관련한 전설을 전해오고 있는데 산방산은 본래 한라산의 정상이었지만 그 정상이 뽑히면서 지금의 산방산이 되고 그 뽑힌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주도와 풍습과 생활, 풍광을 재연한 탐라순력도는 민화풍의 그림으로 고급진 느낌은 아니지만 자유분방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아마 이러한 표현이 제주도의 실상을 더 잘 나타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표현은 제주를 날 것으로 보여주어 이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탐라순력도]는 그림으로서 뿐만 아니라 18세기 제주를 보여주는 인문 지리적 화첩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다만 이형상의 지시에 따라 탐라순력도 제작에 참여한 화공 김남길에 대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명작들이 수록된 [탐라순력도], 2022년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에 지정될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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