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구한말(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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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간 조선여인 리진
1905년 이폴리트 프랑댕과 클레르보티에가 공동으로 쓴 책 『한국에서』가 있습니다. 이 책에는 한국의 문화와 풍습, 그리고 일상생활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댕이 직접 보았다는 궁중 여인이 있으니 그는 바로 리진이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가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1886년이고 그 이듬해에 콜랑 드 플랭시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콜랭 드 플랑시에 주목하는 이유는 대리공사로 두 번 주재했다는 이폴리트 프랑댕의 책 내용처럼 그도 한국에 두 번 주재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콜랭 드 프랑시가 리진과 인연을 맺었을 것입니다. 프랑스 초대공사였던 콜랭 드 플랑시는 조선에서 리진을 만났지만, 얼마 후 발령을 받아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차마 리진과 헤어질 수 ..
2024.03.29 -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는 누구일까
김옥균은 갑신정변의 주역이면서 개화파 인물입니다. 다만 일본 세력을 끌어들여 개혁을 주도하려고 했기 때문에 일본에 의해 이용당했다는 측면이 강하며 항간에서는 친일파가 아니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용일파’ 즉 일본을 이용해서 조선을 개화하려고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옥균은 “일본이 동방의 영국 노릇을 하려고 하니 우리 조선은 적어도 동방의 불란서가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옥균은 임오군란 이후 3차 수신사 일행으로 일본을 다녀와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급진개화파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로부터 300만원 차관을 받아 주일 프랑스 공사관을 통해 용병을 교섭하려고 했지만 차관 교섭 자체가 실패했고 더불어 민씨 정권의 탄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
2024.03.23 -
명성황후의 원수를 처단한 자객 고영근
역사를 자세히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우범선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기 힘듭니다. 다만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의 아버지라고 하면 그러냐고 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범선의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 꽤나 굵직한 사건에 중심에 있던 인물입니다. 그는 1895년 10월8일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 당시 일본이 경복궁에 데리고 들어갔던 조선훈련대의 제2대대장이었습니다. 1857년생인 우범선은 을미사변 직후인 1896년 1월 서울에 처자를 남겨둔 채 일본으로 망명해 사카이 나카라는 일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우범선은 망명 7년째 되던 1903년 11월24일, 히로시마현 구레시에서 한국에서 온 자객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습니다. 어떤 일로 살해되었을까. 우범선을 살해한 자객은 고영근이었습니다. 우범..
2023.11.04 -
조선, 전등을 밝히다
4월 10일은 전기의 날입니다. 서양의 앞선 과학문물을 통해 국운 회복을 꿈꾸던 고종은 한성전기를 설립해, 1900년 4월 10일 종로 사거리 주변 가로등에 전깃불을 밝혔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점등이었습니다. ‘1900년 4월 10일 민간 최초로 종로 사거리에 3개의 가로등이 점등돼 전차 정거장과 매표소를 밝혔다’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그런데 사실 이날은 민간 최초로 점등이 밝혀진 날이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기가 들어온 날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전기 역사의 첫 시작은 이보다 13년 빠른 1887년 3월 6일입니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1879년으로부터 불과 8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이는 중국과 일본보다 2년 앞선 시기였고, 시설 역시 16촉광의 백열등 750개를 동시에 켤 수..
2023.07.05 -
조선인들도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 전화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82년으로 청나라에 기술을 배우러갔던 유학생 ‘상운’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역사적 변곡점에 있었습니다. 잇따라 일어나는 임오군란, 갑오개혁, 을미사변 같은 정국을 불안케 하는 사건들은 전화사업 추진에 차질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1896년 10월에 덕수궁 내부에 전화기가 설치되었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고종은 궁에서 직접 인천으로 통화를 합니다. 한국 최초로 이뤄진 이 전화 통화로 인천 감옥에 수감 중이던 김창수라는 인물이 사형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김창수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조선인으로 변장한 일본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집행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에 고종은 여러 날이 걸리는 어명 전달 방식이 아닌 직접 ‘전화’를 걸어 사형 집행..
2023.07.01 -
구한말 근대화의 상징 전차
1880년대 후반,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많은 물건과 교통통신수단이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전차입니다. 전차는 도로 등에 설치한 두 줄의 레일을 따라 궤도차량을 움직여 사람 이나 화물을 운송하는 궤도시설인데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운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18세기에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됐고, 도시에 사는 인구를 실어 나를 대중교통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철도 마차입니다. 철도 선로 위를 움직이는 차량을 말이 끄는 것인데, 1836년에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했습니다. 하지만 철도 마차는 심각한 위생 문제가 있었습니다. 선로 주변에 말의 배설물이 쌓이게 된 것입니다. 이에 말을 다른 동력원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집니다.. 얼마 가지 않아 ..
2023.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