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선사시대부터 고조선이야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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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로 귀화 그리고 위만 조선
“예조에서 보고하기를, ‘회회교도는 의관이 우리와 달라서, 사람들이 모두 우리 백성이 아니라 하여 혼인하기를 꺼립니다. 이미 우리나라에 귀화한 사람들이니 마땅히 우리나라 의복을 좇아 별다르게 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혼인하게 될 것입니다. 또 대조회 때 회회도의 기도하는 의식도 폐지함이 마땅합니다’라고 하였다.” 『세종실록』 조선 시대에 아랍인들이 조선에 귀화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고유의 의복을 착용하고 풍속도 그들 식으로 하고 이슬람교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으니 조선 정부에서는 이들이 조선에 정착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사는 것이 흔한 일이었던 것이고 조선 정부도 이에 대해 관대했습니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 고대로 가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경의 개념이..
2024.04.19 -
위만조선은 위만 어떻게 보아야 할까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역사발전 단계상에서 후기(後期)에 해당하며, 일반적으로 왕조의 개창자를 국명으로 칭하지 않는 점에서 '위만조선'이라는 용어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위만왕조'나 '위만집권기의 고조선'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조선의 왕이었던 위만은 옛 연국(燕國) 사람이다. 연국의 전성기때부터 일찍이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속하게 하고 아전[吏]을 두고 장새(鄣塞)를 쌓았다. 진국(秦國)이 연국을 멸하고 요동 밖 요(徼)에 소속시켰다. 한국(漢國)이 일어나고 그곳이 지키기 어려우므로 요동의 옛 새(塞)를 수리하고 패수(浿水)를 경계로 하여 연국에 소속시켰다. 연국 노관이 반하여 흉노로 들어갔고 위만은 망명하였다. 1000여 명을 모아 무리를 지어 상투를 틀고 만이(蠻夷)의 복장을 하여 동쪽으..
2023.10.23 -
진실없는 논쟁의 숫자 기원전 2333년
한국사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를 익히 알려져 있는데요. 이 노래 처음 등장하는 위인은 바로 단군입니다. 1절부터 5절까지 다 외우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로 시작하는 노래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군에 대해 실존했는지 의문이 따르기도 합니다. 일단 단군이라고 하면 단군신화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신화는 한 나라 혹은 한 민족으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예로부터 섬기는 신을 둘러싼 이야기를 뜻하는데요. 신 자체가 진실을 규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화의 주인공으로 인식되는 단군도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화들이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이냐 하면 꼭 그렇..
2023.09.07 -
제주도 고산리 유적이 알려주는 사실
제주도는 한반도에 좀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예부터 이곳은 사람이 살던 곳이었으니 그 신대가 신석기 시대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유적은 한반도의 신석기 문화보다 5천년정도 앞선 것이었습니다. 고산리 선사유적지가 알려진 것은 1987년이었습니다. 당시 고산리 주민이 타제석창과 긁개 등을 발견하였고 이를 제주대학교에 신고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2년 유물지표조사를 벌여 중석기 후기에서 신석기 시대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화살촉 2백 여점과 박편석기, 긁개, 세기개 등 6천 여점의 유물이 나왔습니다. 이후에도 계속된 발굴조사를 통해 한반도에는 없는 고산리식 토기가 발견되었고 첨두형 석기등이 출토되었습니다. 고산리 유적인 기원전 1만 년 전후에 형성된 것으로 특히 한반도 지역에 비해..
2022.12.07 -
고조선의 첫 도읍지는 어디였을까.
일제시대 당시 식민사학을 심으려는 일본의 노력은 심했습니다. 그에 대해 우리민족 사학자들의 분노는 커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학자들은 당시 국내의 언론을 인용하여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미족사학자 정인보 선생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조선의 시조 단군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며 기자조선은 없고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을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요동의 험독, 지금으로 따지면 요령성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삼한(三韓)은 지명이 아니라 한(汗)이나 간(干)처럼 크다거나 임금이라는 뜻의 일종의 존칭이며 고조선과 별개라는 정체세력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수를 지금의 하북성 영평 일대를 흐르는 난하지역으로, 그리고 한사군의 위치를 ..
2022.11.22 -
신석기인들은 왜 대한해협을 건넜을까.
우리는 신석기시대하면 빗살무기토기를 떠올릴 것입니다. 어쩌면 그게 신석기를 기억하는 가장 명쾌한 유물로서 각인되어 신석기시대를 오인하게 만들 수 있는데요. 그 시대를 돌을 갈아 도구로 썼던 그 시대에 대해 원시적인 상황만이 생각되는 것은 지나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사시대에도 무역을 했습니다. 지금처럼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먼 나라와 행해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우리와 가까운 일본과는 교역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신석기 시대는 한일 교역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산동삼에는 조개무덤이 있는데 이 곳에서 흑요석제 석기와 작은 흑요석 조각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발견된 흑요석들이 한반도의 것이 아닌 일본 규슈 서남쪽 사가현의 고시다케가 산지로 밝혀졌습니다. ..
2022.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