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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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와 신의 왕후 한씨의 다섯째 아들입니다. 그는 아버지인 이성계를 도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고려의 왕대비를 움직여 고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을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사람도, 끝까지 고려를 버릴 수 없다며 버티던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선이 세워지고 나자 이방원은 정치에서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자신을 도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우는 데 힘을 모았던 사람들에게 ‘공신’이란 칭호를 내립니다. 벼슬을 주고, 땅도 주었지만 정작 이방원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조선 개국 때 충분히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세자 자리마저 막내동생에게 밀리고 말았습니다. 맏형은 조선이 세워진 그 다음해에 죽었기 때문에 ..
2024.06.16 -
용비어천가
대한민국 포털사이트 양대산맥인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는 사용자들에게 위치를 기반으로 한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용자들은 각 장소를 방문한 뒤 별점과 함께 간단한 후기와 소감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런 별점 평가는 주로 식당이나 카페에 대한 만족도를 기록하는 데 쓰여, 다른 네티즌들이 방문 여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2024년) 이런 별점 후기가 독특한 곳에 쓰이고 있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조선시대 왕릉을 방문한 뒤 별점 평가를 매기고 있는 것으로 해당 왕의 업적에 따라 별점이 극과 극으로 갈렸습니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높은 별점을 받고 있는 인물은 단연 세종대왕입니다. 현재 다음카카오에서 여주시에 있는 ‘영녕릉 세종대왕유적지구 세종대왕..
2024.06.13 -
조선 건국 세력이 고려 불교를 비판한 이유
조선 전기에 도병마사, 경기도관찰사,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인 남재는 태조 이성계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동방으로 말한다면, 신라가 불교에 미혹하여 그 재력을 다 없애서 탑묘가 민간에 절반이나 되더니, 마침내 나라가 망하는 데 이르게 되었습니다. 고려의 의종은 3만 명의 중들을 공양한 것이 한 달에 10여 곳의 절에 이르렀으나, 마침내 임천에서 탄식함이 있었으며, 공민왕은 해마다 문수법회를 개최하고 보우와 나옹을 국사로 삼았지만, 고려의 멸망을 구원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남재는 불교를 믿으면 나라가 곧 망하게 된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도 불교에 대한 내용을 「훈요 십조」에 담았습니다. ‘내국가의 대업은 여러 부처의 호위를 받아야 하므로 선(禪) · 교(敎) 사원을 개창한..
2024.06.06 -
무학대사
조선이 건국되기 이전 1384년(홍무 17)에 전라도 익산에서 함경도 안변으로 옮겨와 머물던 이성계는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1만 집의 닭이 일시에 울고, 1천 집에서 다듬이 소리가 일제히 울리는 가운데 허름한 집에 들어가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왔으며,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땅에 떨어져 깨어지는 꿈이었습니다. 꿈이 이상해서 이웃 노파에게 물으니, 노파는 설봉산 토굴에서 9년째 솔잎을 먹으며 좌선하고 있는 무학대사에게 가 보라고 했습니다. 무학대사는 그것이 국왕이 될 꿈이라고 했습니다. 1만 집의 닭이 일시에 울었으니, 닭 울음소리 ‘고귀위(高貴位)’는 ‘높고 귀한 자리’에 오름을 뜻합니다. 1천 집에서 다듬이 소리가 일제히 울렸으니, 다듬이 소리 ‘어근당(御近當)’은 ‘임금 자리에 가까이 감’을 말..
2024.06.03 -
조선을 구한 역관 홍순언
홍순언(洪純彦, 1530년~1598년)은 조선 중기의 한어 통역관, 외교관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입니다. 그는 남양 홍씨 첨사(詹事) 홍호(洪灝)의 동생인 예사 홍복(洪澓, 일명 홍복(洪復))의 12대손으로 가선대부에 추증된 홍겸(洪謙)의 서자였습니다. 서출이었던 홍순언은 일찍이 한어(漢語)를 익혀 한어역관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름은 덕룡(德龍)이고 자는 순언이었는데 뒤에 순언을 본명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선조 때에 역관을 지낸 홍순언은 중국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북경에 갔다가 명나라의 예부 관원이 사신들을 대접한다하여 홍등가로 이끌려갔습니다. 이때 홍순언은 그중 가장 값이 비싼 금 3천냥을 해어화채(解語花債)로 제시한 기생의 방에 들게 되었습니다. 홍순언은 돈이 너무 비싸서 기생의 얼굴이 궁금했..
2024.04.03 -
토정 이지함
이지함의 자는 형백(馨伯), 호는 토정 또는 수선(水仙)이며, 고려 말의 저명한 성리학자 목은 이색이 그의 7대조입니다. 이지함의 외가도 명문가 집안으로 지함의 어머니는 광주 김씨 판관 맹권의 딸입니다. 김맹권은 일찍이 진사가 되고 문명이 높아 집현전 학사로 발탁되었습니다. 이지함은 의금부 도사, 수원 판관 등을 지낸 이치(李穉)의 막내아들로 151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습니다. 14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형 이지번(李之蕃)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16살 때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뒤 형 이지번과 함께 한양으로 왔습니다. 이지함은 송악산에서 제자를 가르치던 당대 최고의 학자 서경덕의 제자가 되었으며 서경덕에게서 『경사자집(經史子集)』을 두루 배워 이에 통달했습니다. 스승 서경덕이 벼슬하지 않은 것처..
2024.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