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남북국(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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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는 왜 스스로 미륵이라 했을까.
궁예는 후삼국시대의 군웅이자 태봉의 유일한 국왕이고 한국사 유일의 승려 출신 군주입니다. 궁예는 태어날 때부터 비상했고 삶은 드라마틱했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5월 5일 단옷날 이빨을 가진 신라 왕자로 태어납니다. 또 지붕에서 하얀 빛깔이 무지개처럼 하늘 위로 뻗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신이함은 영웅의 탄생을 예고할 때 흔히 쓰는 표현방식입니다. 궁예는 천기를 받고 태어난 신라의 왕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실 궁예가 누구의 아들인지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학자는 궁예는 헌안왕의 아들이며, 죽이라고 명한 왕은 경문왕이고 어머니는 강릉을 기반으로 한 김주원계의 여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궁예를 왕위쟁탈전의 희생양으로 본 것입니다. 당시 비주류에 속했던 헌안왕은 중앙 정계가 아닌 지방호족과 손을..
2024.05.13 -
발해 문왕
1980년 중국 지린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한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792년 6월에 36세로, 아버지였던 왕보다 먼저 사망한 발해 정효공주입니다. 그녀는 문왕의 넷째 딸입니다. 여기서 묘지석이 하나 출토됐습니다. 700여 자의 글자 중 491자 만이 식별이 가능합니다.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정효공주의 아버지는 바로 ‘대흥’ 그리고 ‘보력’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발해 3대왕 문왕입니다. 당시 중국의 황제만이 쓰는 연호를 발해도 독자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발해 문왕은 당의 선진문물을 수용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당당히 황제국가라고 외친 것입니다. 발해는 당의 3성 6부라는 중앙제도를 받아들여 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중심이 돼 그 아래에 좌사정과 우사..
2024.01.29 -
발해 무왕
발해는 2대 왕은 무왕으로 대조영의 장남이자 건국한 지 불과 30여 년밖에 안 되는 신생국가 발해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의미 있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발해가 당나라를 선제 공격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당나라는 동서무역을 통해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발해는 당나라를 침공한 것일까. 무왕 대무예에게는 동생 대문예가 있었습니다. 대무예는 대문예에게 흑수말갈을 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당나라를 친다는 것은 대문예는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흑수말갈을 치면 당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패배를 우려한 대문예는 무왕에게 다시 생각할 것을 권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고 동생은 자신의 뜻이..
2024.01.26 -
중국에서 존경받는 신라 왕자 김교각 스님
기림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含月山)에 있는 삼국시대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창건한 사찰입니다. 그리고 기림사는 한국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증명한다는 것인데 인도의 정토 불교가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됐고, 자연스럽게 부처님에게 공양하던 차가 유입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계는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부인해왔으므로 이와 관련하여 기림사에서 수행하고 있는 스님은 그 가장 큰 요인이 우리의 역사가 중국 중심의 역사, 즉 사대주의적 사고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기림사는 인도에서 오신 광유성인께서 임정사를 창건하시고 이 후 643년 선덕여왕 12년에 원효스님께서 기림이라는 이름으로 개창하였다고 합니다. 기림사는 2000년 전 바닷길을 통한 정토불교의 유입과 함께 '급수봉다', 즉 ..
2024.01.13 -
일본 교토 수호신이 된 신라 명신
794년 일본, 도래계혈통으로 알려진 제 50대 천황 간무는 새로운 왕도로 교토를 택합니다. 그리고 이 곳은 1869년 메이지유신으로 도쿄로 천도되기까지 일본의 수도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곳을 지키는 수호신이 바로 신라명신이라는 것입니다. 7세기초 고대 일본에는 교토 대부호로 하타씨 일족이 있었고 하타 가와가츠는 당시 하타씨 일족의 수장으로 7세기초 일본에 불교를 중흥시킨 쇼토쿠 태자로붜 미륵보살반가상을 하사받아 고류지를 창건했습니다. 하타씨는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집단으로 정치적인 성격은 띠지는 않았지만 고대문명에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토에는 제일로 꼽히는 니시진오리는 일본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비단으로 이 비단은 하타씨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5세기 무렵..
2023.10.29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혜초(慧超, 704~787)는 신라 시대의 승려입니다. 밀교를 연구하였고, 인도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왕오천축국전』은 신라의 승려 혜초가 고대 인도의 5천축국을 답사하고 쓴 여행기입니다. 책은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P.펠리오가 중국 북서 지방 간쑤성[甘肅省]의 둔황[敦煌] 천불동 석불에서 발견하였으며 중국의 나진옥(罗振玉)이 출판하여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 책에는 당시 인도 및 서역(西域) 각국의 종교와 풍속·문화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그때는 벌써 불타(佛陀)의 유적은 황폐하여 기울어져 가고 있었으며 사원은 있으나 승려가 없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느 큰 사원에는 승려가 3,000여 명이나 있어서 공양미가 매일 15석이나 소요되어 유지하기가..
2023.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