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남북국(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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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는 왜 청해진을 설치했을까.
“청해 대사 궁복은 성이 장씨다. 일찍이 당의 서주로 건너가 군중소장이 되었다가 나중에 신라로 돌아와 흥덕왕을 만났고 왕은 병졸 1만을 주고 청해진을 설치하도록 하였다.”-삼국사기- 청해진을 설치한 사람은 남북국시대의 신라 사람으로 그 유명한 장보고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신라의 왕은 그에게 1만이라는 군사를 주었던 것일까요. 장보고는 청해진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말타기, 수영과 활쏘기에 능했지만 신라에서는 신분이 낮아 성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장보고에 대해 궁복 또는 궁파라고 하는 우리나라 이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당나라에 오기 전까지 그는 성이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장(張)씨가 중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성으로 삼고 복을 한자이름으로 표기하면서 보고가 된..
2022.08.07 -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걸작품 성덕대왕신종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종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되어 현존하는 종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725년에 제작된 상원사 동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보다 모양과 소리가 아름답기로 자자한 것은 771년에 만들어진 성덕대왕 신종으로 보고 있으며 이것은 흔히 에밀레 종이라고 알려진 종입니다. 에밀레 종이라고 많이 알려진 종인 성덕대왕신종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성덕대왕의 아들 경덕왕이 선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무게가 23t에 달하며 높이가 3.75m, 지름이 2m 25에 이르는 이 종은 구리 1만근을 들여 주조하기 시작했으나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경덕왕의 아들이자 성덕대왕의 손자인 혜공왕이 완성시킨 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종을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슬픈 이..
2022.08.06 -
포석정은 신라 망국의 현장인가
‘신라는 포석정에서 망하고 백제는 낙화암에서 망했다.’ 『세종실록』15년 기사 중 신라가 포석정에서 망했다는 이 기사는 신라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료가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포석정은 경주 금오산 서쪽 두메에 있는 것으로 신라의 귀족이나 상류층이 나라 생각을 하지 않고 유흥으로 지새운 망국의 현장으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때는 927년이었습니다. 문경 방면을 공격하던 후백제의 견훤은 갑자기 방향을 남으로 돌려 영천을 급습하고 마침내 경주로 쇄도하였습니다. 당시 신라의 경애왕은 비빈과 종척을 거느리고 경주교외의 포석정에서 연유를 즐기고 있었는데 급변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왕은 도망쳤으나 곧 붙잡혀서 자결을 강요당했습니다. 이후 견훤왕은 죽은 경애왕의 고종인 김부를..
2022.08.05 -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을까.
사찰에 가면 동탑과 서탑이 있습니다. 보통 이 두 탑은 모양이 똑같거나 아주 흡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 이름을 따서 ○○사의 동탑 혹은 서탑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런데 불국사 쌍탑은 동탑과 서탑이라는 명칭 대신 다보탑과 석가탑이라는 명칭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다보탑의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화려한 모양 덕분에 사람들의 이목을 받았습니다. 시각적으로는 다보탑에 쏠리지만 극적인 이야기는 석가탑이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영탑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석가탑입니다. 바로 아사달과 아사녀의 이야기입니다.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석가탑은 20세기 중요한 발견의 터로서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 시기는 1966년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도굴꾼들이 많았나..
2022.08.04 -
의상대사와 선묘아가씨 그리고 부석사
신라의 고승이었던 의상은 우리나라 불교역사에 있어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상가입니다. 그는 625년 신라의 귀족 김한신의 아들로 태어나 20세가 넘어서 승려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항복사로 출가한 그는 당나라에서 화엄교학이 크게 일어났다고 하자 원효대사와 함께 당나라로가게 됩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순라군에게 잡혀 첩자로 오해받았으며 이후 수십일 동안 잡혀 있다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10년 뒤에 의상과 원효는 다시금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고 이 때 해골물일화가 전해집니다. 원효는 신라로 돌아섰지만 의상은 중국으로 향한 것입니다. 의상은 등주에 머물게 되었는데 당시 이 곳 적산포에는 신라의 사찰인 법화원이 있었습니다. 의상은 이 곳에 머물렀고 그 곳에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선묘는 의상에게 마음을 두고 ..
2022.08.03 -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고선지
멸망한 나라의 후예로서 중국에서 크게 이름을 떨친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고선지, 그가 태어났을 때에는 이미 고구려가 망한 30여 년 정도 지난 뒤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조국은 고구려였을까 당나라였을까. 그는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고사계도 정4품의 벼슬이 있었으므로 이미 멸망한 고구려 출신이었지만 일반 평민계급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이러한 것은 당시 국제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민족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주었던 당의 정책 덕분에 고선지의 아버지가 지금의 스타급 군간부 진출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한족왕조인지라 과거 시험을 통한 등용은 쉽지 않았을 것이고 무예가 출중하여 정치계로 진출을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고선지는 20여 세 쯤 유격장군이라는 지위에 올랐는데 그것은 음보라는 제도 ..
2022.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