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남북국(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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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을 유리 너머로 보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신라 혹은 경주 하면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도시, 신라의 도읍지라는 것입니다. 특히 경주로수학여행을 갈 때면 꼭 들리는 곳. 하지만 먼 발치서 바라봐야만 하는 곳이 있습니다. 세계 문화유산임에도 말입니다. 그 곳은 바로 석굴암입니다. 석굴암의 정식명칭은 석굴암 석굴이고 석불사라고 불렸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불국사에 예속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석불암 대신 석굴암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석굴암은 가지고 있는 예술성과 조형미에 의해 신앙심 깊은 사람의 미술작품 정도로 생각될 수 있지만 뒤에 절 사(寺)가 붙으므로 이곳은 엄연히 절입니다. 하지만 유리 너머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석굴암의 이미지를 바라보아야 하는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석굴암은 751년 신라 경덕..
2022.08.01 -
관음보살은 왜 원효가 아닌 의상을 택했을까.
신라 시대 때 고승으로 의상대사와 원효 대사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 중에 겪은 이야기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 해골물이야기입니다. 원효와 의상이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던 중 한 동굴에 머물게 됩니다. 원효는 한밤중에 심한 갈증을 느껴 주변을 더듬다가 바가지에 든 물을 마시고는 갈증을 해소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음날 사실 바가지에 든 물이 아닌 해골물에 든 썩은 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구역질을 하게 됩니다. 이에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을 얻어 원효는 유학길을 포기했습니다. 너무 유명한 이 이야기가 사실 변형된 이야기일 수 있다고 합니다. 애초에 원효와 의상이 잔 곳은 동굴인 줄 알았는데 일어나보니 인골이 흩어져 있던 무덤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2022.07.31 -
발해가 왜 우리 역사일까.
발해는 698년에 건국된 나라로 중국측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발해 말갈의 대조영은 본래 고려(고구려)의 별종이다.’ 『구당서』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 고구려에 복속되었던 자이며 성은 대씨이다.’ 『신당서』 이 두 사료를 종합하면 발해를 건국한 사람은 대조영으로 말갈과 관련 있는 사람입니다. 『구당서』에서는 고려의 별종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는 고구려와 다른 사람이 아닌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인물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은 대씨라 하였는데 『신당서』에서는 대조영의 아버지의 이름을 걸걸중상이라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신당서는 대조영이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던 말갈인으로 고구려인과 다른 민족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걸걸조영이 발해를 세우면서 성을 대씨라 하고 대조영이 되었다는 ..
2022.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