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가야(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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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옥은 진짜 인도에서 왔을까.
허황옥(許黃玉, 32년 ~ 189년)은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왕후로, 허황후 또는 보주태후라고도 합니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따르면, 아요디아의 공주로, 48년에 오빠 장유화상 및 수행원들과 배를 타고 가락국에 와서 왕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등왕을 비롯해 아들 10명을 낳았다지만 여전히 그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추측이 난무합니다. 1970년대 후반 그의 출생지가 시인이자 한 아동문학가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그 아동문학가는 펜클럽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에 들렀다가 아요디아를 다녀왔습니다. “아요디아시의 수많은 건물에 쌍어문(雙魚紋)이 새겨져 있다. 그 모양은 김해의 수로왕릉에 있는 쌍어문과 흡사하다.” 그럼에도 여러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쌍어문이 ..
2024.04.29 -
높은 산에 묻힌 대가야의 왕들
정견모주는 가야 지역에서 여신으로 숭배되던 인물로 조선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최치원의 저서 석리정전(釋利貞傳)을 인용한 부분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정견모주 이야기는 유독 한국의 여러 시조탄생신화 중에서도 산신이 중심이 된다는 점은 좀 특이한데, 대가야의 지산동 고분군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릉급 무덤들이 평지나 산능선자락 정도에 있는 것과 달리 산꼭대기 능선에 만들어졌던 것도 특이한 점입니다. 가야산은 삼국시대부터 신성한 산으로 여겨져서 우두산(牛頭山)이라 불렸고 가야의 산신제 때는 소를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우두(牛頭)는 소두라고 발음할 수 있는데, 삼한지역의 성지였던 소도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한, 우두산(牛頭山)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소시모리라는 설도 있습니다. ..
2024.04.23 -
가야는 왜 멸망하게 되었을까
가야는 왜 멸망하게 되었을까. 신라에 의해 병합되었으니 당시 신라를 살펴보아야 하는데요. 신라는 진한의 여러 소국 중 하나인 사로국을 핵심세력으로 통합해간 나라입니다. 그리고 나물마립간 때 그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요. 신라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중엽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에 종속된 관계로 이해되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내부적인 정비를 하고 고대국가로 더 성장하게 됩니다. 눌지마립간 때에는 백제와 동맹을 통해 고구려와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신라가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증왕 대에는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마립간이라는 호칭도 중국식 왕호를 사용하였습니다. 신라는 내부적인 성장과 더불어 외부로의 팽창을 도모하였습니다. 지증왕 13년에는 지금의 강..
2023.07.28 -
김수로의 건국설화와 그 의문점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와 관련한 탄강신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지봉을 배경으로 하는 6개의 알과 관련된 신화입니다. 이것과 함께 김수로와 관련된 탄생 설화는 하나 더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을 형으로 하는 설화로 정견모주 설화입니다. 이 설화에서는 수로왕의 별칭은 뇌질청예로 나옵니다. 이러한 건국설화를 가진 가야는 기원 후 32년에 건국된 것으로 사서에 기록되었습니다. ‘가야는 변한의 12소국, 소국 연맹체, 초기 고대 국가 등의 단계를 거쳤다. 서기전 1세기 낙동강 유역에 세형(細形)동검 관련 청동기 및 초기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가야의 문화 기반이 성립되었다. 서기 2세기경에는 이 지역에 소국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3세기에는 12개의 변한 소국들이 성립되었으..
2023.07.27 -
고대국가시대 무역항 늑도
한반도에 철기문화가 들어온 것은 BC 3세기의 일입니다. 아무래도 대륙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서북한이 먼저 철기 문화를 수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통신과 교통이 여러모로 늦을 수밖에 없던 그 시절 한반도 남부는 BC 2세기가 되어서야 철시기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당시 역사적인 사건으로는 BC 194년 연나라 위만이 고조선에 들어와 위만조선을 세웠는데, 그때 왕위를 찬탈당한 고조선 준왕이 2000호 무리를 이끌고 남쪽(전북)으로 내려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BC 108년 고조선(위만조선)의 멸망과, 낙랑군 등 한사군 설치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 일은 당시 한반도 남부에 철기문화를 전파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주목받는 유적지가 바로 늑도입니다. 그러한 데에는 당시 내륙 루트보다 덜 위험하..
2023.07.26 -
멸망 후 가야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강원도 동해시에 북평동 추암 고분군이 있습니다. 이 유적지는 삼한시대 실직국에 속해 있었으나 신라 파사왕 23년에 신라에 편입된 곳이라고 합니다. 이 곳에서 옹관묘, 수혈식 석관묘, 횡혈식 석실묘 등 다양한 무덤 형식이 확인되었는데요. 출토유물 가운데 토기류인 장경호, 단경호, 개배(뚜껑접시) 등 30여 점이 500년대 중후반의 대가야 양식으로 드러났습니다. 신라고분에서 대가야 토기가 나온 것은 특이할만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는 단순한 교류의 산물로 보지는 않습니다. 대가야인의 이주 정착에 의한 유물이 이동 또는 직접 제작의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령이라든가 동해로의 루트에서 발견되지는 않는데요. 이는 교류의 산물이 아닌 신라의 대가야 사민정책에 따라 나타난 유물로 보고 있습니다. 562..
2023.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