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의 건국설화와 그 의문점

2023. 7. 27. 20:10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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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와 관련한 탄강신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지봉을 배경으로 하는 6개의 알과 관련된 신화입니다. 이것과 함께 김수로와 관련된 탄생 설화는 하나 더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을 형으로 하는 설화로 정견모주 설화입니다. 이 설화에서는 수로왕의 별칭은 뇌질청예로 나옵니다. 이러한 건국설화를 가진 가야는 기원 후 32년에 건국된 것으로 사서에 기록되었습니다. 
‘가야는 변한의 12소국, 소국 연맹체, 초기 고대 국가 등의 단계를 거쳤다. 서기전 1세기 낙동강 유역에 세형(細形)동검 관련 청동기 및 초기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가야의 문화 기반이 성립되었다. 서기 2세기경에는 이 지역에 소국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3세기에는 12개의 변한 소국들이 성립되었으며, 그 중에 김해의 구야국(狗邪國: 金官加耶)이 문화 중심으로서 가장 발전된 면모를 보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가야의 건국시기에 대하여 1세기는커녕 작 서기 2세기경에 소국들이 나타나 3세기에 12개의 변한소국이 성립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가야는 3세기 이후에나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가야의 건국시기를 3세기를 잡는 이유는 증거가 없기 때문일까.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서기 42년 김수로왕이 금관가야를 건국했다고 말하고 있고,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도 “그(김유신) 12세 조상 김수로는 어디 사람인지 알 수 없는데, 후한(後漢) 건무(建武) 18년(서기 42) 임인에…나라를 열고 국호를 가야라고 했는데, 뒤에 금관국으로 고쳤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가야가 서기 42년에 건국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탈해이사금 21년(서기 77)조는 “(신라의) 아찬 길문이 황산진(黃山津) 입구에서 가야 군사와 싸워 1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세기에 가야는 신라와 격전을 전개했다는 것입니다. 신라의 파사이사금은 재위 8년(87) 가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가소성(加召城)과 마두성(馬頭城)’을 쌓으라고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재위 15년(94) 봄 2월에 가야군사가 마두성을 포위하자 아찬(阿飡) 길원(吉元)에게 기병 1천 명을 이끌고 격퇴하게 했다는 기사가 『삼국사기』에 나오는데요. 이렇게 구체적인 가사의 내용을 거짓이라고 보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고고학적 유물로는 김해 대성동에는 서기 1세기 이전의 가야 고분들이 존재합니다. 서기 1세기 무렵부터 신라토기와 다른 가야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는 점은 가야식의 토기가 존재하게 한 해당 세력의 범위를 유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삼국유사 '기이편'에 실린 '가락국기'는 가야사 관련 현존하는 유일한 문헌 기록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둘째는 중국기록인 진수(233~297)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조에는 변진이 12국이 있다고 나옵니다. 삼국지는 위, 촉, 오 삼국시대의 당대 역사를 기록한 상당히 신뢰가 있는 역사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서이고 가야가 건국되고 나서 250여 년이 지나서 편찬된 기록물입니다. 이 역사서는 생활 풍속과 문화에 대해서는 언급했으나 고대 왕조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변진(가야)을 누가 건국했으며 지금의 왕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습니다. 한편 ‘원삼국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수로왕의 가야 건국을 부족국가 내지는 추장이 지배하는 국가 이전 단계의 군장 사회로 보는 견해입니다. 기원후 42년에 엄연히 가야가 성립되었지만 기원 원년부터 기원후 300년까지를 원삼국시대라 하여 제대로 된 국가 성립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서기 300년 이후에나 가야를 비롯한 삼국이 제대로 된 국가 형태를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가야의 건국시기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의 기원후 42년의 기록을 믿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지난 2022년 가락종친회와 가야사바로잡기경남연대, 김해지역 정치권이 왜곡된 가야사를 바로잡고자 뭉친 것인데요. 이 당시 비대위는 자신들의 주장을 피력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12월 14일 가야실을 재정비하면서 수정한 가야 연표 표기도 바로잡으라고 했습니다. 재정비 이전 중앙박물관 가야 연표에는 '수로왕 서기 42년 가야 건국'이라고 표기했습니다. 하지만 정비 후에는 '가야 성립'으로 기록하고 가야 건국 주체인 수로왕도 뺐습니다. 또한 2개 중학교 교과서에만 '가락국 건국'으로 표기돼 있고 대부분 '가야국 성립'으로 표기된 점을 지적하며, 올바른 가야사를 등재하라고 촉구한 것으로 가야의 건국시기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정립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가락국기에 따르면 수로왕은 무려 158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하니 쉽게 믿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일본서기』에도 오랫동안 생존한 천황 기록이 있듯, 작은 기록이라도 나름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상징성에 주목해야 하는데요. 기록에서 빠진 여러 왕의 재위 기간을 한데 뭉뚱그렸거나 후손들 입장에서 다소 과장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는 3세기경 왜인들의 평균 수명을 80~100세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발굴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인골의 평균 수명은 40~50세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략 2배 정도를 부풀린 셈입니다. 이는 중국과 왜의 시간계산법이 다른데서 나온 오류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로왕의 158세라는 나이는 실제로 그보다 반으로 줄인 79세 정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구지봉이란 가야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이 탄강(誕降)했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원래는 거북 머리 모양을 닮아 구수봉(龜首峰)이라 했는데, 지금 수로왕비릉이 있는 평탄한 위치가 거북의 몸체이고, 서쪽으로 쭉 내민 봉우리의 형상이 거북의 머리 모양 같다고 이같은 이름이 붙었습니다. 신라 때인 42년(유리왕 19년) 하늘에서 황금알이 내려와 수로왕이 탄생했고, 아도간(我刀干)ㆍ여도간(汝刀干) 등 구간(九干)과 백성들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는 가야의 건국신화를 간직한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구간과 백성들이 수로왕을 맞이하기 위해 이곳에서 춤을 추며 불렀다는 한국 최초의 서사시 `구지가`(龜旨歌)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김해에 있는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합장릉

고고학적으로 보면 남해안에 있는 고인돌들은 그 하한선이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라고 합니다. 남해안에서는 기원전 2세기 이후부터는 구지봉에 있는 고인돌의 모양은 기원전 2세기부터는 남해안에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한 것은 김수로세력이 이곳에 오기 적어도 200년 전에 고인돌이 마지막으로 구지봉 위에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김수로에 오기 전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그것은 신화 속에 보이는 아홉 촌장일 것입니다. 이들은 아마 고인돌을 만들고 청동기문화를 영위했을 것인데 이 때 유입한 김수로 세력은 철기문화를 가진 집단으로 토착세력을 통합합니다. 신화 속에서는 아홉 촌장(구간)에 의해 추대된 모습이지만 실상은 강제적인 양상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한편 구간에 대해서는 ‘칸’에서 음을 땄으며 아도간은 칼을 잘 쓰는 족장, 유천간은 천기를 살피는 우두머리. 유수간은 물, 신귀간은 제의를 담당하는 족장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로왕이 등장하고 나서부터 고인돌 대신 목관묘나 토광목곽묘라고 하여 이전과 다른 형태의 무덤이 조성됩니다. 아마 이러한 것은 이 지역에 가락국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고고학적 증거일 것입니다. 
龜何龜何구 하 구 하 거북아 거북아/首其現也수 기 현 야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약 불 현 야 내어놓지 않으면/燔灼而喫也번 작 이 끽 야 구워서 먹으리 「구지가」
거북이는 장수 신앙이나 남성기와의 형태 유사성에 따른 '수장'의 뜻을 지닙니다. 구간이 모여 땅을 짚으면서 노래를 했다는 점에서 제의적 의미 이외에도 농경과 관련된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편 남성 생식기의 귀두(거북이 머리)라고 부른다고 했을 때, 생명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성기를 직역해서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남성들이 성기를 내놓고 춤을 추며 부른 노래가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시조 설화이면서도 협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한 점입니다. 여기에 더해  위 시가 거북의 등딱지를 이용해서 점을 치는 의식을 나타냈을 가능성이 있음을 제안하고 있으니 구지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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