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남북국(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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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릉 무인상은 정말 서역인인가.
9세기에 필사된 이븐 쿠르다드비(820~912)의 『도로와 왕국총람』은 “신라에는 금이 풍부하다. 그곳에 가는 무슬림들은 좋은 환경에 매료되어 영구 정착해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문헌 속에서도 신라를언급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신라’라고 부르는 땅이 있다. 신라는 가장 아름답고 부유한 나라다. 그곳에는 금이 아주 많다‘ 『세계 각 나라의 목록(Al Fehrest)』, 이븐 나딤 ‘중국과 가까운 또 하나의 도시는 신라다. 그곳은 강하고 견고하다. 신라의 왕은 매년 중국에 조공을 바쳐야 한다. 만약 조공을 보내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아 폐허가 될 것이다. 만약 조공을 보내면 이러한 상황은 완전히 변한다’ 『갈렙』 타바리(Mohammad Bin Ayub Tabari) ‘중국 영토의 가장 끝에..
2023.10.25 -
발해는 동이인가 북적인가
2022년 조선족박물관은 발해 건국과 관련해 "발해국은 속말말갈인을 주체로 건립된 정권이다. 말갈 수령 대조영이 부하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망명해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박물관은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말갈인과 함께 세운 발해의 역사적 의의는 물론이고 건국 과정 설명에서 고구려 관련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발해 시조 대조영을 말갈인으로 규정해 발해가 중국 소수민족이 세운 나라인 것처럼 만들어 사실상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시켰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발해와 말갈은 어떠한 관계일까. 일단 말갈에 대해 중국은 북적이라 했는데요. 북적(北狄)은 북쪽 오랑캐라는 의미로, 중국 기준 북쪽에 있는 이민족을 칭한 호칭입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지리상 중국 동쪽과 북쪽은 육로로 쭉 이어져 있어..
2023.10.24 -
금나라 시조 조상은 정말 신라인인가.
‘금나라의 시조는 휘(諱)는 함보이고 처음에 고려로부터 왔는데 나이 이미 60여 세였다. 형 아고내는 불교를 좋아해 뒤를 따르려 하지 않으며 고려에 잔류하면서 말하기를, “후세 자손들은 반드시 서로 모여 만나는 자가 있을 것이니 나는 가지 않겠다.”’ 이 이야기는 여진족에 세운 금나라의 역사를 다룬 『금사』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또한 홍호가 기록한 『송막기문』에는 이러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여진의 추장은 신라인이고 완안씨라고 불렀는데, 완안은 한언의 왕과 같다.’ 『송막기문』 또한 여진의 시조가 신라에서 나왔다는 기록은 더 있습니다. ‘신록기에서 기록하기를 여진의 시조 감포는 신라로부터 나와 아륵초객으로 달아났다. 돌아갈 곳이 없어 드디어 완안을 의지하였기에 이를 성씨로 삼았다. (중략) 여진의 여..
2023.04.04 -
활발한 무역을 펼친 발해
우리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가진 발해는 휴전선 이북에 나라가 있었던 탓에 그 자료가 않습니다. 하지만 당대에는 해동성국이라 불릴만큼 강성한 나라였고 우리가 발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에 비해 훨씬 더 개방적이고 활발한 나라였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상경성으로부터 출발하는 다섯 개의 국제교역망으로 이 5개의 길을 각각 거란도, 영주도, 압록도, 신라도, 일본도로 부릅니다. 그러면 발해는 얼마나 활발한 교역을 했던 나라였을까. 북한 땅에서 멀지 않은 러시아 영토 안에 크라스키노라는 곳이 있고 여기에는 발해유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크라스키노 성인데 여기서 발견된 토기조각들은 고구려의 양식을 띠고 있었고 성은 고구려의 것에서 보이는 옹성의 구조와 돒출된 부분인 치가 확인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크..
2022.12.14 -
발해의 영토는 어느 정도였을까.
2018년 중국과 러시아가 국경을 이루는 아무르강 북쪽 평원 취락 유적에서 발해의 토기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발해 수도인 상경성이나 발해 유적지인 크라스키노 성에서 나온 토기와 유사한 것으로 9점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곳은 백두산까지 직선거리가 약 1000km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근거로 한다면 발해의 영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실제로 넓게 형성이 됩니다. 그럼 문헌에서는 발해의 영역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옛 문헌에 대해서는 발해의 영역에 대해 사방 5000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5000리라면 1600km가 넘는 길이로 토기가 나온 트로이츠코예 취락유적이 발해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발해의 북쪽 영역은 하얼빈에서 쑹화강을..
2022.12.13 -
마의 태자는 정말 금강산으로 갔을까.
‘왕이 고려에 항복을 하자 왕자는 왕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산길을 따라서 개골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바위 밑에 집을 짓고 삼베옷을 입고 풀을 뜯으면서 생을 마쳤다.’『삼국사기』 ‘태자는 통곡을 하면서 왕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개골산으로 들어가서 죽을 때까지 삼베옷을 입고 나무를 뜯으면서 생을 마쳤다.’ 『삼국유사』 이 기록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 태자에 관한 기록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신라의 마지막 왕의 태자는 경순왕의 항복에 슬퍼하면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금강산으로 들어가 풀을 뜯으며 여생을 마쳤을까. 그에 반해 그의 행적에는 역사서에 기록된 짧은 기록과는 달리 민간에서는 그에 비해 많은 전설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인제군 상남면에는 옥새바위가 있다고 합니다. 옥새란 ..
2022.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