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구한 역관 홍순언

2024. 4. 3. 09:24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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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언(洪純彦, 1530년~1598년)은 조선 중기의 한어 통역관, 외교관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입니다. 그는 남양 홍씨 첨사(詹事) 홍호(洪灝)의 동생인 예사 홍복(洪澓, 일명 홍복(洪復))의 12대손으로 가선대부에 추증된 홍겸(洪謙)의 서자였습니다. 서출이었던 홍순언은 일찍이 한어(漢語)를 익혀 한어역관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름은 덕룡(德龍)이고 자는 순언이었는데 뒤에 순언을 본명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선조 때에 역관을 지낸 홍순언은 중국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북경에 갔다가 명나라의 예부 관원이 사신들을 대접한다하여 홍등가로 이끌려갔습니다. 이때 홍순언은 그중 가장 값이 비싼 금 3천냥을 해어화채(解語花債)로 제시한 기생의 방에 들게 되었습니다. 홍순언은 돈이 너무 비싸서 기생의 얼굴이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천하의 미색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홍순언 앞에 기녀는 몸을 흐느꼈습니다. 기녀는 ‘천금을 내건 것은 그 돈을 손쉽게 낼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 당분간 몸을 보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의로운 사내가 있어 천금을 내고 자신을 기루에서 빼내 준다면 그를 평생 섬기려는 생각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처녀의 몸으로 기루에 왔냐고 물으니  아버지가 남경의 호부시랑인데 관가의 돈을 잘못 처리하여 죽게 되었고 부모의 장례를 치를 사람과 비용이 없었고,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홍순언은 이 젊은 여자가 아버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기루에 왔다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졌습니다. 홍순언은 이 여인에게 감명을 받아서  2천냥과 인삼을 팔아 마련한 돈 1천냥으로 그날로 류씨 소녀의 빚을 청산해주고 장례비용까지 대주었습니다. 류씨 소녀는 거듭 감사하다 하며 그에게 성과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그냥 조선의 홍역관이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조선의 역관들은 조정의 허락 없이도 사적으로 인삼과 비단으로 무역이 가능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동료 역관들도 알게 되어 그는 그들로부터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홍순언이 여인에게 준 2천냥의 돈이 공금이라 해서 대간으로부터 탄핵을 받고 파직되어 옥에 갇히는 일이 있었고 얼마 뒤에 풀러났습니다. 


  한편 류씨 소녀는 기방에서 풀려나 빚을 청산하고 부모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였던 예부시랑 석성의 집에 인사차 들렀습니다. 당시 석성의 본부인은 병환을 앓고 있어 류씨 소녀는 이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습니다. 부인은 별 차도 없이 세상을 떠났으나 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에 탄복하여 석성은 류씨 소녀를 자신의 계비로 맞이하였습니다. 이후 석성은 예부시랑으로 있다가 뒤에 병부시랑을 거쳐 예부상서로 승진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류씨 소녀는 하루하루 황금비단을 손수 짰습니다. 병부시랑의 후처의 자리에 있으면서 비단 짜는 작업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짠 비단에는 보(報)와 은(恩)이 쓰여 있었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석성이 류씨 부인에게 사연을 묻자 류씨부인은 아버지 류모의 빚과 장례비 마련이 어려워 기방에 갔던 일과 홍순언을 만난 일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석성은 그 일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조선에서 종계변무사신이 파견될 때마다 담당인사였던 석성인 사신을 만나주지 않았으면서도 홍역관이 왔느냐는 질문을 계속하였습니다. 이를 사신들이 이상하게 여겨 귀국 후에 조선 조정에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고려 말 1390년(공양왕 2) 이성계의 정적이던 윤이(尹彛)·이초(李初)가 명나라로 도망가서 이성계를 타도하려는 목적으로, 공양왕이 고려 왕실의 후손이 아니고 이성계의 인척이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윤이 등은 이들이 공모해 명나라를 치려고 한다면서, 이성계의 가계에 관해 고려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후손이라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뒤 명나라는 이 이야기를 믿고, 그 내용을 명나라의 『태조실록』과 『대명회전 大明會典』에 그대로 기록하였습니다. 조선에서 이러한 종계(宗系)의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394년(태조 3) 4월이었습니다. 이 때 명나라 사신이 와서 조선의 연해민이 해구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항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압송을 요구하는 항의문에 “고려배신 이인임지사성계 금명단자운운(高麗陪臣李仁任之嗣成桂今名旦者云云 : 고려의 신하 이인임의 후손인 성계의 지금의 이름을 단이라 하는 등)”한 것으로부터였습니다. 조선 태조에 관한 종계오기(宗系誤記)는 표면적으로 명나라와는 무관했습니다. 그렇지만 건국 직후의 조선으로서는 왕통의 합법성이나 왕권 확립에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명나라에서는 종계 문제를 계기로 이성계를 무시하고 의심하였고 종계오기를 빌미로 조선을 복속시키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더구나 이인임은 우왕 때의 권신으로 이성계의 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성계가 그의 후사라는 것은 가장 모욕적인 말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사항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문제는 이후 양국 간에 매우 심각한 외교 문제가 되었습니다.
  태조 때부터 시정을 위해 사신을 15회나 파견하였지만 전부 거절당하였습니다. 지속적으로 거부당하자 조선 14대임금인 선조는 “종계변무를 이번에 성사시키지 못하면 목을 쳐버릴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에 역관들은 겁에 질려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이윽고 1588년(선조 21년) 대제학(大提學) 황정욱(黃延或)을 종계변무사로 홍성민(洪聖民)을 부사로 파견했습니다. 이때 홍순언은 역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홍순언을 맞이한 것은 석성이었습니다. 명나라의 외무부차관이 조선 역관을 맞이하러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명나라 예부 안에 있는 주객청리사의 말단직원에 해당하는 통사판관이 조양문으로 나가 조선 사신을 맞이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전례없이 예부시랑이 나왔다는 것은 파격적인 대우였으며 그의 아내는 홍순언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절을 올린 이는 류씨 소녀였으며 홍순언은 당시의 일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석성은 이번 사행의 목적을 이야기하니 곧바로 도움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신들이 기다린 지 두 달이 지나자, 『대명회전』의 내용이 조선의 요구대로 바뀌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성계는 전주의 혈통을 물려받았고, 선조는 이한이며, 신라의 사공이라는 벼슬을 했다. 6대손 긍휴는 고려로 왔다.”
  홍순언이 목적을 이루고 돌아오자 쫓아온 이가 있으니 석성 부인이 보낸 선물을 전한 것입니다. 나전함 열 개에는 그녀가 짠 비단이 10필씩 있었고, 100필의 비단에는 보은(報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홍순언의 귀국으로 조선은 두 가지 큰 성과를 얻었습니다. 왕실의 계보를 바로 잡고 외교적 자신감을 회복했으며, 사대부와 백성들에게 떳떳하게 왕가의 정통성을 내보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조는 종계변무를 성공시킨 신료들에게 광국공신의칭호를 내렸으며, 그 중에 역관은 홍순언 단 한 명이었습니다.
  홍순언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때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이 난리에 명나라에서는 굳이 조선을 도울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석성만은 조선을 돕자고 하였습니다. 석성의 주장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명나라는 왜군을 주목하면서 조선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이 왜와 함께 명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임금의 피난도 왜군의 길잡이가 되어 북상한다는 것입니다. 대신들의 갖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관할하던 병부상서 석성의 도움으로 명나라 군대의 조선 파병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파병을 요청하기 위하여 또다시 명나라에 갔던 홍순언은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에 경비를 털어 무기재료를 구입했습니다. 명에서 반출하면 안되는 것이었지만, 석성의 허락을 받아 활을 만드는 궁각 1308편과 화약 재료인 염초 200근을 구할 수 있었고 전시에는 홍순언은 명나라 장군 이여송의 통역관이 되어 전장을 누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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