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로 간 조선여인 리진
2024. 3. 29. 09:24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구한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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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이폴리트 프랑댕과 클레르보티에가 공동으로 쓴 책 『한국에서』가 있습니다. 이 책에는 한국의 문화와 풍습, 그리고 일상생활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댕이 직접 보았다는 궁중 여인이 있으니 그는 바로 리진이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가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1886년이고 그 이듬해에 콜랑 드 플랭시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콜랭 드 플랑시에 주목하는 이유는 대리공사로 두 번 주재했다는 이폴리트 프랑댕의 책 내용처럼 그도 한국에 두 번 주재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콜랭 드 프랑시가 리진과 인연을 맺었을 것입니다. 프랑스 초대공사였던 콜랭 드 플랑시는 조선에서 리진을 만났지만, 얼마 후 발령을 받아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차마 리진과 헤어질 수 없었던 콜랭 드 플랑시는 리진과 함께 프랑스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결혼을 생각합니다. 리진도 그의 말에 따랐습니다. 리진은 1893년 5월 4일, 마르세유에서 파리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그보다 8년 앞선 파리를 찾은 사람은 유길준이었습니다.
‘시내에는 누대와 시장이 바둑판처럼 즐비하고, 연못과 정원이 별자리처럼 흩어져 있는데, 도로의 청초함과 가옥의 화려함이 세계의 으뜸이다. 런던처럼 웅장하거나 뉴욕처럼 부유한 도시도 파리에는 사흘 거리쯤 뒤떨어진다.’ 『서유견문』
리진은 파리에서 충격적인 서양문명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봉마르셰 백화점은 프랑스 최초의 백화점이었고 파리는 유럽의 수도 역할을 하며 프랭탕, 갈레리, 라팡예트 같은 백화점이 들어섰습니다. 또한 콜랭 드 플랑시는 가정교사를 들여서 리진이 불어를 배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접하며 여성들에게 개개인이 고유한 인격을 가진 개별적인 독립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에서는 여성은 그와 같은 대우를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프랑스는 법률적으로 모든 시민의 권리가 보장된 나라였고, 스위스와 더불어 몇 안되는 공화국이었습니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여전히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프랑스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 아래 일찍 앞서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지성들의 모이는 카페에서는 자신들의 경험한 것을 가지고 토론을 벌이고 그 중에 흥미로운 주제는 동양이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외교관을 둔 리진도 쉽게 파리 상류사회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에서 온 그는 쉽게 다른 이들의 주목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리진은 자신이 매일 만나는 서양 여인들에 비해 육체적으로 열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침에서』
‘안락의자에 푹 파묻힌 이 가련한 한국 여인은 너무나 야윈 나머지, 마치 장난삼아 여자 옷을 입혀 놓은 한 마리 작은 원숭이 같아 보였다.’ 『아침에서』
리진이 힘들어하자 콜랭 드 플랑시는 파리에 한국식 규방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노력에도 리진의 우울증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파리로 떠나온 지 4년 만에 리진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1896년, 콜랭 드 플랑시가 주한 프랑스 3대 공사로 임명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돌아오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가 조선에 오는 것을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고위 관료가 리진을 데리고 간 것입니다. 당시 프랑댕은 리진이 돌아간 곳은 왕실 무희단이라고 했으니 장악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장악원의 무희들은 여기(女妓), 즉 기생들로 조성의 법전인 『경국대전』에서는 이들은 지방 관아의 노비 중에서 선발한다고 하였습니다. 리진은 노비 신분이었던 것입니다.
2006년에는 김탁환 장편소설 『파리의 조선궁녀 리심』, 2007년에는 경숙 장편소설 『리진』,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리진은 실존인물을 모티브한 것입니다. 또한 뮤지컬도 만들어졌습니다. 리진은 조선 무희 리진과 초대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뮤지컬입니다. 리진이 우연히 콜랭을 만나 이국의 춤인 왈츠를 함께 추며 자유로움을 동경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리진'이 실존인물이었는지는 확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궁중무희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에 두 번씩 부임한 프랑스 외교관으로 초대공사를 지냈던 콜랭 뒤 프랑시라는 인물이 실재했으며 그에 관한 기록중 `한국 궁중무희의 신분을 벗어나게 해주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시가 한국여자와 결혼했다는 기록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리진이 실재했던 인물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품은 교수도 있습니다. 의구심을 품은 학자는 「앙 코레」에 나오는 리진에 대한 묘사가 역사적 사실에 비춰볼 때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습니다. 「앙 코레」에는 “서울 주재 프랑스 공사관의 젊은 대리공사가 왕궁 소속의 어느 무희에게 반했다. 그는 고종 황제에게 이 여인을 달라고 요구해 프랑스로 데려간 뒤 결혼했다. ‘Li Tsin-Fleur D’ame’(리화심 또는 이심)이란 이름의 이 여인은 프랑스의 관습, 가톨릭 교리에 감탄했으며 서구 언어에도 곧 친숙해졌다. 그러나 유럽 여인에 비해 신체적인 열등감을 의식하면서 원숭이처럼 야위었다. 대리공사는 서울로 다시 부임했다. 그러자 고관인 전주인이 그녀를 데려가 다시 궁중무희가 됐다. 인권에 대한 자각을 경험했던 리심은 금 조각을 삼키고 자살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두 소설에 나온 젊은 대리 공사를 콜랭 드 플랑시로 간주했으나 여러모로 맞지 않다는 것으로 플랑시는 한국 근무 당시 40대였고 대리공사도 아니었던 데다 외교부 문서에 미혼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또 프랑뎅이 조선에서 리심을 만난 것으로 묘사한 것과 달리 두 사람은 한국 근무기간이 달라서 만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당시 궁중무희는 외방관기로 내명부를 위한 내연에만 출연해 외교관과 만날 기회가 없으며, 외교관이 왕에게 궁녀를 달라고 청하는 것이 관례에 어긋난다는 점도 지적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교수는 「앙 코레」의 내용이 프랑스 독자의 흥미를 만족시키고 서구문화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허구적 진술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리진을 역사인물로 다룬 역사다큐에서는 프랑스 외교관의 아내로서 유명한 예술가들과 카페문화를 즐겼고 예술가로 활동했다고 하였는데, 사실이라면 그녀는 매우 주목을 끌었을 것이 틀림없고 누군가 그녀에 대한 기록을 남겼을 것입니다. 한편 다큐에는 프랑댕이 자신의 대고모부(할아버지 누이의 남편)라고 하는 클로드 칼메트가 등장하여 ‘그녀는 실제인물이다. 꾸며내거나 전설이 아니며 직접 보고 쓴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우연히 프랑댕의 유산을 물려받은 건축가일 뿐 스스로 프랑댕을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다는 점을 밝힌 바 있었습니다. 그는 프랑댕이 사실을 바탕으로 썼다는 증언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프랑댕이 쓴 책이 과연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철저하게 문명의 프랑스와 야만의 조선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가지고 쓴, 19세기 말 서구인들의 보편적 사고를 가지고 쓰여진 것이지만, 막상 리진을 다룬 역사다큐에서는 그에 대한 언급은 없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책에는 자신이 직접 보지 않은 것들도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임오군란에서 갑신정변까지 벌어진 일들이 적혀 있는데, 분명히 그는 1892년에 조선에 왔기 때문에 이 부분이 그가 직접 보고 겪은 것을 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역사 다큐에서도 플랑시가 결혼했다는 기록도 없으며 프랑스 외무부의 직원이 ‘어쩌면 프랑댕이 잘못 알았을 지도 모른다’고 분명히 언급했으며 마크 오랑쥬 교수도 외무부의 허가 없이 조선 여성과 결혼했을 가능성이 없음을 설명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프랑스 공사가 광산채굴권과 철도 부설권도 달라고 하는 상황이었는데 국왕이 여자 하나 내어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조선왕조에서 국왕이 여자를 하사하는 사례가 없었다는 것은 그 질문에 대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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