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역사학자가 찾아낸 직지심체요절

2022. 9. 14. 18:47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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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

금속활자의 발명은 역사상 중요한 발명 중 하나입니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42행 성서>가 서양사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금속활자로 인쇄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은 바로 한반도에서 인쇄된 것입니다. 바로 <직지심체요절>입니다. 직지심체요절의 본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줄여서 <불조직심체요절> 혹은 <직지심체요절>, <직지>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직지심체’라는 것은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써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보면,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 외에도 고려후기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 <상정예문>이라는 책을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만 실물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직지심체요절>이 1377년 흥덕사라는 절에서 50~100부가 금속활자로 찍어졌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권이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에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약칭 직지)'을 수집, 프랑스로 가져간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1853~1922년) 초대 및 제3대 주한 프랑스 공사와 그의 아내 이심

이 책은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쇄물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저자나 내용에 대해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은 승려인 백운 경한이 부처와 자신보다 먼저 살다간 승려들의 말씀이나 편지 등에서 뽑은 내용을 수록한 것입니다. 책의 저자인 백운화상의 호는 백운(白雲)이고 법명은 경한이라고 합니다. 그는 1298년 충렬왕 24년에 고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려서 출가하여 승려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중국 절강성 호주(湖州)지역 하문산 석옥청공화상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인도지공화상에게도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374년인 공민왕 23년에 입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국가가 시행한 기우제를 주관했을 만큼 큰 명성을 떨쳤을 승려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만큼 <직지심체요절>은 그 가치가 높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찍어낸 이 책은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습니다. 어찌하여 먼 이국땅에 고려시대의 활자본이 보관되어 있는 것일까요. 때는 1890년대 말로 올라가게 됩니다. 당시 주한프랑스공사로 있던 콜랭 드 플랑시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초대 조선 주재공사로 총 13년간 두 차례에 걸쳐 조선 프랑스 공사로 근무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도자기를 수집하여 프랑스에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기증된 도자기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공개된 것이 바로 <직지심체요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직지심체요절>이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역사학자 박병선

그리고 이 책이 다시 빛을 본 것은 젊은 역사학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박병선으로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프랑스 국립고등교육기관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던 그는 1967년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여기서 근무했던 이유는 바로 외규장각 의궤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이 약탈해간 것이었습니다. 사서로 근무하게 된 박병선은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를 뒤졌고 그 결과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이 책은 상권과 하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하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노력으로 1972년 프랑스  파리 도서관에서 ‘유네스코 세계 도서의 해’를 맞이하여 직지심체요절을 출품하게 됩니다. 이것이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고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박병선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72년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도 찾아낸 것입니다. 외규장각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인데요. 의궤라는 것은 ‘의식의 궤범’이라는 말로 왕실과 국가에서 의식과 행사를 개최할 때 그 준비와 이후의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그림을 그려넣기도 하였습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의궤는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 행사를 기록이나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로 국왕의 동정과 행사 내용 일체를 기록하고 그것을 공개하여 막강한 국왕의 권력을 견제하고 국가재정이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국왕의 명령서를 비롯, 관청 공문서, 업무 분장 상황, 행사 동원 인원과 명단, 소요 물품, 경비내역 등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시대 기록을 잘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건국 직후부터 만들어진 의궤 중 현존하는 것들은 17세기 이후의 것들입니다. 그리고 1926년 순장의 국장을 기록한 ‘순종효황제어장주감의궤’가 조선조의 마지막 의궤라고 합니다. 파리도서관 의궤는 프랑스군이 병인양요 때 약탈해 간 것입니다. 그리고 2011년 영구반환이 아닌 임대형식으로 145년 만에 국내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 역사학자의 노력으로 직지심체요절의 존재도 알려지고 외규장각 의궤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의지가 한 나라의 귀중한 보물을 되찾게 해주는 드라마틱한 이야기 중 하나로 기억되지 않을까 합니다.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것은 바로 <상정고금예문>입니다. 13세기 초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가 어수선할 때 고려의 무신정권은 강화도로 임시수도로 잡았습니다. 이곳에서 몽골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하는 작업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팔만대장경판의 제작이었고 이보다 앞선 1234녀에는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펴낸 것입니다. 이는 고려 인종 시기의 최윤의 등 17명이 왕의 명을 받아 고금의 예의를 수집해, 50권으로 펴낸 것인데요. 이는 <직지심체요절>보다 130년이 앞선 기록입니다. 현재 이 책은 전해지고 있으나 이것은 목판본이라고 합니다. 

증도가자

그러다 2010년,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더 이전에 만들어진 금속활자가 뉴스에 나왔습니다. 바로 증도가자라는 것입니다. 직지심체요절은 책이지만 이를 인쇄한 금속활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증도가자라는 실물 활자의 등장은 학계에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진위논란에 휩싸였는데 출처와 유입경로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증도가자를 진품이라고 보는 연구자들은 이 활자로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인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가짜로 보는 학자들은 필 획은 부식되지 않고 다른 부분만 부식되느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근접으로 촬영하면 균열과 손상의 흔적이 관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정교한 위조품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면서 활자의 글자와 책의 글자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같은 책에 같은 글자의 여러 글자가 등장하였고 그 중에 증도가자와 일치한 글자가 책에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가품으로 생각하는 학계에서는 이 증도가자라고 주장하는 활자가 당시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한 방법인 밀랍주조법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고 반박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증도가자를 진품이라고 한 연구자들은 이 증도가자가 주물사주조법이라고 밝혔으며 조선초기의 금속활자는 이런 주물사주조법을 이용하여 인쇄하였으며 고려의 것을 계승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증도가자로 하는 유물에서 추정된 먹을 토대로 탄소연대측정해 본 결과 직지심체요절보다 100년 이상 앞선 유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일부의 증도가자에서 20세기에 만든 인공원소인 테크네튬 성분이 2. 62%검출되었고 2017년 문화재위원회는 증도가자의 국가문화재 지정을 거부했습니다. 
이러한 논란 또한 고려가 금속활자 원조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고려의 금속활자가 적은 것은 당시 서적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았고 왕실용과 일부 지배층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사정이 달랐는데 고려의 최초 발명 이후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실용화에 성공하며 종교개혁, 과학혁명, 그리고 유럽의 문예부흥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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