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문장가 이규보
2022. 9. 19. 18:59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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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명종 때의 일입니다. 그는 나그네의 복장을 하고 바깥에 나갔다가 이상한 글귀를 발견합니다.
‘유아무와인생지한(有我無蛙人生之恨)’
이 말의 뜻은 ‘나는 있으나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의미를 알고 나서도 알쏭달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궁금한 왕은 해당 집주인을 불러 집에 하룻밤 머물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그 집의 젊은 주인은 처음에 거절하였다가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왕은 궁금증에 집 대문에 붙인 글귀에 의미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 뜻은 다음과 같았는데요. 아주 오랜 옛날에 까마귀가 꾀꼬리에게 노래시합을 청했습니다. 황당한 꾀꼬리는 이에 응했고 3일 후에 두루미의 심판 하에 대결을 하기로 했습니다. 꾀꼬리는 노래연습을 단단히 할 동안 까마귀는 노래연습을 하지 않고 개구리만 잡으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3일째 되는 날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시합을 하게 되었고 노래를 부르고나서 꾀꼬리는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였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두루미는 까마귀의 승리를 선언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두루미는 까마귀에게 개구리를 뇌물로 받고 그러한 판정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왕은 왜 이러한 이야기를 대문에 붙여놓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젊은 주인장은 이 문장은 이 나라 즉 고려의 과거 시험을 빗댄 표현이라 말을 하며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명문가문이 아니거나 돈이 없어서 떨어지는 사람이 많기에 이에 안타깝게 여기고 이러한 글을 지었다고 합니다. 왕은 이에 며칠 후에 임시과거시험이 있으니 꼭 응시해 보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궁으로 돌아와 임시과거를 명합니다. 이 과거를 보는 날 젊은 주인장도 과거시험을 보게 되었는데요. 그는 시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시제는 바로 ‘유아무와인생지한(有我無蛙人生之恨)’이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는 이에 마음 속으로 왕에게 감사함을 전달하고 자신있게 글을 쓰니 그가 장원급제한 이규보입니다.
이규보는 1168년에 태어났습니다. 이규보는 백일도 안되었을 때 온몸에 종기가 퍼지게 되어 괴로워하였습니다. 아이는 계속 울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절에 가서도 아이의 병을 낫게 해야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쭈어보았는데 ‘아이는 죽지 않으니 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점괘를 받았습니다. 부친은 그 말을 듣고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이 아이가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처럼 들리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절에서 해줄 수 있는 방도도 딱히 없다는 이야기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모가 아이를 안고 대문 밖에 서 있는데 한 노인이 이 앞을 지나가며 아이의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아기의 이름은 아직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노인은 아이는 귀한 아이인데 내버려 두는 것 아니다하며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인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 이후로 고비를 넘겨 무럭무럭 자라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여섯 살 이전에 글을 깨쳤으며 아홉 살 때에는 동네에서 기동(奇童)이라 불리며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인저는 여러 고전을 섭렵했고 불경과 도경까지 읽었습니다.
인저의 글재주는 자유분방했습니다. 창작능력이 워낙 뛰어났으나 이는 당시 고려의 과거제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과거시험은 고전의 명문을 기억해 내어 이를 적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그는 19세 때에 죽고칠현이라는 모임에 이따금씩 나갔습니다. 이는 중국의 죽림칠현을 본따 만든 모임으로 이규보는 이 모임에 나가며 과거시험에서 떨어진 안타까움을 달래곤 하였습니다. 특히 이 모임에서 오세재라는 사람은 이규보보다 나이가 35세 이상 많았으나 이규보와 친구가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주위사람들은 황당해 했으나 오세재는 이규보에 대해 글재주가 뛰어난 훗날에 반드시 이름을 알릴 사람이라고 추켜세운 것입니다.
그런 그였지만 그는 20세 때에 있었던 과거에도 불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불합격한 이유는 그의 자유로운 창작열 때문에 과거의 시제를 제대로 보지 않고 글을 지었던 까닭입니다. 이규보는 21세가 된 1189년에 다시 과거에 도전했습니다. 20살이 넘어서다 보니 그는 초조함을 느꼈는지 그는 꿈에서도 과거를 보러 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신선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어느 집 마루 위에 둘러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이들은 이십팔수(二十八宿)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에 놀란 인저는 그에게 절을 하고 자신이 과거에 붙겠느냐고 묻자 노인들 중 한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저 규성(이십팔수 중 하나)이 알 것이니 그 분에 여쭈어 보라고 조언합니다. 이에 같은 질문을 규성이란 노인에게 던졌으나 그는 꿈에서 깨고 말았습니다. 이에 그는 다시 한 번 잠에 들었다가 꿈을 꾸었으니 규성이란 노인으로부터 과거에 장원급제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는 이후 실제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게 되었고 이에 규성이 알려주었다라는 의미로 이규보라는 이름으로 고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였지만 기대와 달리 낮은 등급에 배정받아 실망했습니다. 이에 이규보는 벼슬직을 그만두려 했지만 부친이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던 24세 때에 부친이 돌아가시자 개성 천마산에 들어가 스스로를 백운거사라 칭하며 장자사상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더니 26세 때에는 『동명왕편』을 짓게 되었습니다.
동명왕의 이야기는…실로 나라를 세운 신이한 자취이니…이에 시를 지어 기록하여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聖人)이 이룩한 나라임을 천하에 알리고 싶은 것이다.”
동명왕편이라는 장편서사시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지금이야 이런 판타지같은 이야기가 흔한 소재이지만 당대의 유학자들에게 이러한 소재는 금기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신농씨, 복희씨, 요순임금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중국도 이러한 소재로 이야기를 만드는데 우리도 못할 것이 무엇이냐는 반문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명왕편을 통해 신성함과 실재성을 동시에 이야기하였습니다.
하지만 동명왕편을 지은 이면에는 벼슬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현실적인 문제와 얽혀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윤수란 사람으로 관료로서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이규보도 현실에 대한 비판과 도피를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규보 자신이 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이러한 생각에만 빠져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한 관료가 자신을 추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직을 위해 그를 위한 시도 바치면서 영웅서사시를 지으니 그것이 바로 『동명왕편』입니다. 따라서 동명왕편은 벼슬에 나아가고자 하는 현실적 욕구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유학자들이 거부감이 들만한 소재로 글을 썼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최고의 집권자는 무신들이었습니다. 아마 무신집권자에게 무력으로 세상을 여는 동명왕의 이야기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술동기에 대한 또다른 주장은 바로 신라계승을 염두에 둔 삼국사기에 대한 반대의견으로 저술하였다는 것입니다. 『동명왕편』은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주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명왕은 부여의 건국시조이고 주몽이 고구려의 건국시조이지만 부여에서 고구려가 갈라져 나왔으니 그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주몽도 동명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동명왕의 고구려 건국이야기는 당시 고려 사람들도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꽤나 친숙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이전에 『삼국사』라는 역사책에서 전하고 있는 설화로 옆나라 중국에서도 신이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에 반해 『삼국사기』에서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은 것은 아쉬워하며 『동명왕편』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이전에 『삼국사』라는 책의 존재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몽골의 침략이라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영웅적인 장편서사시는 당시 많은 민중들에게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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