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독립운동가 전형필이 품속에 지킨 훈민정음 해례본
2022. 10. 14. 20:30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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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이란 사람을 아실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 이름이 전형필의 이름을 따서 간송 미술관이라 지었습니다. 그는 1906년에 태어나 1962년에 생을 마감한 인물입니다. 그가 살아온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참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에 간송 전형필은 독립운동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져 있거나 6.25 전쟁에 참전하여 공을 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와 관련하여 그가 문제를 일으켰다거나 민주열사로서 행보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의 아버지가 충청도 황해도등지에 엄청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종로 일대에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전형필은 지금의 표현으로 따지면 그야말로 금수저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송 전형필은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 문화 유산 지키는 데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재력을 바탕으로 옛날 미술품을 수집합니다. 하지만 전형필의 미술품 수집은 돈많은 사람의 개인적인 취미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기에 민족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생각하고 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휘문고보에 다닐 때 자신의 스승인 고희동 선생에게 선조들인 남긴 문화재를 왜놈들로부터 지켜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이야기가 그에게 큰 자극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3.1운동 당시 33인의 한 사람이던 오세창이 그에게 사설박물관 건립을 건의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북단장을 사들이고 보화각을 설립합니다.
그가 그가 이렇게 사설박물관을 설립하고 미술품을 찾고 있을 때 도쿄에는 존 개츠비라는 영국인 변호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도쿄에 있는 골동품 상인에게 부탁해 그가 귀국할 때 연락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가 귀국하게 되면 골동품들을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도쿄의 골동품 상인에게서 연락이 왔고 그는 1937년 2월에 개츠비를 만났습니다. 전형필은 자신이 조선인임을 밝히고 그에게 조선의 문화재를 조선 땅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며 개츠비에게 조선의 골동품을 팔 것을 설득합니다. 이 일화에서 그가 그렇게 조선의 골동품들을 사모아야 했던 의미가 명확해졌습니다. 그렇게 전형필이 모은 우리 문화재 중에 점은 국보 10점, 보물은 11점, 그리고 4점은 서울시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신윤복의 미인도, 청자상감운학문매병·동국정운·금동여래입상 등이 전형필이 수집한 것입니다. 그리고 간송 전형필은 1940년에 한 학교를 인수하여 동성학원을 설립합니다. 전형필은 이 학교의 교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하며 일제 치하에서도 한글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미술품 수집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온 수호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한 민족교육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던 1943년 그에게 국문학자 김태준이란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경성제국대학과 경학원 등에서 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자신의 제자인 이요준이란 사람이 훈민정음해례본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용준은 이천의 자손이라고 하며 이천이 평안도 도절제사로 있으면서 여진족을 토벌한 공로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종대왕으로부터 하사받았다는 것입니다. 전형필은 책만 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는 일제치하였습니다. 일제의 감시를 따돌리고 중개인을 통해 이 책을 구입하게 됩니다. 책 구입가격은 1만원, 당시 기와집 한 채의 가격이 1천원 정도였다고 하니 고서적 중개인은 엄청난 가격에 놀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를 알기에 전형필은 아낌없이 돈을 내 준 것입니다. 일제의 치하에서 일본 간부들에게 발각되면 빼앗길 수 있었지만 다행히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1950년에 6.25전쟁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전형필은 애써 모아둔 문화재들을 두고 피난을 가야했지만 그 상황에서도 오동나무 상자 안에 넣어서 챙긴 것이 있습니다.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그렇게 그가 지킨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상에 공개되고 이것은 한글의 창제 원리가 만 천하에 알려졌습니다.
그럼 그가 그렇게 아낀 훈민정음 해례본은 구체적으로 어떤 책일까요. 훈민정음은 한글의 창제 목적과 원리를 밝힌 책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예의, 해례, 정인지의 서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종대왕이 직접 지은 예의는 한글을 만든 이유, 그리고 새로 만든 28자를 소개하고 표기하는 방법을 적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서문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예의입니다.
“國之語音異乎中國(나라말 소리가 중국과 달라)…”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유를 설명했는데 백성들이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이를 안타깝게 여겨 만들었다고 하니 훈민정음의 서문에는 세종대왕이 애민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강희안 등 여덟 명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 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예의부분입니다. 그리고 정인지가 쓴 서의 끝부분에는 '정통 11년(1446) 9월 상한'이라고 표기하였으므로 이는 바로 훈민정음 반포일입니다.
사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까지 한글의 청제 원리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특히 일본 학자들은 고대글자를 본 떠 만들었다, 몽골글자가 기원이다, 화장실 창살문양을 보고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한글을 깎아내렸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정확한 창제사실과 더불어 한글이 과학적인 글자이며 여기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한글의 창제에는 당시 조정의 대신들이 찬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집현전의 부제학이던 최만리가 상소를 올려 반대하였습니다. 당시 중국의 것을 받아들여 이를 표준으로 삼는 조선왕조에서 중국의 글자와 다른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며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것이 중국에 알려지면 비난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유의 문자를 가진 것은 몽골 · 서하 · 여진 · 일본과 서번을 예를 들며 오랑캐만이 가지고 있다 하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설총이 이두를 만들었어도 그것은 중국의 글자를 빌려 한 것이기에 큰 문제가 없고 이두를 통해서도 백성들의 문맹을 깨우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억울한 형살이나 옥사에 대해 한글을 쓰면 그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 최만리는 그러한 것은 문자의 알고 모르는 것이 아닌 관리들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달린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특히 세종은 한글의 편리함을 강조하며 설총이 이두를 제작한 것이 백성이 편리하게 하려 한 것이라면 언문도 백성을 편리하게 하는 것이라며 설총의 일은 옳고 자신이 하는 일은 그르다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이렇게 반대를 무릅쓰고 뚝심으로 일궈낸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담은 훈민정음해례본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한편 간송 전형필이 구입한 훈민정음 해례본 외에 한 권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다고 2008년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이것은 상주본이라고 합니다. 2008년 상주에 사는 배익기씨가 제보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발견된 장소를 따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습니다. 특히 간송 전형필이 구한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어제 서문’이 찢어져 있었는데 상주본은 온전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상주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던 조씨가 배씨를 고소합니다. 배익기씨가 자신의 책방에 있던 훈민정음 해례본을 훔쳐갔다는 것입니다. 조사장은 이 책은 2012년에 기증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배씨는 이 책을 감춘 뒤, 1000억 원을 배상하면 돌려주겠다고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그 와중에 배씨의 집에 불이 나서 상주본이 일부 탔다고 이야기해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일이 원만히 해결되어 훈민정음 상주본이 박물관에서 과학적인 보존을 받으며 대중들에게 안전하게 공개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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