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첨단 물시계 자격루

2022. 10. 13. 20:28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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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있는 물시계의 모습

만원짜리 지폐에는 조선시대의 임금 세종대왕과 그의 업적을 기리는 여러 보물들이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자격루입니다. 그런데 지폐에 실린 자격루는 세종대왕 때의 과학자 장영실의 작품이 아니라고 합니다. 지폐에 실린 것은 덕수궁에 있는 남아있는 자격루로 중종 때 개량한 것입니다. 세종 때 만들어진 자격루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시간이 맞지 않게 되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격루도 물을 흘려보내고 받는 부분만 남아 있습니.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격부분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면 지폐에 나와 있는 자격루는 기능면에서는 신라 때 만들어진 물시계와 그리 다를 것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만 원짜리 지폐의 자격루의 모습은 장영실이 만든 것이 아닐 뿐더러 찬란한 과학기술이 세계 최고에 다다르던 조선 전기 대의 위용을 가늠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의 자격루는 더 크고 웅장하며 정확한 시간을 알리는 모습이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지폐에는 이렇게 그렸을까. 그 이유는 세종 대 만들어진 자격루와 그 이후에 만들어진 자격루가 현재까지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물이 남아 있지 않은 것입니다. 대신 세종실록 보루각기에는 자격루의 작동원리가 상세히 적혀있습니다. 기록으로 복원이 가능하도록 구조는 물론 시보장치 작동원리와 순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자격루는 무슨 의미일까요. 자격루는 스스로 자, 칠 격, 물샐 누입니다. 자격루는 스스로 울리는 물시계라는 의미입니다. 
“제사를 행할 시간을 잘못 보고하다”태종 16년
“물시계가 틀려 서운관원을 의금부에 가두다” -세종2년-
당시 사용하는 물시계는 안의 물이 차오르게 되면 부표가 떠오르게 됩니다. 그 물들은 또다른 항아리에서 흘려보낸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표가 상승하게 되고 잣대가 꽂아져 있어 눈금을 읽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을 알리는 이가 잘못 알리는 경우가 있어 처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전에도 물시계도 있었지만 정확한 시계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1431년 세종대왕이 명을 내려 제작에 돌입하니 3년 만에 완성한 것이 자격루입니다. 자격루는 얼마나 정확했을까요. 자격루는 그 이전의 시계와는 차원이 다른 시계였습니다. 자동시보장치를 갖춘 명실 공히 세계 최첨단 물시계였습니다. 자격루는 2시간마다 한번씩, 하루에 12번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리는 시계입니다. 그리고 밤에는 종소리와는 별도로 북과 징을 쳐서 시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12번의 시간은 자(밤11시~1시), 축(오전1시~3시), 인(오전 3~5시), 묘(오전 5시~7시), 진(오전 7시~9시), 사(오전 9~11시), 오(오전 11시~낮 1시), 미(오후 1시~3시), 신(오후 3시~5시), 유(오후 5~7시), 술(오후 7시~9시), 해(오후 9시~11시)시에 울립니다. 그런데 종이 울리기만 한다고 해서 그 때가 자시인지 축시인지 어찌 알까 싶은데요. 자격루는 뻐꾸기시계처럼 자시에는 한 번 울리고 축시에는 두 번 울리는 시계가 아닙니다. 동양의 시간은 12간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자시에는 쥐인형이, 축시에는 소인형이, 인시에는 호랑이인형이 튀어나오도록 만들었습니다. 나오는 인형을 보고 몇 시인지 알 수 있는 구조인 것입니다. 

자격루 본래의 모습은 이렇게 거대했다.

밤 시간은 더욱 세밀하고 정확하였습니다. 5등분하여 북을 친 것입니다. 초경, 그러니까 대략 오후 7시에는 북을 한 번, 2경인 9시에는 두 번, 3경인 오후 11시에는 3번을 울리도록 한 것인데요. 그리고 각각의 경을 5등분하여 그 때마다 징을 울리도록 하였습니다.
“숨었다가 때를 맞춰 번갈아 올라오는 인형들 … 조금도 틀림이 없으니 … 귀신이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정확한 자격루는 어떤 식으로 작동했을까요. 일단 물시계니까 물이 있어야 합니다. 일단 물을 흘려보내는 역할은 파수로라는 물통이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이 파수호는 대파수호와 소파수호가 한 짝을 이루었습니다. 파수호가 2개인 것은 수수호에서 받는 물의 유입량을 일정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수수호에는 눈금자가 들어있습니다. 수수호의 물이 차면 시간 마다 부표인 눈금자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면 눈금자의 신호만큼 떠올라 둥그런 구슬을 하나씩 건드려 구슬이 굴러갑니다. 이러한 구슬은 총 12개의 구슬이 있었고 이 구슬은 떨어져 경사진 길을 굴러가게 됩니다. 굴러가는 구슬은 작은 구슬이었는데 이후 이 구슬이 큰 구슬을 움직여서 인형을 둘리고 북도 치게 하는 원리입니다. 이렇게 제작된 자격루는 정확성도 훌륭했지만 그 지속성에서도 놀라웠습니다. 무려 50년의 시간동안 정확하게 시간을 알린 것입니다. 현대에서 사용하는 시계도 50년 동안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대단한 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설계된 자격루의 구조 일정한 양의 물이 흘러내릴 때 걸리는 시간, 물이 차오르면서 잇달아 움직이도록 만든 장치 등이 매우 정교하다.

 그러면 자격루는 100% 자동이었을까요. 생각해 보면 구슬이 떨어지고 나면 누군가는 구슬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했고 수수호에 물이 차면 빼놓아야 합니다. 아마 이것은 사람의 힘을 빌렸을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자격루는 왜 만들어졌을까. 자격루는 세종대왕의 명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단 그 전에 해시계가 있었는데 해시계는 해가 지거나 흐린 날이면 사용할 수 없는 기계였습니다. 그리고 물시계는 사람이 그 때마다 손길이 필요했기 때문에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관리가 많이 필요한 물시계인 경우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시간을 잘못 알려준 책임을 물어 그 죄를 물으니 이건 임금으로서 마음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임금 입장에서는 정확한 시간을 알려 위엄을 나타낼 필요도 있었습니다. 백성들에게 세종대왕의 명을 받들어 만든 시계가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는 것은 임금의 권위를 백성들에게 알릴 좋은 장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정확한 시간에 따라 성문을 제 때에 열고 닫을 수 있고 제사도 정확한 시간에 지낼 수 있었으며 신하들의 조회시간도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밤에 5경 25점을 두어 세분화한 것은 도성의 치안 문제와 관련 있었습니다. 성문을 여는 시간을 인경, 문을 여는 시간을 바라라고 했는데 순찰을 도는 순라군들은 자격루의 종소리를 듣고 그 정확한 시간을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밤의 시간을 알리는 것을 점을 두어 세분화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뛰어난 인재가 필요했는데 그 구동력은 바로 장영실이었습니다. 장영실은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났냐면 장영실이 사망하고 난 후 자격루가 고장 났는데 이를 고칠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자격루는 장영실이 이전에 있던 세계의 첨단시계장치로부터 그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자격루처럼 구슬을 이용하여 종소리를 울리게 하는 것은 이전에 있었는데 송나라 때 소송이란 사람이 그러한 물시계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슬람에서도 아래로 떨어지는 공이 사발 모양의 종 위에 떨어져서 소리를 내도록 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영실의 자격루는 앞선 시대의 기술을 바탕으로 그보다 더 진보된 최첨단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기술 위에 우리만의 독창성을 덮어씌운 자격루는 세계적인 보편성과 독창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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