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의 금오신화
2022. 10. 19. 20:40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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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곤 했는데요. 그 중에서 각 시대마다 천재라는 타이틀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이가 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대표적인 인물로 김시습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1435년에 태어난 지 8개월째에 글을 깨쳤으며 두 살이 되었을 때에는 외할아버지게에 시를 배웠으며 세 살이 되었을 때는 직접 시구를 지었다고 합니다.
비도없이 천둥 소리 어디서 나나?
누런 구름 조각조각 사방에 흩어지네.
이것은 세 살 때 유모가 맷돌에 보리를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지었다는 시입니다.
그리고 이 후에는 이색의 후손인 이계전에게 <중용>, <대학>같은 성리학의 기본경전을 배웠는데 그 때 그의 나이 다섯 살 때였습니다. 이러한 신동의 탄생은 소문으로 널리 퍼졌고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439년, 그의 나이 5살 쯤이었을까요. 정승 허조가 그에게 가서 늙을 노(老)자를 이용하려 시를 지어보라고 합니다. 이에 ‘老木開花心不老’라고 답을 합니다.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다.’라는 뜻으로 이 꼬마의 재주에 70먹은 정승은 감탄했다고 합니다. 특히 그의 일화는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는데 바로 승정원에서 그를 시험하고는 비단을 하사한 이야기입니다. 50필 또는 100필로 전하는데 단 이 비단들을 혼자 가져가야 한다는 명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양의 비단을 다섯 살의 꼬마는 허리에 묶고는 질질 끌고 나가니 주위의 사람들을 또다시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후 열 세 살에는 사서삼경을 배울 정도로 천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9세이던 1453년 조선 단종 원년에 실시된 과거시험에 낙방했습니다. 김시습은 과거에 재도전하기 위해 절에서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1455년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른 바 계유정난이 터졌고 이를 계기로 김시습은 가지고 있던 책을 불태우고는 법명을 설잠으로 정하고 스님행세를 하며 전국을 유량하며 여러 시를 남겼다고 합니다.
김시습을 아껴주던 사람 중에 효령대군이 있었습니다. 김시습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효령대군은 조카인 세조에게 추천하여 불교경전을 번역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계유정난 당시 공신들이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신물이 났던 김시습은 다시금 궁을 떠나 방랑하였고 31살이 되던 해에는 바랑 끝에 금오산에 들어가 움막을 짓고 칩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역경>이란 책을 읽다가 잠들어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꿈속에서 바닷 속 섬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에 놀라 꿈에서 깬 그는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소설을 쓰게 되었는데요. 그게 바로 <금오신화>입니다. 또한 이와 함께 전해져 오는 이야기로는 김시습은 명나라에서 간행된 <전등신화>를 즐겨 읽었다고 합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등불에 의지하여 밤에 불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등불의 심지가 타들어가면서 그 힘이 약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을 좀 더 읽기 위해 심지를 잘라가며 불빛의 힘을 키워 읽을 만큼 흥미로운 책이 바로 <전등신화>로 아마 김시습은 영감을 얻어 <금오신화>를 저술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방적으로 <전등신화>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생각입니다. <금오신화>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생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의 모두 5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조선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조선을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라 할 수 있었으며 비현실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소설들은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세상을 떠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금오신화>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최초의 소설형태로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현재 점하고 있는 위치와 달리 <금오신화>와 관련한 이야기는 기록은 적습니다. 1614년에 지은 <지봉유설>에서 잠깐 언급되고 있는 <금오신화>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가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고 그 중 1884년(고종 21) 일본 동경에서 간행된 목판본 ‘금오신화’가 1927년에 최남선에 의해 발견되어 역수입되었습니다.
일단 <금오신화>에 나오는 단편들을 잠깐 살펴볼까요. <남염부주지>라는 이야기에서는 경주에서 사는 선비 박생이 등장합니다. 그는 오랫동안 유학을 공부했지만 합격하지 못한 선비였습니다. <역경>을 읽다 잠이든 그는 죽은 사람들이 가는 염부주라는 섬에 도착하여 염라대왕과 토론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염라대왕은 박생을 칭찬하면서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박생에게 세상에 잠시 다녀오라고 하였는데요. 꿈에서 깬 박생은 얼마 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천명에 어긋나는 세조정권을 비판하고 김시습 자신이 저승에서나마 그들을 처단하겠다는 이해되기도 합니다.
<만복사저포기>라는 이야기는 양생이라는 사내가 부처와의 승부 끝에 배필을 얻게 되었는데 아내는 3년 전에 죽은 넋이었다고 합니다. 저승의 뜻에 따라 아내는 다른 세상에서 환생하게 되고 양생은 여인을 그리워하다 살아가는 내용입니다. 김시습은 세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을 잊지 않고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생규장전>은 이생과 최처녀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인데 홍건적의 난으로 최처녀가 죽게 됩니다. 슬퍼하는 이생 앞에 최처녀가 나타나 같이 살게 되다가 저승으로 떠나고 이생 또한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종에게 충성하겠다는 김시습의 의지가 투영된 작품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취유부벽정기>는 홍생이라는 사내와 선녀가 만난 이야기인데 하늘로 올라간 선녀를 잊지 못해 홍생은 시름시름 앓게 됩니다. 그 때 선녀의 시녀가 나타나 하늘로 올라오라고 했는데 이 꿈을 꾸고 나서 홍생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선녀는 홍생을 데려가 천국에서 벼슬을 시키는 모습은 단종에 대해 의리를 지키는 김시습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 작품일 것입니다.
<용궁부연록>은 한생이라는 글을 잘 짓는 사람이 용궁에 초대받은 이야기입니다. 용왕의 딸을 위한 시를 지어주고 용왕에게 선물을 받은 그는 부귀영화를 쫓는 대신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시습은 왜 이와 같은 이야기를 썼을까요. 그가 꿈꾸는 성리학에 근거한 왕도정치가 있건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특히 계유정난에 대한 그의 분노는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단종복위계획을 밀고한 정창손을 길거리에서 마주치자 종노릇이 편하냐며 소리쳤고 김시습을 술에 취하게 한 뒤 집에 데려와 재운 신숙주에게는 깨고 나서 독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방랑 생활로 가정을 이루지 못한 것이 불효임을 깨달은 그는 안씨의 딸에게 장가 들었으나 얼마 후 아내가 죽었고 이에 따라 그는 다시 중이 되어 전국을 방랑하였습니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가 벼슬을 마다하고 방랑을 해야 했을 만큼 정치권은 그에게 실망 그 자체였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금오신화>의 저술로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펼치지 못한 아쉬움을 떨쳐내기에는 너무 역부족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금오신화>에 실린 5편의 소설 외에도 더 있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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