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

2023. 1. 6. 07:46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728x90

 

『음식디미방』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조리서로 17세기 조선의 음식문화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음식조리정장발효에 관한 책이자 146가지의 요리에 과한 조리법을 담은 책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책은 17세기의 책이므로 지금과는 다른 요리의 모습은 물론 지금은 사라진 요리도 담고 있어 그 가치가 큰 책입니다. 특히 ‘식재료를 보관하는 방법을 썼다.‘라는 점이 조리과학적인 측면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책이자 한식의 뿌리 원형을 제공하는 책으로 그 가치가 중요한 서적입니다. 
장씨부인이 쓴 『음식디미방』은 규곤시의방이라고 하는데 장씨부인의 남편인 석계 이시명이(혹은 저자의 후손들이) 이 책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규곤시의방』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규곤’이라는 말은 여성들이 거처하는 영역을 의미하는 말이고 ‘시의방’은 부인들의 살림법을 말합니다. 이 책의 내용 첫 머리에는 음식디미방이라 적혀 있으며 ‘디’는 ‘지(智)’의 중세발음입니다. 『음식디미방』이라는 책 제목은 ‘人莫不飮食也’(사람이면 누구든지 마시고 씹지 않는 이는 없다.) 鮮能知味也(그러나 맛을 잘 아는 이는 드물다)라는 『중용』이란 책에 실린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음식의 맛을 내는 비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즉. 이 책은 정부인 안동 장씨가 딸과 며느리들에게 전하기 위해 정리한 최초의 한글 음식 조리서로 1670년에 쓰여진 책입니다. 이 책에는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146가지에 대한 음식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으며 면병류(국수와 만두)에 과한 것이 18개, 어육류(물고기와 육고기)가 74개, 주류 및 초류(술과 식초)에 과한 것이 54개를 담고 있습니다. 


음식디미방의 저자는 석계 이시명의 아내인 장씨 부인으로 이 책을 쓴 정부인 안동 장씨는 재령 이씨의 정부인으로 시·서화에도 능했으며 구민구휼에 힘써 여중군자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씨부인은 남편과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삼대의 퇴계 학통을 계승하는 데 기여를 했을 정도로 학문적으로 뛰어난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셋째 아들이 이조판서를 하게 되자 숙종으로부터 정부인 교지를 받게 되었고 그 때부터 정부인 안동 장씨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쓴 『음식디미방』은 17세기 안동과 영양 일대에서  무엇을 먹고 어떤 재료를 이용했는지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장씨부인은 왜 이런 책을 남겼을까. 그의 시댁과 더불어 친정 역시 유학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경당 장흥효였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그 사이에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장흥효는 학봉 김성일의 문인으로 당대 학자로 인정받았으며 장계향 역시 <소학>과 <십구사략>을 깨쳤고, 13세가 되어서는 <백발 늙은이> <몸가짐을 조심하다> <소소한 빗소리>와 같은 주옥같은 시들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19세이던 1616년에는 영해 나랏골에 살던 재령 이씨 가문의 이시명과 결혼하여 전부인이 낳은 1남 1녀를 포함 그가 낳은 6남 2녀를 훌륭하게 키웠으니 둘째 휘일, 셋째 현일, 넷째 숭일은 경상도를 대표하는 학자로 명성을 날렸으며 특히 갈암 이현일은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퇴계 이황의 영남학파를 계승하였습니다. 이렇듯 장씨부인의 친정과 시댁의 유교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고 본인은 큰 살림을 맡아야 하는 위치에서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장씨부인은 이러한 일을 훌륭하게 해낸 여성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경험을 후대에 알리고자 이러한 책을 남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물론 『음식디미방』 이전에도 요리책이 있었습니다. 1450년에 지어진 『산가요록』은 조선 전기의 어의 전순의가 저술한 책으로 농사짓는 법, 조리 법, 채소와 과일 저장법을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조선 전기의 요리전문서라는 것은 드물었고 농법의 일부로 여겨져 인용되었고 중국의 것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들은 대부분 사대부들에 의해 한문으로 쓰여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1809년에 나온 『규합총서』는 살림을 여성을 위한 조리서가 등장하고 1913년에 나온 『반찬등속』은 한글조리서였습니다. 
특히 이 『음식디미방』은 훈민정음이 널리 사용하기 전인 17세기의 서적으로 한글의 원형을 살피는 자료로서 그 가치가 높은 책입니다. 예를 들면 ‘다지다’라는 의미의 ‘쪼아’라는 표현을 쪼사라고 표현한다던가 지금의 고명이라는 단어를 교태라고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이 책은 17세기 후기의 우리말 문법과 우리말 소리의 특징을 담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언어의 모습 그리고 경상도 북부 지역의 사투리도 알 수 있습니다. 


유교적 가풍이 중요시 여겨졌던 당시 제사는 상당히 중요한 의례였습니다. 그에 따라 제사의 쓰이는 술 역시 중요했는데 이러한 술을 빚는 것은 자연스레 안주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술은 그 빚는 법의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을 안 장씨부인은 『음식디미방』을 통해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그리하여 146가지의 요리 중에 술빚는 법이 총 51가지에 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당시 사회적 모습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씌여진 시기에는 아직 고추가 내륙으로 전파되기 전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에 소개된 음식들은 고추를 사용하지 않았고 따라서 덜 자극적이고 자연적인 맛을 담았습니다. 따라서 음식이 대체적으로 담백하고 버섯을 많이 사용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음식의 예전 모습인데 예를 들면 현대의 잡채는 당면이 들어가 있는데 당시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가고 당면이 아예 들어가지 않았으니 말 그대로 잡채였습니다. 그리고 꿩고기를 사용하고 즙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음식디미방』에는 누르미라는 조리법이 있는데 18세기의 요리책 『규합총서』에는 거의 나타나 있지 않고 현대에는 사라진 조리법으로 지금은 안동일부지역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음식디미방』에는 지금은 사라진 우리 선조들의 조리법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고추에 널리 퍼졌는데 『음식디미방』을 저술하던 17세기에는 어떻게 매운 맛을 냈을까. 그것은 천초라는 향신료에 의한 것이었으며 고추의 전파됨에 따라 반반 사용되던 천초는 현재 그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따라서  『음식디미방』은 가장 고유한 한식의 모습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저장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냉장법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관이 중요했습니다. 『음식디미방』은 어떤 저장법을 소개하고 있을까. 복숭아의 경우 밀가루로 죽을 달이고 소금을 조금 넣어 새 독에 넣고 복숭아를 죽 가운데 넣어 많이 봉하여 두면 겨울에 먹어도 제철에 딴 것과 같다.‘라고 기록하였으며 수박과 동아같은 경우는 깊은 농에나 큰독에 쌀겨를 넣고 얼지 않은 방에 두면 썩지 않는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생포는 싱싱한 간 안든 전복에 참기름을 발라 단지에 가득 넣고 다시 참기름 한 잔 부어두면 오래두어도 새 것 같다고 하였으며 가지는 팔구월에 늙지 않은 가지를 꼭지 채 한 치 남짓씩 칼로 끊어 밀랍에 녹여 꼭지 끝에 발라 한열이 적당한 곳에 두고 쓰라고 하였습니다. 당대 요리책은 몇 개 있지만 이렇게 저장법까지 나와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특이 장씨부인은 음식재료에 이해도가 높았습니다. 멧돼지는 푹 삶은 다음 조리하라고 했으니 이는 그것은 고기의 질긴 성질이 연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돼지같은 경우는 두껍게 썰은 후 참기름이나 간장에 재워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잡고 이후 밀가루를 묻여 기름장에 볶아 익히는 방법은 지금은 널리 사용되는 방법일지 몰라도 당시 환경에서는 상당한 조리지식을 갖춘 장씨부인의 노하우인 것입니다. 
『음식디미방』의 146가지 음식 중 16가지 음식 이름 밑에는 ‘맛질방문’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습니다. 맛질은 장부인 장씨의 외가이며 맛질방문은 장씨부인이 친정어머니에게 듣고 베운 요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쓰게된 시점은 70이 넘어선 그 때까지 축적해온 요리경험을 이 책을 후손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람대로 이 책은 현대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교과서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