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이 만든 거북선

2023. 1. 27. 19:15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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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영 귀선

임진왜란 때 이순신은 많은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당시 패전을 거듭하던 조선군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순신의 활약과 더불어 기억되는 것이 바로 거북선입니다. 거북선 이전에도 삼면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항해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조선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배를 만들어 일본 열도와 통하였고 백제는 발달된 조선술로 해상제국을 건설했을 것이며 장보고의 해상 장악에는 바로 발달된 항해술과 조선술이 자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도 이러한 기술은 이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몽골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고려를 통하여 배를 만들게 한 것은 단지 우리나라가 부마국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시 고려에는 발달된 조선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이전만큼 활발한 해상활동을 했다고 보지는 않으나 선대부터 이어온 발달된 조선술을 가지고 있어 이를 활용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거북선이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럼 거북선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임진왜란 시기에 활약한 거북 모양의 철갑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철갑선에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이러한 거북선의 기초가 된 것은 판옥선으로 판옥선은 조선시대 전투에 사용한 배 맹선을 발전시킨 것입니다. 맹선은 조선 초기에 운영하던 전선으로 당시 우리나라는 수많은 왜구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당시 왜구들은 화기들과 더불어 배에 방패를 세워 우리수군의 총통을 막으니 맹선으로 왜의 수군을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온 것이 바로 판옥선입니다. 판옥선은 전투목적으로 개발된 배로 80톤에서 280톤에 이르는 당시로서는 대형선박입니다. 평저선인 판옥선은 갑판이 2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판옥선 이전의 전함들은 한 개층뿐이어서 전투원과 비전투원이 함께 있어 활동에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판옥선에서는 비전투원인 노군이 아래에서 노를 젓고 전투원은 상장 위에서 적을 내려다보며 공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넓은 상장, 전투를 위해 배의 갑판 위에 구조물을 세운 뒤 대포를 설치하여 긴 사정거리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간혹 이순신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조선의 배가 왜군의 배를 들이 박아 부수는 이른바 충파를 선보이는데 이러한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조선의 배가 일본의 배보다 단단한 목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파괴력이 큰 화기를 실을 수 있었으며 맹선보다 속도도 빨라 왜구 배를 추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판옥선도 약점도 있습니다. 연근해항해용이었기 때문에 수송력이 딸리고 긴 항해에는 적합한 배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일본의 배에 비해 속도가 뒤처졌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것은 약점이라고 하기엔 판옥선 자체가 연근해용으로 만들어진 선박이므로 크게 문제가 될만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러한 판옥선이 임진왜란 시기에는 주력으로 활약한 전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판옥선과 더불어 거북선은 임진왜란 시기에 활약하였으니 이순신 장군에 대패한 왜군 장수는 거북선을 '전설 속 바다 괴물'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거북선은 이순신이 처음 만든 것일까. 
 "태종 13년인 1413년 2월, 태종이 행차 도중 현 임진나루인 임진도를 지나다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했다“ 『조선왕조실록』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해 낸 1592년 이순신장군 별제귀선 3D 복원도.

기록을 보면 이미 임진왜란보다 180여년이 앞서 거북선이 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은 3층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선 최초의 거북선은 2층 구조로 본체 길이는 13.1m, 폭은 5.9m로 이순신 거북선보다는 작고, 80여 명의 인원이 탑승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조선 최초의 거북선이 만들어지던 시기는 화포의 발달이 미약하였고 근접전에서 활 위주로 전투하던 시기를 고려하여 만들어진 배라면 임진왜란시기에는 화포의 성능이 발달한 상태에서 초기의 거북선보다 규모가 크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초기의 거북선은 강에서 띄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상판을 목재로 만들었습니다. 한편 신라시대 때 장보고가 청해진을 경영하며 배 위에 방어용 등껍질을 씌운 독특한 전투선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이 배는 속도가 빠르고 활이나 창을 이용한 적의 공격을 잘 막아냈으며 모양도 거북선과 흡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려말부터 거북선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 시기에도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럼 거북선의 발명과 이순신은 아예 관계가 없는 것일까. 이순신 장군은 기존 거북선의 장점과 판옥선의 장점을 모아 새로운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개량한 정도 혹은 발명에 가까운 배의 형태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광해군이 재위하던 1622년에는 ‘빨리 이순신의 거북선을 만들라.’고 말했던 것은 조상들은 거북선을 만든 이는 이순신으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럼 임진왜란 시기의 거북선은 철갑선이었을까. 우리는 한 때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고 거북선을 생각해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거북선 개판(귀배판)에 칼·송곳을 꽂았다는 기록만 있을 뿐 철갑을 덮었다는 어떠한 기록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럼 왜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일까. 
 “…대선 중의 3척은 맹선(장님배·盲船·거북선)이며, 철(鐵)로 요해(要害)하여…”  『고려선전기』
 “적선 중에 모두 철로 장비한 배가 있었는데 우리의 포로 손을 입힐 수 없었다.” 『정한위략』
위 기록은 일본 측의 기록인데 이를 토대로 보아 철갑선이라는 수식어가 거북선이 붙은 것으로 보입니다. 19세기 이후에는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패하게 된 요인을 조선 수군이 보유한 신무기(총통)과 철갑병선에서 찾았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과장이 더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의 배는 삼나무로 만들었던 데 비해 조선의 배는 그것보다 더 두꺼운 소나무로 만들어졌고 이 배들이 충돌할 경우 조선의 배가 온전할 확률이 높으므로 굳이 철갑으로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배의 덮개도 목판으로 만들었으니 만약 철판으로 만들었을 경우 그 무게가 15배가 무거워지므로 배에 무리가 가고 빗물과 바닷물이 쉽게 녹이 슬기 때문에 배의 수명은 짧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비용도 비쌀뿐더러 칼이나 창을 꽂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덮개를 철판으로 덮으면 이 배를 지탱하기 위해 배는 더 무거워져야 하고 그러다 보면 기동성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해군사관학교가 새로 건조하는 임진왜란기 거북선 형상

하지만 임진왜란 시기에는 거북선보다는 판옥선이 주력부대였다고 합니다. 그럼 거북선은 어떠한 역할을 하였을까. 당시 거북선은 실제로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함대의 선봉돌격선으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거북선이 먼저 달려들어 적의 주력을 깨뜨리면 나머지 판옥선이 달려드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에는 3~5척의 거북선이 있었고 영조 때에는 14척, 정조 때에는 40척의 거북선이 있었습니다. 
한편 1886년 중국 상하이에서 출판된 ‘The Chinese Recorder and Missionary Journal’에서 조선에서 영국영사관으로 근무한 에드워드 파커는 당시에 19척의 철갑 거북선이 운용되고 있었다고 기록하였으며 『고종실록』에도 철갑 거북선에 대해 전하고 있으며  일본 해군장교 오가사와라 나가나리는 1898년 그의 『제국해군사론』에서 ‘이순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의 창조자이며, 거북선 등에는 동판을 덮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국내의 한 교수는 거북선은 기본적으로 나무판자로 덮어 완성했지만 전쟁의 조짐이 있거나 무장이 필요한 경우 판자 덮개 위에 금속판을 씌우거나 송곳칼을 꽂았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거북선의 길이는 33.7m, 너비는 10.4m, 높이는 6.6m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돛을 달 수도 있었고 노만 저어서 갈 수 있기도 했다고 하나 그 실체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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