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2023. 4. 30. 08:46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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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경제지

조선 후기에는 실생활에 필요한 여러 백과사전식 농업 관련 책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중에는 홍만선의 『산림경제』와 뒤를 이은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 그리고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가 있습니다. 이 책은 1827년 편찬한 책으로, 실생활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담았습니다. 이 책은 『임원십육지』라고도 불리는데 농업뿐 아니라 전원생활을 하는 선비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기예와 취미 등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요소를 모두 다루었으며 16가지분야로 나뉘어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113권 52책으로 방대한 분량이며, 인용한 책만 해도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저서와 자신이 저술한 책 7종을 포함하여 모두 893여 종에 달한다고 하니 당대 최고의 실용적인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천하의 사물 가운데 시공을 통틀어, 하루라도 빠트릴 수 없는 것을 찾는다면 무엇이 으뜸이가? 곡식이다! 지금 시대에 천하의 일 가운데 시공을 통틀어 신분의 귀천과지식의 다과에 관계없이 하루라도 몰라서는 안 되는 것을 찾는다면 무엇이 으뜸인가? 농사다!’
이 책은 지은 서유구가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밥버러지가 되지 마라. 관직이 없는 이들은 자기 식솔의 의식주는 자신이 책임져라. 주경야독의 건강한 선비정신을 지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고루하고 헛된 학문을 '흙으로 끓인 국(土羹)이요, 종이에 그린 떡(紙餠)'이라고까지 경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밥 먹고, 씨뿌리고 거둑땀 흘리는 일상에서 개혁이 일어난다고 보며 본성이 어떻고 이치가 어떻고 하기 전에 바지를 걷어붙이고 쟁기질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서유구


서유구는 명문가의 집안의 자제였습니다. 판서 서종옥(徐宗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제학으로 문명을 들날린 서명응(徐命膺·1716~1787)이고 작은 할아버지는 삼정승을 지낸 서명선(徐命善·1728~1791)이었습니다. 생부는 이조판서 서호수(徐浩修·1736~1799)이며 어머니는 김덕균(金德均)의 딸이었고 생의 할아버지 서명응은 『고사신서(攷事新書)』를, 아버지 서호수는 『해동농서(海東農書)』를 지었으며 형은 서유본(徐有本·1762~1822)으로 『좌소산인문집(左蘇山人文集)』을 남겼으며 부인이 『규합총서(閨閤叢書)』의 저자이자 여류 시인으로 유명한 빙허각(憑虛閣) 이씨였습니다. 그리고 서유구는 27세가 되던 1790년에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초계문신으로 발탁되어 규장각에 들어갔으며 34세에 순창 군수가 되었는데 이때 농서를 구하는 정조의 윤음(綸音)에 접하고, 도 단위로 농학자를 한 사람씩 두어 각기 그 지방의 농업 기술을 조사, 연구하여 보고하게 한 다음, 그것을 토대로 내각에서 전국적인 농서로 정리, 편찬하도록 하자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왕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 노론의 세상이 되었고 1806년 43세에 중부 서형수가 김달순의 옥사에 연루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서유구는 벼슬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서유구는 실제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이에 더 나아가 일상생활과 농촌의 삶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농학 관련 지식을 총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전원생활의 지식을 집대성하여 농업에 관한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 어업에 관한 『난오어목지(蘭湖漁牧志)』를 저술하였고, 이를 종합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그의 아들 우보(宇輔)와 함께 편찬하게 된 것입니다.
나이 오십에 시작해 30년에 걸쳐 113권에 달하는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지』를 편찬하게 되었을 때 그는 얼마나 감격했을까. 하지만 그는 여타 다른 실학자들에 비해 그다지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닌데요. 하지만 서유구를 연구한 사람들은 그를 실학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받는 정약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인물이며 더 나아가 서유구야말로 ‘실학의 집대성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서유구란 이름이 낯선 이유는 그의 책이 너무 방대하니 113권이나 되는 책에 글자 수가 252만자, 표제어만 2만8000여개에 달하고 여기에 더해 전문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루는 분야도 농사, 경제, 축산, 의학, 상업, 의례, 건축, 음식 등 열여섯 가지나 됩니다. 이런 규모의 저작은 그 시기 한·중·일을 통틀어 『임원경제지』가 유일하다고 하며 조선시대 개인의 단일 저술로는 가장 방대한 분량입니다. 참고한 자료만 해도 자신의 저서 7종을 포함하여 900여 권에 이르고 책 앞부분에 분류하여 소개해 놓은, 직접 참조하고 인용한 문헌만 해도 책 한 권 분량입니다. 


서유구가 이렇게 방대한 지식을 정리할 수 있는 원천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가 그렇게 많은 책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문이 여러 대에 걸쳐 많은 서적을 소장했기 때문이고 이것이 서유구가 견문을 쌓을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서유구 본인도 책을 구입하는데 열성이었으므로 첫 번째 종류별로 비교하며 구입하고, 두 번째 대립되거나 상대되는 학파의 서적을 구입하고, 세 번째 빠진 책이나 소략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을 구하고, 네 번째 같은 계통이나 동일한 성격 묶여질 수 있는 것을 모으고, 다섯 번째 시대에 따라 구입하고, 여섯 번째 학파나 유파의 전개양상을 살펴서 구입하고, 일곱 번째 최근에 작성된 목록에서 찾아 구입하고, 여덟 번째 관심 있는 서문이나 감상문을 통해 현존 여부를 따져 구입하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서적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그의 역작 『임원경제지』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임원경제지』는 ‘전원’을 뜻하는 ‘임원’, 그리고 물질적 생활을 말하는 ‘경제’를 붙인 말로 그가 관심을 가진 농업은 물론, 의식주를 비롯해 예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전체 내용을 차례대로 담았습니다. 이 책은 「본리지」부터 시작합니다. 이 「본리지」에서는 토양, 비료, 종자, 곡식 종류, 농기구 등 곡물을 중심으로 한 일반적인 농업을 다루었으며 그는 농업을 머고 사는 문제이자 나라 경제의 토대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농업을 행하기 위해서는 날씨와 기후에 대해 다루어야 하므로 「위선지」에 수록되었고 「전어지」에서는 사냥, 어업, 목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조지」에서는 잡은 물고기나 사냥감에 대한 조리법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요리법과 술 담그는 법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주거와 관련된 사항은 「섬용지」에서 다루고 있는데 집을 지을 때 필요한 재료와 공구, 그것을 이용해 집 짓는 기술, 또 집을 짓고 난 뒤 그 안에 들여놓을 가구와 촛불 등 조명시설까지 알리고 있습니다. 의식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나면 「보양지」에서는 식이요법이나 호흡법 같은 건강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아플 때의 치료법을 담은 「인제지」는 『임원경제지』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제지」는 『동의보감』보다 더욱 알찬 정보를 담았다는 평가를 현재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인 향음주례, 향약 등을 정리해 놓은 「향례지」, 독서, 서예, 악기연주법, 그림 그리는 법을 설명한 「유예지」, 장서를 비롯해 서예도구인 문방구, 차 마시는 다기 등에 대해 소개한 「이운지」, 어떤 곳에서 살아야 할지 삶의 터전을 설명한 「상택지」, 가정경제와 상업 활동에 대한 것을 담은 「예규지」등 1만 여개의 표제어와 그에 따른 방대한 정보와 설명을 위한 삽화까지 포함하여 『임원경제지』를 이루공 ᅟᅵᆻ습니다. 


1804~1840년 펴낸 백과사전이자 ‘조선의 브리태니커’로도 불리는 『임원경제지』는 4종의 필사본이 전해지지만 안타깝게도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임원경제지』에는 현대의 각 분야의 종사자들이 번역작업에 매달렸으니 서유구가 가진 방대한 지식이 놀랍기만 한데요. 그러나 서유구보다 그의 부인과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수십 년 동안 쓰고 고치는 수고를 항 책을 완성하였으나 이 책을 지키고 관리하는 것을 부탁할 사람이 없구나, 어쩌다 펼쳐보면 슬픔 때문에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금화독경기』
 따라서 필사본으로만 전해지던 이 책은 조선왕조가 망하면서 출간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다가  『임원경제지』의 완역은 최근에서야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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