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도의 비밀

2022. 7. 14. 21:19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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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도

1970년대 한 무덤의 발굴이 있었습니다. 경주 155호 고분이었는데요. 누구의 무덤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적석목곽분인 이 무덤에서는 만 여 점이 넘는 유물이 발굴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된 것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무껍질에 그려진 말의 그림이었습니다. 특히 이 그림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신라의 회화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인데다 그 수준도 높았기 때문입니다. 1500여 년 동안 묻혀 있었으니 발굴 당시 모습은 안좋을 수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발굴에 엄청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젖은 솜과 화선지로 덮어 서울로 이송된 그림 바로 천마도였습니다. 이 천마도는 가장 자리가 벌어져 나무껍질이 보이는데요. 그 재질은 바로 백화수피, 자작나무 껄질로 만들어졌으며 적, 백, 흑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말다래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합니다. 등자 아래쪽으로 양 옆에 채워지는 것으로 말이 달릴 때에 진흙이 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던 2009년 적외선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진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머리에 뿔의 모습이 찍힌 것입니다. 뿔이 달려있으면 이것은 말이 아니게 됩니다. 그러면 뿔이 달린 동물은 무엇일까. 현재 열대 초원에서 서식하고 있는 목이 긴 동물이 아닌 훌륭한 임금이 나타나면 보인다는 상서로운 동물, 즉 기린이라는 것입니다. 전한말의 학자 유향이 지은 『설원』이란 책에서는 ‘기린은 노루 몸에 소꼬리를 하고 있으며 둥근 머리에 뿔이 하나다.’라고 적었습니다. 천마도의 모습, 그러니까 날개가 없고 뿔이 있는 모습은 상상 속의 동물 기린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상의 동물 기린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바로 머리 위의 뿔입니다. 이 뿔 때문에 천마도의 그림이 기린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때는 천마도의 주인공이 기린이라는 것을 주목하게 되었고 상당수 학자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듯 했습니다. 게다가 말은 꼬리가 내려가 있는데 천마도의 꼬리는 하늘을 향해 있으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천마도의 주인공은 역시 말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천마의 머리에 난 뿔은 뿔이 아니라 말상투라고 합니다. 말상투는 유라시아를 활동무대로 하는 기마민족에게 흔히 있는 문화로 말의 갈기를 색실로 꼬아 말아 올린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안악 3호분의 대행렬도를 보면 말이 말상투를 하고 있는데 이는 천마도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뿐만 아니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 토기에서도 말 머리에 말상투가 표현되어 있으며 흥덕왕릉의 무덤에서도 12지신 중 말의 그림에 말상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마민족의 표상인 말상투가 어찌하여 신라의 토우와 무덤의 장식에서 발견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이러한 천마도와 비슷한 그림이 중국에서도 발견된 바 있습니다. 1977년 발굴된 중국 감숙성 주천시의 정가갑 5호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는 천마그림이 그 예입니다. 잘 빠진 말이 구름의 뚫고 나가는 모습이 신라의 천마도와 비슷합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슷한 그림이 나왔을 때에는 단지 우연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과 옛 신라 땅 간에 교류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박헉거세의 탄강설화에서도 백마가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신라의 순장유적에서 말도 발견되었습니다. 말이 만약에 흔하지 않았다면 순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라라고 하면 기마민족이라 떠오르기 쉽지 않은데 사실 많은 양의 말을 방목했고 말이 신라의 생활에서 깊숙이 침투했기에 천마도의 그림과 순장, 그리고 박혁거세 설화를 있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고대에는 말이 전쟁에서 강한 전투력을 발휘하였으니 말을 사육하는 것은 국가적인 사업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은 권력자의 상징으로 작용했을 것이며 따라서 말에도 화려한 장식을 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다래도 화려한 모습으로 그려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천마도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이 천마도가 그려진 나무의 재질은 백화수피, 즉 자작나무 껍질이라고 위에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추운 한대지방에서 자란다는 자작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자라긴 하지만 천마도처럼 그림으로 그리기엔 크기가 적당하지 않다고 합니다. 크기가 커야하는데 따라서 천마도에 사용된 백호수피는 북방에서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럼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는 북방유목민족으로부터 수입해 온 것일까요. 아니면 자작나무만 들여와 그렸던 것일까요. 
그럼 다시 천마도가 발견된 천마총으로 돌아오면 이름에 관련한 논란도 있었습니다. 신라왕의 무덤이 분명한데 말 이름을 붙인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경주 김씨 문중이 국회에 이름 변경 청원을 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위에서 재심의까지 벌인 결과 고분의 주인이 왕이라는 증거가 없으므로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기로 했답니다. 

천마도가 발견된 천마총

그런데 이러한 천마총이 적석목곽분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돌무지덧널무덤이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신라 4~5세기 신라 지배층인 왕과 귀족의 무덤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 무덤은 피장자의 목곽 주변에 목곽을 쌓고 그 위에 돌과 흙을 올려놓은 무덤입니다. 그리고 목곽이 썩으며 무덤이 내려앉아 무덤의 내부는 더 이상 산소가 통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다양한 껴묻거리가 발견되었고 이후 삼국의 다른 나라들처럼 돌방무덤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적석목곽분이 김씨들이 등장하면서 나타나게 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발굴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유물들이 금관과 장신구, 금으로 만든 허리띠, 띠고리, 뿔잔 등 북방기마민족들이 즐겨 사용한 것들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웃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와는 다른 것으로 또한 중국문화와는 판이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적석목곽분은 북방의 초원지방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그 지역사람들은 유력자가 죽으면 생전에 살던 통나무집을 돌과 흙으로 그대로 덮는다고 하며 그리하여 북방초원지역의 적석목곽분을 파보면 난방시설이 보인다고 합니다. 
결국 무덤의 방식과 천마도가 그려진 백화수피의 재질, 그리고 해당 무덤에서 나오는 다양한 유물들은 기존의 알고 있던 신라, 그러니까 고구려와 백제에 가로막혀 중국과의 교류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리하여 불교 공인도 가장 늦었던 학교에서 배우는 신라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신라는 북방의 민족과 활발한 교류를 했고 어쩌면 무덤의 주인이 바로 기마민족의 후예가 아닌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실제로 자작나무껍질을 이용한 공예기술은 오늘날에도 시베리아와 남러시아에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학자는 신라의 다른 무덤에서도 백화수피가 발견되므로 이 자작나무껍질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생각되는데 이를 충당하기 위해 전적으로 수입에만 의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발표했습니다. 아마 재질이 유사한 나무를 태백산자락에서 얻어내어 사용했다고 보는데요. 백화수피라는 것이 북방에서 들어오거나 아니면 그 후 신라에서 자체적으로 충당했다고 하여도 결국 그러한 세공기술에 있어서는 북방기마민족의 것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신라와 북방 유목민족 간에 인적교류를 생각안할 수가 없습니다. 
천마총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해 무덤에서 발견된 말다래의 주인공에서 무덤의 이름을 지었지만 막상 말다래의 주인공 또한 천마인지 기린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은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신라와 북방유목민족간의 교류에 대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박혁거세의 탄강설화에서 백마가 등장하듯이 거란족의 시조신화에도 백마가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신라와 거란 간에 동질성을 논하는 것은 무리지만 아마 신라와 북방유목민족간의 교류로 인해 이러한 설화도 공유하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천마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폐쇄적인 신라가 아닌 북방기마민족과 적극적으로 교류했던 신라인들의 모습을 그리게 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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