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나라 신라 황금은 어디서 왔을까
2022. 7. 11. 21:21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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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라를 수식하는 말로 황금의 나라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중국 측의 기록과 일본의 기록은 물론 845년에 아랍인 이븐 쿠르다드비가 편찬한 『왕국과 도로총람』이란 책에도 신라를 언급하여 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신라의 도읍인 경주 근처에는 금을 채굴할만한 광산이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경북내륙 지역에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양이 과연 신라를 황금의 나라로 불리게 할만큼 엄청난 생산량을 보였을까하는 궁금증이 듭니다. 지금으로부터 120여 년 전인 구한말 서구열강이 이권침탈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은 우리에게서 조선 최대의 금광지역의 채굴권을 가져갔습니다. 그것은 광혜원 설립자인 알렌의 의한 것으로 그는 왕실과의 친분으로 인해 평북 운산의 채굴권을 넘긴 것입니다. 이 때 노다지란 말이 생겼다는데 하지만 먼 과거에는 평북 운산이 신라의 땅이 아니었으므로 신라를 황금의 나라를 부르게 할만한 그 양은 어디서 충당했을까 더욱 의구심이 생깁니다.
황금의 나라 신라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한 유물이 바로 신라의 금관입니다. 그리하여 옛 신라 땅을 비롯한 낙동강 인근에서 발견되는 금관이 50여 점에 이릅니다. 여기서 특이할만한 점은 신라나 가야에서는 수목관 형식의 왕관이 많이 출토되지만 중국 문화권나라들에서는 이러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수목관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띠에 나뭇가지를 꽂은 듯한 모양의 왕관인데 그리스에서 시작돼 오늘날 유럽 각국의 왕국으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를 중국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달리 말하면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신라나 가야는 중국의 문화를 공유하기보다는 직접적이 되었든 간접적으로가 되었든 로마제국과 교류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손잡이가 달린 잔과 뿔 모양의 잔도 동시대 서양과 신라에서만 발견된다는 점이나 로마시대의 유리 제품이 신라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라의 금관은 수목관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그 독특한 모양으로 인해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금관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신분이 높은 사람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금관이 나왔다고 하면 아무래도 왕이거나 왕족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배층이 금관을 쓰고 일상생활을 했다거나 무덤 안에 부장품으로 사용해서 신라를 황금의 나라라고 불렀는지 알 수 업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이라면 쉽게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신라를 방문한 여행자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금이 너무 흔하다. 심지의 개의 쇠사슬도 금으로 만든다.” 『천애횡단갈망자의 산책』-알 이드리시-
이 기록을 보면 다소 과장이 있더라도 분명 신라는 일상의 황금과 관련되어 있는 나라임은 분명합니다. 게다가 우리가 접하는 신라의 금제 유물은 금관뿐만 아니라 금귀고리, 금동신발, 금팔찌, 금반지, 금구슬, 귀이개까지 발견된다고 하니 아마 신라 귀족들의 방안은 금으로 반짝인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듭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건 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세공기술입니다. 어쩌면 주변국들이 신라를 황금의 나라로 부르는 이유는 황금이 많이 나서가 아니라 금을 다루는 기술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아마 당대 최고였기 때문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기록이 가능한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던 중 2022년 1월, 석조유물이 나왔는데 연구결과 이것은 건물 계단의 난간을 지탱하는 받침돌로 여기에다 화려한 금동판으로 표면을 장식했다는 것입니다. 통일신라는 물론 전 시대를 통틀어 금동판으로 계단 난간의 받침돌을 장식한 예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또 받침돌 구멍의 충전재를 성분 분석해보니 납 성분이 88%라는 사실도 확인했는데 못이 잘 박히게 하려고 구멍에 납을 넣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신라인들의 황금사랑은 대단했다고 볼 수 있고 이것이 다른 나라사람들에게 신라를 황금의 나라로 보이게 한 건 아닌가 싶습니다.
신라의 건국설화를 보면 김알지가 금으로 만든 궤짝에서 탄생했듯이 신라인의 황금사랑은 건국초기에서부터 살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이란 것이 결국 다른 나라에서도 귀하게 여겼듯이 탄생설화에서 금이 등장한다고 해서 황금의 나라로 보는 것은 비약적인 해석일 수 있습니다. 다만 신라의 도읍을 금성이라고 한 것에서 신라인들이 금을 좋아해서 그렇게 정한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금이 처음부터 신라인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황남대총의 남분은 북분과 연결되어 있는데 남북 120m, 동서 80m로 초대형분이라고 합니다. 이 남분보다 작은 무덤에서도 금관이 발견되었으니 이 무덤에서도 발견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무덤주인공의 머리에서 금동관의 흔적만 확인되었을 뿐, 금관은 발견되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무덤의 규모나 나온 장신구를 확인해 보았을 때 왕에 필적하는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시점에 신라의 무덤에도 금관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황남대총 남분 이후로 그 시기를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라에서 황금유물이 등장한 것은 서기 4세기 말경으로 보고 있으며 황남대총의 북분의 시기인 5세기 중엽부터 금관을 비롯한 다양한 금제품이 나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즈음 우리가 알고 있는 황금의 나라 신라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황금의 나라라라고 신라를 언급하면서도 놓치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고구려로 고구려도 신라에 못지않았다고 합니다. 역사서 『삼국지』에는 부여의 귀족이 금과 은으로 모자와 옷을 장식했고 고구려인은 무덤에 부장품을 많이 넣어 금, 은 같은 재물이 없어진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금과 은, 구슬로 치장하고 실제로 그러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당나라가 645년 벌어진 요동전투에서 말들과 함께 명광개 1만벌(혹은 5000벌)을 노획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명광개라는 것은 금갑 혹은 금휴개라고 하는 것으로 고구려병사들은 황옻칠 혹은 금도금을 한 반짝거리는 갑옷을 입고 전투에 입한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평안북도 운산이 금의 산지이고 송화강 중류와 상류 주변에 사금광산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역 기록에서 고구려가 주변국들에게 금과 은을 보낸 기록이 확인되고 있으며 나오는 유물로 보았을 때 뛰어난 금세공술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자연스레 이들의 기술이 신라로 흘러들어가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고구려에서 발견된 금관을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고구려에서 발견된 금관은 단 1점으로 평양 청암리 토성에서 발견된 것인데 이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라의 것과는 다릅니다. 적어도 금관의 형태로는 고구려와 신라의 연결고리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국내 한 연구진은 신라의 금이 경주와 경주인근에서 채취된 사금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직접 사금은 채취한 연구팀은 부 지역에선 혼자서도 하루 0.4~0.6g의 채취도 가능했으며. 사금의 성분분석 결과 금 함유량은 75%(18K)이라고 한 것인데요. 그러면서 신라 시기에는 지금보다 사금의 채취 환경이 100배는 좋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외부에서 수입하지 않고도 충분히 수요를 충당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황금의 나라로 불린 신라, 그 황금은 어디서 왔을까요. 로마의 제품이 들어오면서 금도 같이 들어온 것일까요. 아니면 고구려에서 들어왔던 것일까요. 혹은 근래 연구팀이 밝힌 것처럼 사금으로 채취한 것일까요. 그런데 삼국유사에서 서동요이야기가 전해지잖아요. 그 설화를 통해 보면 백제를 통해 금이 들어왔던 것일까요. 백제금동대향로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황금의 나라 신라를 있게 한 것은 백제와 관련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서동의 이야기는 흙처럼 금을 쌓아두었다는 이야기는 광산이 아닌 사금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사금은 출토된다고 하는데요. 어쩌면 금수강산이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혼자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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