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정권 유지 장치 근친혼

2022. 7. 12. 21:24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신라

728x90

천전리 각석에는 신라시대의 명문이 있으니 “을사년에 사탁부의 갈문왕이 놀러와 처음으로 골짜기를 보았다. 오래된 골짜기인데 이름없는 골짜기이므로 좋은 돌을 얻어 글을 짓고 서석곡이라 이름을 짓고 글자를 새기게 하였다.”

조선 말기 노량나루에는 큰돌이라는 노처녀가 문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새신부가 첫날밤에 웃저고리를 벗기를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를 미심쩍게 여긴 신랑이 곤히 잠든 큰돌이의 저고를 벗겼는데 팔뚝에 자기가 모르는 사내의 이름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른바 연비라는 풍속입니다. 이 풍속은 우리 조상들이 행한 것으로 고려에서 조선말기까지 이어진 것으로 우정분을 나눈 연인끼리 서로의 이름을 팔뚝이나 허벅지에 새기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친정에 알려지자 큰돌이를 친정에서 업어와 물을 적신 종이를 얼굴에 붙인 후 질식사시키고 강물에 버려졌습니다. 사실 이러한 데에는 연비라는 풍속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팔에 새겨진 사나이의 실체 때문입니다. 바로 같은 마을에 사는 동성동본의 사람, 즉 근친이었습니다. 문중입장에서는 큰돌이가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생각하여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조선 말기 사람들이 근친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했기에 근친혼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고 동성동본이 아니더라도 같은 성씨라면 결혼을 금지했습니다. 세종 때에는 종친인 이완이 본관이 다른 이씨와 결혼한 것이 문제가 되어 이관의 어머니 성인 한씨로 바꾸게 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럼 좀 더 윗시대로 올라가면 근친혼은 어땠을까요. 고대국가로 보았을 때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근친혼이 없었습니다. 고구려에서 형사취수제가 있었기는 하지만 이는 형이 죽으면 그의 아내를 동생이 취하는 풍습으로 같은 혈족끼리 결혼하는 근친혼과는 의미가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라에서는 이러한 근친혼이 성행했습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울주 천전리각석에는 선사시대의 풍경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암각화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바위그림 아래에는 원명과 추명으로 이루어진 고대 신라시대의 명문도 새겨져 있습니다. 먼저 새겨진 것은 원명, 그리고 나중에 새겨진 것은 추명이라고 합니다. 300여 글자에 이르는 이 명문에는 각각 525년과 539년에 새겨진 것이었습니다. 
“을사년에 사탁부의 갈문왕이 놀러와 처음으로 골짜기를 보았다. 오래된 골짜기인데 이름없는 골짜기이므로 좋은 돌을 얻어 글을 짓고 서석곡이라 이름을 짓고 글자를 새기게 하였다.”
그런데 갈문왕은 여기에 혼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사추어랑과 놀러온 것입니다. 이 인물에 대해 우매(友妹)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럼 갈문왕은 누굴까. 왕에 버금가는 지위를 갖고 있는 인물을 지칭하는 신라시대의 용어라고 합니다. 즉, 왕족입니다. 그리고 가까운 혈족 내에서 갈문왕이 선택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천정리 바위에 새겨진 갈문왕은 사부지로 법흥왕의 동생이자 신라의 왕자였습니다. 그리고 명문에는 어사추어랑 뒤에 왕(王)이라는 글자가 붙었습니다. 사실상 어사추어랑도 왕족 적어도 신라 최상위층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어사추어랑에 대해 우매라고도 했는데 가까운 친족이면서 서로 미래를 약속한 사이로 보여집니다. 즉 갈문왕과 어사추어랑은 친족관계이면서 연인관계인 것입니다. 


그럼 이들은 금지된 사랑을 했던 것일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신라 상위계층에서는 흔한 풍습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진흥왕의 아들인 동륜태자는 진흥왕의 여동생 즉 고모와 결혼했으며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는 김춘추와 결혼했는데 이들 사이에 딸이 태어나 김유신은 이 딸과 결혼했습니다. 김유신은 자신의 조카와 결혼을 하고 자신의 여동생은 장모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열왕의 손자 신문왕은 무열왕의 외손녀와 결혼하였습니다. 사실 신라 왕족 사이에서 근친혼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재밌는 것은 고려시대의 유학자인 김부식은 신라의 근친혼을 옹호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서로 풍속이 다르다하여 중국의 기준에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돌려 말하면 고려시대 왕실에서도 근친혼이 성행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고려를 세운 왕건은 경순왕의 조카를 다섯 번째 왕후로 맞이해놓고 자신의 두 딸을 경순왕에게 시집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려 2대 임금인 혜종은 이모와 결혼했으며 특히 고려의 권력자로 알려진 이자겸은 예종에게 시집보내고 예종의 아들인 인종에게 이자겸을 자신의 두 딸을 또 시집보내게 됩니다. 인종은 자신의 이모와 결혼하였고 이자겸은 인종에게 있어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경원 이씨 가문은 80여 년에 걸쳐 권력을 독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경원 이씨가문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근친혼을 유지했다면 고려왕실도 신라의 김씨 일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신라는 건국 이래 박씨, 석씨, 김씨가 차례대로 왕위를 번갈아 올랐는데요. 아마 이 과정에서 치열한 다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면서 이 근친혼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것이며 정치적인 목적이 컸을 것입니다. 즉, 신라시대의 왕족들은 특정 혈통만이 왕위 계승권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한 것입니다. 위에서 김유신도 김춘추와 결혼한 여동생 문희의 딸을 부인으로 맞은 것은 바로 가야 왕족이던 자신의 출생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을 것이고 결국 이러한 근친혼을 통해 왕족으로서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권력을 견고하기 했을 것입니다. 
그럼 천전리 각석의 명문 추명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요. 539년에 새겨진 이 글은 갈문왕의 부인인 지소부인이 새긴 것입니다. 이 지소부인은 원명에 나온 어사추어랑이 아닌 법흥왕의 딸이었습니다. 즉, 갈문왕은 자신의 조카와 결혼하였는데 법흥왕은 당시 왕 다음 가는 서열에 있던 갈문왕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 아들이 없던 법흥왕의 후계자 고민을 해결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소부인이 어사추어랑과 갈문왕이 죽은 후 이들이 그리워 이곳에 왔다고 추명에 적혀 있습니다. 일종의 추모의 목적으로 온 것입니다. 한편 같이 온 법흥왕비인 보도부인이 자신의 손자이자 지소부인의 아들인 삼맥종을 왕위계승자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인 행렬로 보고 있으며 삼국사기에서는 이 삼맥종이 7살의 나이에 오르니 그가 바로 진흥왕입니다. 

신라는 근친혼으로 왕의 권위을 유지하였다.


 권력의 독점과 재산 유지 그리고 왕실의 신성을 유지하기 위한 근친혼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졌으니 신라하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신라의 42대 왕 흥덕왕도 39대 소성왕의 딸, 즉 자기 조카와 결혼하였는데 왕비인 장화부인이 먼저 죽어 신하들은 왕비를 들일 것을 간했지만 새도 자기 짝을 잃으면 슬퍼하는데 좋은 배필을 잃고 어찌 다시 무정하게 부인을 얻겠는가 하며 시녀들조차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흥덕왕의 왕비인 장화부인의 오빠는 40대 애장왕으로 13세의 나이로 즉위했습니다. 애장왕이 어려 애장왕의 큰 아버지인 김언승이 섭정을 하다가 김언승이 애장왕을 죽이고 왕이 되는데 바로 헌덕왕입니다. 그 와중에 헌덕왕의 친동생인 김수종이 상대등이 되는데 후에 바로 흥덕왕이 되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김수종이 아마 형의 정변에 도움을 주면서 다음 왕위 계승에 대한 약속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되는데요. 헌덕왕에게 아들이 있었음에도 흥덕왕이 즉위한 것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만약 흥덕왕이 헌덕왕이 왕위에 오르는 데 도움을 주었다면 장화부인은 출생년도가 언제인지 모르나 아마 자신의 오빠인 애장왕인 21살의 나이로 정변으로 희생당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장화부인은 자신의 오빠를 죽이는 데 가담한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흥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 이후 진골귀족 내부의 권력싸움으로 번졌습니다. 
신라왕실의 근친혼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시키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그리하여 갈문왕도 어사추어랑이 아닌 지소부인을 맞이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라 하대에는 왕위 싸움의 불씨가 된 건 아닌가 싶은데요. 혹시 헌덕왕이 정변에 참여했다면 그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장화부인이 죽은 후 그 어떤 여자도 들이지 않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