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국 정벌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2023. 10. 5. 17:46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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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란 노래에도 나오는 위인은 바로 신라 장군 이사부입니다. 그는 독도를 정벌한 지증왕 시기의 인물로 유명합니다.
지난 2010년이었습니다. 강원 삼척시가 우산국(울릉도)을 정벌한 신라 장군 이사부(異斯夫)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출항기념비를 설립키로 하자 강릉의 이사부선양사업회가 '역사 왜곡'이라며 반발하였습니다. 삼척시는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 정벌을 위해 출항했던 곳으로 알려진 오분항에 울릉도는 물론 '우리 땅 독도'를 우리 역사에 처음으로 편입시킨 이사부 장군의 해양개척정신을 기리는 취지문이 새겨진 '이사부 출항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는데요. 신라 실직주(삼척)와 하슬라주(강릉)의 군주였던 이사부 장군은 당시 생소한 동물인 사자를 나무로 만들어 함선에 싣고 가 "항복하지 않으면 맹수를 풀어 모두 죽이겠다"라고 위협해 우산국을 신라에 복속시킨 것으로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강릉에서 이사부 장군의 선양사업을 벌이고 있는 하슬라군주이사부선양사업회는 21일 "삼척시가 추진하는 이사부 출항 기념비 건립은 역사 왜곡의 소지가 있어 연기돼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발했습니다. 사업회는 "국가기념관이나 문화재청 등 국가기관 기록 문서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일본서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는 실직군주가 아닌 '하슬라 군주 이사부가 우산국을 병합했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업회는 "이사부 장군이 강릉 월대산에 주둔하면서 남대천변 선곡소에서 함선을 제작, 안목항에서 우산국을 병합하기 위해 출항했다"고 주장하며 "삼척시가 추진하는 이사부 출항기념비는 역사 왜곡의 상징 기념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기사가 나간 8달 뒤 2010년 12월에는 문헌상으로만 전해지던 ‘삼척읍성(邑城)’의 토성벽과 함께 신라장군 이사부(異斯夫)가 활약하던 시기의 실직주(悉直州) 치소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들이 삼척 죽서루 일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발굴 조사 결과 죽서루 주변에서는 고려시대 중기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판축 토성벽이 확인되었는데요. 평지에 쌓은 고려 토성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시기가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또 5세기대 고배편을 비롯 통일신라시대까지 다량의 토기편이 출토돼 505년, 신라 지증왕 6년에 이사부가 군주(軍主)로 등장하는 실직주(삼척의 옛이름)의 치소, 즉 중심지를 가늠케 한 것입니다.
그럼 이사부는 어디서 출항했을까요. 일단 강릉에서 출발했다는 주장을 살펴보면 이사부는 하슬라의 군주로 임명되어 선박의 건조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이 강릉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2012년11월 강릉 현대호텔 신축부지 발굴조사에서 죽도봉에 신라 토성이 발굴되었는데, 그 축성연대는 510년경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사부가 하슬라로 올라 온 것은 499년경에서 510년경 사이에 하슬라를 점령하고 북방으로 더 올라가 지금의 양양 근처까지 전선을 밀고 올라갔을 것으로 보는데요. 하슬라가 안정이 된 시기인 512년 3월 이사부를 하슬라의 군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에 우산국 정벌계획을 위한 작업을 하슬라에서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항지가 강릉인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선곡소에서 출항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배 만드는 골짜기’라는 의미를 가졌으며 세 번째로는 명주에는 영평수·해령수 등 5곳의 수(戍)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중 선곡소에서 4리 떨어져 있는 해령수를 주목하며 이곳이 수군기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박의 조영을 위해서는 주로 소나무를 이용하여 건조하는데 이러한 목재는 월정산(월대산) 일대에 많이 있었고 또 대관령과 칠성산 일대의 우람한 숲은 군선건조의 목재를 대어 줄 충분한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부는 강릉지방에서 대성황사의 신을 모셔져 있으며 『삼국유사』에 의하면 “우산국은 하슬라로부터 이틀거리에 있다”고 하였다. 만약 실직에서 출항하였다고 하면 삼국유사에 반드시 실직으로부터 얼마의 거리에 있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사부 장군의 출항지로 당시 실직이라 하던 삼척을 꼽고 있습니다. 강릉에서 신라의 토성흔적이 발견되었지만 삼척에 대한 발굴도 강화해야 한다고 했는데요. 고려와 조선시대의 기록을 중심으로 볼 때 국가차원의 동해와 울릉도에 대한 관리가 가장 수월한 곳이 삼척이며, 삼척의 오분항을 최적의 출항지라고 보았습니다. 삼척의 실직주를 군사중심도시로, 강릉을 행정 중심도시로 두었기 때문에 주력부대를 실직에 두었고, 실직에서 출항한 것이 가장 유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삼척의 오분항을 출항지라고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삼척에서는 울릉도가 보인다고 합니다. 정서쪽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인데요. 고대에는 항해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육안으로 관찰하고 출항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인물인 이승휴는 삼척에 거주하면서 몽골군의 침입을 피해 주민들과 함께 요전산성에 들어가 있는 동안, 파도 속에서 출몰하는 산을 보았는데 마을 어른들이 무릉도라고 일러주어 망무릉도행(望武陵島行)이라는 시편을 남겼는데 이 때 무릉도가 바로 울릉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사부장군이 실직군주로 있을 당시 하슬라가 실직을 정벌기지로 삼았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데요. 위치상으로는 하슬라가 실직보다 위에 있습니다. 우산국을 공격하려고 실직에서 많은 전선이 떠나면 금방 이웃지역에 소문이 날 텐데요. 실직을 비운 사이 적이 공격하면 실직을 빼앗길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산국을 점령한 아군은 피항지가 없어 울진이나 영덕까지도 밀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슬라를 공격하고 우산국을 점령하는 것이 순서라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전쟁에 나가려면 함선 이외에도 군사, 각종병기, 화살, 식량, 군복, 훈련 등 많은 군사와 물자가 필요한데 이러한 이유로 하슬라를 점령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당시 보급로가 먼 신라나 실직의 백성들로 함대를 건조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511년경 하슬라를 공격하여 512년 하슬라군주가 되어 군사와 군비를 조달한 다음, 날씨가 좋은 6월에 실직항에서 20여척의 전선에 목우사자를 싣고 출항하였다는 것이며 현재 학계에서는 실직에서 출항했다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후 출항한 이사부는 우산국을 정벌하기로 하는데요. 본래 우산국(于山國)이 복종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우산국은 명주(溟州)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鬱陵島)라고도 하는데 땅은 사방 백 리인데,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찬 이사부(異斯夫)가 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가 되어 말하기를 “우산국 사람은 어리석고도 사나워서 힘으로 다루기는 어려우니 계책으로 복종시켜야 한다.”라고 하고, 바로 나무로 사자를 가득 만들어 전함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이르러 이사부는 거짓으로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짐승을 풀어 밟아 죽이겠다.”
그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즉시 항복하였다고 합니다. 신라 사람이던 이사부가 먼 서역에 가서나 볼 수 있는 사자를 알았던 것은 신라에 뒤늦게 들어온 불교의 경전에 사자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되며 혹여 그 존재에 대해 상상 속의 동물로 인식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부가 사자상을 사용한 것은 사자가 용맹스럽고 위엄있는 신물(神物)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불가에서 사자는 불법의 수호자, 진리의 상징물로 특별히 예우합니다. 부처가 앉는 자리를 사자좌, 부처의 설법을 사자후로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삼국시대 유물 가운데 쌍사자 석등, 쌍사자 촛대처럼 사자를 형상화한 작품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한편 이사부가 독도까지 점령했는지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매체에서는 이사부가 독도를 최초 점령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실상은 확인할 수 없는데요. 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우산도(독도)와 무릉도(울릉도)라는 두 섬이 날씨가 청명하면 서로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우산국이라 하였다'고 적고 있으니 이러한 기록들을 근거로 어느 교수는 독도를 지증왕 13년부터 우리 땅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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