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걸작품 성덕대왕신종

2022. 8. 6. 14:34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남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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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신종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종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되어 현존하는 종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725년에 제작된 상원사 동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보다 모양과 소리가 아름답기로 자자한 것은 771년에 만들어진 성덕대왕 신종으로 보고 있으며 이것은 흔히 에밀레 종이라고 알려진 종입니다. 
  에밀레 종이라고 많이 알려진 종인 성덕대왕신종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성덕대왕의 아들 경덕왕이 선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무게가 23t에 달하며 높이가 3.75m, 지름이 2m 25에 이르는 이 종은 구리 1만근을 들여 주조하기 시작했으나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경덕왕의 아들이자 성덕대왕의 손자인 혜공왕이 완성시킨 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종을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슬픈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종소리를 만들지 못하고 애를 먹일 때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그것은 펄펄 끓는 쇳물에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를 집어넣고 그 물로 종을 만들면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섬뜩한 이야기였습니다. 스님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의논할 적에 한 스님이 자신이 만난 가난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신들은 무척 가난하여 시주할 것이 없으니 아이라도 가져가라고 이야기를 했더랍니다. 누가 듣더라도 장난으로 한 말이고 그만큼 가난해서 시주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안타까운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님과 신하들은 그 집을 찾아가 어머니로부터 아이를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들리는 내용대로 종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종을 쳐보니 아름다운 종소리가 났습니다. 그러면서 ‘에밀레~’하고 울려 퍼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종은 성덕대왕신종이라는 정식 명칭 대신 에밀레 종이라고 더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의 제작기간은 33년입니다. 현대에서도 33년이 걸려 만드는 작품은 거의 드뭅니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의 신라에서 33년 동안 이 종을 제작하였다는 국가의 사활을 건 대형프로젝트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은 청동으로 만들어졌는데 고대문헌에서는 구리와 주석의 비율을 6대1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청동은 거울이나 무기에 쓰는 한정된 자원이었기 때문에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에도 신라에서는 구리 12만근을 들여 이 종을 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성덕대왕신종은 인신공양설에 알 수 있듯이 실패를 거듭하며 만든 작품입니다. 아마 재료를 모으는 과정에서는 마치 IMF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금모으기 운동을 연상케하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당시 신라인의 인구를 알 수 없으나 지금보다 훨씬 적은 인구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을 만들기 위해 신라인은 종의 제작에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그 때마다 기꺼이 집안에 숨어 있던 청동을 내놓았을 것입니다. 성덕대왕신종은 어떡해서든 종을 완성시키겠다는 신라인의 의지가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성덕대왕신종 비천상

 이러한 성덕대왕신종은 뛰어난 외형으로 그 명성이 자자합니다. 종의 모습이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한국의 아름다움의 절정이라고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보상당초문 그리고 연화 등 화려한 장식들이 조각되어 있는 종의 겉면은 이웃 국가 중국과 일본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구름을 타고 연좌 위에 무릎 꿇어 앉아 있는 모습의 비천상은 불교의 33천 우주관에서 유래하는데 부처님이 설법을 할 때 천인들이 향로에 향을 피우고 주악을 울려 부처를 예찬하는 것을 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덕대왕의 신종의 위대함은 겉으로 보이는 표면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종신 안에는 한 점의 기포도 없어서 신라의 기술력이 상당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상의 재료로 썼을 때 종 고리의 직경이 15가 되어야 하지만 원래 종고리의 직경은 8.5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것에 대한 비밀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종고리를 달지 못해 옛날 쓰던 쇠고리 막대기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어떤 물체든지 타격을 했을 때 가장 좋은 소리가 나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은 Sweet Spot이라고 합니다. 성덕대왕 신종 역시 이러한 지점이 존재합니다.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는 종 전체의 무게 중심이면서 조형적 비율의 중심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연구진은 성덕대왕신종의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위치인 스위치 스폿을 당좌가 아니라 당초무늬가 새겨진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성덕대왕신종 하부에 새겨진 8개의 당초무늬 중 유독 당좌 아래에 있는 것이 심하게 훼손된 걸 볼 수 있어 과거에는 당좌가 아닌 당초무늬를 주로 쳐서 아름다운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성덕대왕신종 당좌

성덕대왕 신종은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도 서양의 종들과 특이점을 보입니다. 서양의 종들은 높은 종각에 매달아 추를 이용하여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한국의 종은 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높이에 종을 매달고 종목으로 외벽을 쳐서 소리를 내는데 이 때 움푹 패인 공명동이 음량을 극대화하여 60km 밖까지 소리가 들리게끔 합니다. 여기에 신종의 정상부에 음관이라는 원통모양의 관이 여과장치 역할을 하여 잡음을 잡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으로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성덕대왕신종의 모양과 주조방법 그리고 그 신비한 모습은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되기도 하지만 매우 과학적으로 설계된 종을 현대에도 그 모습을 재현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지난 86년 2차례에 걸쳐 복제품을 만들었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듯이 성덕대왕신종에서 신라인의 뛰어난 과학지식이 스며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의 임무는 바로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겉이 아름답고 과학적으로 설계되었다고 하더라도 소리가 제멋대로라면 결코 좋은 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덕대왕신종은 본연의 임무에 있어서도 충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면 성덕대왕의 신종의 아름다운 소리의 비결은 무엇일까. 성덕대왕신종의 아름다운 종소리의 원리는 흔히 알고 있는 것은 바로 맥놀이 소리입니다. 맥놀이란 유리잔이나 종 같이 속 빈 둥근 몸체를 두드릴 때 나타나는데, 소리가 맥박처럼 약해졌다가 세지기를 거듭하며 우는 소리 현상입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1000hz 안에서 무려 50여 가지에 이르는 소리를 내는데 이는 바로 종 전체에서 50여 가지의 떨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범종의 미세 비대칭이 이러한 맥놀이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문양, 조각 같은 것이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다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고 쇳물을 부어 주조하는 순간에도 우연히 섞이는 공기의 양도 다르기 때문에 비대칭은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여러 떨림을 만들고 음파를 냈을 것이라고 하는데요. 신라의 장인정신과 과학기술, 그리고 우연의 조화가 어우러져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종소리를 가진 성덕대왕신종이 나오게 한 것입니다.
한편 성덕대왕신종이 에밀레종이라고도 하는데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위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가 살생을 금지하는데 인신공양을 통해 종을 만들었다는 건 아무리 설화라고 해도 앞뒤가 맞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넣었을 거란 생각이 들지도 않지만 후대에 불교를 폄훼하는 세력이 의하여 가공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넣어 이 종을 제작하였다면 에밀레종의 성분을 분석했을 때 다행인지 몰라도 사람의 뼈를 구성하는 인(P)성분이 나와야 하는데 인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국립경주박물관에 독일의 학자 큄멜 박사가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이 종에 대해 ‘조선제일’이 아닌 ‘세계제일’로 고쳐 쓰면서 독일이었다면 이 하나만으로 훌륭한 박물관 하나가 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을 타종하여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어야 맞는 이야기일지 모르나 그렇기엔 성덕대왕신종은 너무 오랜 세월을 버텨왔습니다. 세월의 흔적을 안고 타종을 하였다간 지금의 모습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복제품이라도 만들어서 일반인들에게 그 소리를 공개하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현대기술로는 재현하지 못한다고 하니 당시 수준높은 범종제작기술을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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