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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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 정치 속에서 한 줄기 빛 효명 세자
정조가 승하한 조선은 순조가 즉위하면서 세도 정치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유력한 가문이 정치를 주도하였고 은 국정의 혼란과 민생의 파탄을 가져왔습니다.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는 대리청정을 하면서 세도정치를 억제하려 했고 왕정의 영향력을 회복하려고 노력했지만, 21세의 이른 나이로 훙서(薨逝- 왕이나 왕족의 죽음)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인물입니다. 효명 세자는 22세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떴지만, 예술 분야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습니다. 세자는 [경헌시초(敬軒詩抄)], [학석집(鶴石集)], [담여헌시집(談如軒詩集)], [경헌집(敬軒集)] 등의 여러 문집을 남겼습니다. 거기에는 시조(9수)와 ‘목멱산(木覓山)’, ‘한강(漢江)’, ‘춘당대(春塘臺)’ 등의 국문..
2024.01.09 -
노상추의 무관일기
노상추(盧尙樞, 1746년 2월 26일 ~ 1829년)는 조선(朝鮮) 후기의 무관으로 17세 되던 계축년(1762년)부터 순조 29년(1829년)에 84세로 사망하기까지의 68년의 일생을 적은 『노상추일기』가 남아 있습니다. 『노상추일기』는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되어 있으며, 간찰첩과 함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4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노상추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35세 이전까지는 청년기로 고향인 경상도 선산도호부에서 가계를 경영하면서 무과 시험 준비를 하던 시기입니다. 이때는 주로 가족에 대한 내용, 시험에 대한 고뇌, 농사 상황 등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35세부터 60대 후반까지는 장년기로 무과에 합격한 이후 관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양, 삭주, 홍주 등 타향을 전전..
2023.11.01 -
필리핀까지 표류하다 돌아온 문순득
'여송국 표류인을 송환시키라 명하다(命呂宋國漂人 送還本國).' 『조선왕조실록 순조9년(1809년)』 여송국이란 필리핀으로 조선에 표류한 필리핀인들이 돌아가기까지는 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항해 중 풍랑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1801년 제주도에 표류한 5명의 필리핀들을 두고 조선은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대화는 물론 필담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막가외(莫可外)"라 일컬으며 멀리 동남쪽을 가리키곤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사람 누구도 ‘막가외’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표류자들은 눈물만 흘렸습니다. 갑갑해진 조선은 이들을 심양으로 이송했으나 중국도 '알아낼 수 없다'며 돌려보냈습니다. 1807년에는 조선을 찾은 유구(琉球ㆍ오키나와) 사신들이 ..
2023.10.31 -
방랑시인 김삿갓
“…책은 한권을 읽고도 시를 말하고/ 돈은 천금을 쓰면서 오히려 붖고해해/붉은 문 앞에 가서 온종일 머리를 수그리고 섰던 자가/ 문득 고향사람을 만나더니 그 의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구나.” 조선왕조 후기 양반관료들의 허풍선이 탐욕생활을 꼬집고 권력에 아부해 매관매직을 일삼던 그들의 부패상을 풍자한 시로서 유랑시인 김삿갓의 한문시를 번역한 것입니다. 김삿갓의 방랑인생은 조선왕조의 봉건적 신분질서가 무너져 가며 동요하던 19세기 전반기의 시대상황과 얽혀 있습니다. 중앙에서는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지배질서가 문란해지고 전국 각지에서는 양반관료들의 가렴주구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조직적으로 항거하고 나서던 시기였습니다. 김병연이 다섯 살 때인 순조 11년(1811년) 12월, 조정에서 서북인을 등용하지 않는 ..
2023.10.23 -
보부상은 누구일까
조선시대에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상인을 보부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대부터 있었으나 조선 시대에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원래 명칭은 ‘부보상’이었다고 합니다. 조선후기가 되면서 전국 1000개 넘는 시장이 생겼습니다. 보통 5일마다 장이 열렸는데 장을 옮겨다니며 장사를 하는 이들이 보부상이었습니다. 보부상들은 대개 파산한 농민이나 몰락한 양반 혹은 노비출신이었습니다. 보부상들은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산적을 만나 장사 밑천을 빼앗기기도 하고,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부상들은 3~5명 단위로 접장(보부상의 우두머리)을 두고 그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의무 사항을 만들어 철저히 지켰는데 보부상은 길을 가다 어려운..
2023.07.03 -
이 땅에서 나온 효자수출상품 인삼
‘인삼은 백제의 것을 중하게 여기고 다음으로는 고구려(요동)의 것을 쓰는데 고구려의 것은 백제의 인삼보사 못하다.’ 『명의별록』 ‘그 뿌리의 절반을 날 것으로 먹은뒤 맥박이 훨씬 강해지고 식욕이 증진되고 원기가 왕성해졌습니다.’ -프랑스인 선교사, 피에르 자르투 (1714년)- 과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품 중에 인삼이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무역항인 벽란도가 있었고 이곳에서 여러 나라 상인들이 몰려와 물건을 거래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고려의 인삼입니다. ‘고려인삼의 좋은 점에 관해서는 중국인도 완전히 신뢰하고 있다. … 나이가 들어 활력을 잃고, 오랜 질병으로 기운이 없고, 허약한 사람에게는 인삼이 매우 효력이 있었고, 질이 가장 좋은 것이라면 그 약은 거의 금 무게만큼과 같은 값어치가 있다.’..
2023.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