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무예서 무예도보통지

2023. 6. 4. 09:54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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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정조 14), 음력 4월 29일, 정조의 지시에 따라 책이 발간됩니다. 그 책의 이름은 『무예도보통지』입니다. 흩어져 있는 무예 훈련 교본을 통합하라는 정조의 지시에 따라 문인인 이덕무와 박제가, 무인 백동수가 당시 무술 책들의 내용을 1년여에 걸쳐 집대성한 서적으로 이 책에는 창술과 검술, 표창술, 권법 등 총 24가지의 무예가 수록돼있습니다. 일대일 근접 싸움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각 무술마다 해당 병기와 개별 동작, 보법 등을 그림과 해설을 붙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라는 생각이 있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번의 큰 전쟁을 겪으며 큰 위기를 넘겼기에 무예 쪽으로 조선을 상상하지는 않는데요. 문(文)의 나라인 만큼 남긴 기록물도 많고 그 중에는 무예와 관련된 책도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무예서는 '무예제보'로 2021년에는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무예제보』는 선조 31년(1598) 문인 관료 한교(1556~1627)가 왕명을 받고 편찬한 무예 기술 지침서입니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1592), 정유재란(1597) 등으로 군사훈련이 필요해 지침서 간행이 절실했습니다. 한교는 명나라 군대의 전술을 참조해 무기(곤봉·방패·낭선창·장창·삼지창·장검) 제조법과 조련술을 저술했습니다. 군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한글 해설을 써놓았습니다. 초간본은 프랑스 동양어 대학과 수원 화성박물관에만 있습니다. 이번에 지정된 사료는 후자로, 희소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무예제보는 우리나 무예서의 원류가 되는 책이며 이후 무예제보를 토대로 무예제보번역속집(1610), 정조의 명으로 편찬한 무예도보통지(1790)가 간행되었습니다.
무예도보통지의 기본 바탕은 영조 35년(1759) 사도세자에 의해 간행된 '무예신보(武藝新譜)'였습니다. 무예신보는 원래 명칭이 '무기신식(武技新式)'이었으며, 무예도보통지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무예신보'로 개명한 것입니다. 이 무예신보는 현재 실존하지 않으나 무예도보통지의 서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사도세자는 모든 일을 대신 처리하면서 죽장창 등 12가지의 기술을 추가해 '도보'를 만들고, 기존 무예제보의 6가지와 함께 훈련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현륭원지(顯隆園志)'에도 십팔기(十八技)라는 이름과 함께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한 사도세자의 문집 '능허관만고'에 '예보육기연성십팔반설(藝譜六技演成十八般說)'라고 하여 18가지 무예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정조는 이러한 사도세자의 무기신식(무예신보)의 의식과 전형을 이어받았고, 여기에 마상무예 6가지를 추가해 24가지의 무예를 정리한 무예도보통지로 완성한 것입니다.

그러면 무예도보통지출판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사도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무예도보통지는 정조대왕의 명으로 쓰인 교본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국방력 강화를 위해 편찬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민간에서 무술교본이 전해져오는 경우는 많지만, 국왕이 직접 나서서 교본을 만든 것은 극히 드문 일인데요. 사도세자가 무예에 관심을 보였다고 해도 그 배경에 무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사도세자는 당시 영조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도세자는 무반과도 대립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를 지지해 줄 신흥무인세력이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그것 때문에 무예서 저술에 열을 올렸을 수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는 한글 해석본인 언해본 1권과 한문본 4권으로 총 5권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원래는 한문본 5권이었으나, 1권의 언해본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무예도보통지는 4권의 한문본에 1권의 언해본(한글 해석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권에는 주로 찌르는 무기인 장창(長槍), 죽장창(竹長槍), 기창(旗槍), 당파, 기창(騎槍), 낭선(狼先)이 있고, 2권에는 베는 무기인 쌍수도(雙手刀), 예도(銳刀), 왜검(倭劍), 교전(交戰)이 있으며, 3권에도 베는 무기 종류인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쌍검(雙劍), 마상쌍검(馬上雙劍), 월도(月刀), 마상월도(馬上月刀), 협도(挾刀), 등패(藤牌)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리고 4권에는 치는 무기인 권법(拳法), 곤방(棍棒), 편곤(鞭棍), 마상편곤(馬上鞭棍), 격구(擊毬), 마상재(馬上才)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책은 도식을 통해 무기의 제도나 형태를 그림으로 표현했고, 설을 통해 해당 무기나 무예에 대해 역사적 사례 등을 설명하면서 병기의 제도와 기원, 제작법, 재료, 관련 인물들까지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기본인 '무예제보'와 비교해 '무예제보'를 인용한 무예에 대해서는 '원(原)'으로 표시하고 그대로 전재했으며, 새롭게 증보된 것에 대해서는 '증(增)'으로, 또한 특별한 논증이나 편찬자의 견해에 대해서는 '안(案)'으로 표기하였습니다.
무예도보통지에 있는 무예들은 대부분 외래에서 전해진 것들입니다. 권법의 경우에는 송태조 장권 32세를 기초로 해서 만든 것이고, 곤방은 소림곤법천종에서 차용했으며, 장창은 양가육합팔모창법인 양가창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도는 '조선세법'이라고 하여 중국의 '무비지'에 있던 검술을 다시 가져온 것이고, 쌍수도(장도)는 왜구의 공격에 영향을 받아 중국의 장도(묘도)술을 가져온 것이며, 왜검은 숙종 때 김체건이 일본에 가서 배워온 일본의 유파검술을 기초로 창안한 것입니다. 이외에도 제독검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 파견돼 배어온 명나라 제독 이여송의 검술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국검에 대해서는 신라 황창랑을 이야기 하며 순수 우리 검술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옛 무술로 고구려와 고려시대에 꽤 인기있는 스포츠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박이 이 책에 등장하는데요. 수박은 한자어로 ‘손 수(手)’와 ‘때릴 박(搏)’자가 합성된 단어로 손만 갖고 때린다는 뜻입니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맨손 무예라는 의미입니다. 이 책자는 전통무예인 수박이 고구려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군사무술로 전승돼 왔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수박은 수박기, 수박희 등의 명칭으로 불려 오다 지금은 수박도(手搏道)로 자리 잡았습니다. 수박은 1950년대 태권도가 본격 등장하기 이전 많이 선호했던 무도였습니다. 무도인인 황기(黃琦·1914∼2002) 무덕관 초대관장은 1956년 체육학자인 서울대 나현성(1916~1990) 교수와 함께 ‘무예도보통지’를 바탕으로 수박을 재현했고 1960년 대한수박도회를 만들었습니다. 
무예도보통지는 2017년 10월 27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를 통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는 ‘무예도보통지’가 현대 북한 태권도의 원형이 됐고, 김홍도가 삽화를 그렸다고 강조한 점을 받아 들였습니다. 사실 무예도보통지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요인은 방대한 양과 더불어 그림도 한 몫했는데 북한은 이 그림들을 김홍도가 그렸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연구결과에 의하면 [무예도보통지]의 원화를 그린 화원은 허감(許감:1736-?), 한종일(韓宗一:1740경-?), 김종회(金宗繪:1751-1792), 박유성(朴維城)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책의 제작에 참여한 백동수는 경종 때 연잉군(훗날 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신임사화에 연루돼 죽은 평안도 병마절도사 백시구의 증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조부인 백상화의 서자로 1771년 과거시험 무과에 급제했지만 관직 진출에 제한을 받았습니다. 이후. 장용영 장교로 정조의 신임을 받은 그는 1790년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서문에서는 정조가 이 책을 간행하게 된 동기를 간략히 밝히고 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창이나 검의 병기(兵技)는 없이 궁술(弓術)만 있었기 때문에 군사들의 무예 훈련을 위한 교범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무예도보통지는 군대에서 군사들이 재현했을 때 무예를 익히는 교과서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내용이 풍부하고 완벽합니다.’ 양청룽, 대만무예전문가
무예도보통지는 문무(文武)와 예술이 결합된 정조 르네상스 시기의 걸작품이자 왕권을 든든히 하고자 했던 정조의 집념이 깊게 스며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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