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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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야기꾼 전기수
조선시대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직업이 있었는데요.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 주는 사람으로 전기수가 있었습니다. 조선후기에 책을 읽어주는 사람들로 전기수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당시 유행하던 소설을 읽어 주었습니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중국의 삼국지와 수호지 등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대상으로 장터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전기수가 출연했던 배경은 무엇일까? 한국 문학의 르네상스라고 말할 수 있는 18세기~19세기는 소설의 독자층이 확대되었고, 그에 발맞춰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또한 판소리가 등장함으로 인해 우리‘문학사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었는데요. 하지만 소설이 유행한다 해도 원하는 비싼 책을..
2023.06.02 -
전통수학과 조선시대 수학자들
학생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수학의 역사는 꽤 오래 되었습니다. 수학의 역사는 고대 인도·중국·이집트·바빌로니아 등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으나, 학문으로서의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은 그리스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리아시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Euclid)는 그 이전의 저서와 연구를 집대성하여 『기하학원본 Stoicheia』을 저술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유클리드는 역사상 처음으로 수학을 논리적으로 정리, 체계화하였습니다. 기호를 사용하는 대수는 인도에서 시작되어 아라비아에서 발달하여 알게브라(Algebra, 代數)라는 이름과 함께 유럽에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아라비아 숫자’로 불리는 수의 체계가 발명된 것은 7세기경 인도였습니다. 중국에서 수학은 상..
2023.06.01 -
조선인이 된 최초 서양인 박연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고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현대에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우리도 다민족 국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 이전부터 활발히 외국인들의 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푸른 눈의 이방인은 낯설기만 합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푸른 눈의 백인 귀화인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벨테브레이, 한국이름 바로 박연입니다. 1627년,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와 두 명의 동료는 식수를 구하기 위해 제주도에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으로 우베르케르크 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주도로 표류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어땠을까. 그들은 만 여 척의 배를 이끌고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계 최대..
2023.05.30 -
조선시대에도 소송은 빈번했다
대한민국은 소송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9년도에 우리나라 법원에서 처리한 민사사건이 400만 건이 넘었다고 하니 인구수기준으로 보면 유럽보다도 훨씬 많다고 합니다. 그럼 옛날에는 어땠을까. 과거에는 형법만 있고 민법이 없다는 것이 통념입니다. 그리하여 소송이 별로 없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물론 조선정부에서는 소송이 많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은 유교사회였고 공자 또한 소송이 없는 ‘무송(無訟)’의 경지, 예(禮)로 다스려져서 형벌과 다툼이 필요 없는 사회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로 간주하였으니 조선의 유학자들도 이를 따르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곧 그러한 사회풍토를 완성시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령 조선시대 각 고을을 다스리는 지방관..
2023.05.15 -
조선시대 초등교육기관 서당
현대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무엇이 떠오를까요. 바로 서당입니다. 서당은 조선 시대에 초등 교육을 맡아 했던 사립학교입니다. 오늘날의 초등학교와 비슷하지만 규모는 훨씬 작았고, 주로 유학에 바탕을 둔 한문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유명한 작품이 바로 김홍도가 그린 「서당도」입니다. 이 그림을 볼 때 서당에서 스승의 가르침은 지식뿐 아니라 생활 태도나 정신 자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이루어졌을 것이며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종아리를 맞는 일도 낯선 풍경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초등교육기관은 이미 고구려 때 경당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었습니다. 『신당서』에 보면 “고구려인은 학문을 좋아했다. 궁리의 시가에 이르기까지 또한 서로 학문을 ..
2023.05.08 -
다산 정약용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 쓰는 데 있고, 아껴 쓰는 근본은 검소하게 말하는 데 있다. 검소한 연후에나 능히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한 연후에나 능히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한 자가 되는 그 자체가 백성을 다스리는 수장의 의무다.' 『목민심서』 이 말은 정약용이 그의 책 『목민심서』를 통해 남긴 말입니다. 검소가 곧 청렴이며 이것이 바로 국가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이 편지가 사통오달한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 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쓴 편지의 일부로 말과 글을 함에 있어 신중해야 함을..
2023.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