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에는 천불천탑이 있었다.
2022. 8. 30. 20:33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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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에는 천불천탑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이라 무척 많은 숫자입니다. 현재 여기에 들린 다면 남과 북을 바라보며 등을 맞댄 쌍배불감, 실패처럼 생긴 실패탑, 원구형 석탑, 호떡을 쌓아올린 원형석탑 등 20여개의 탑과 수많은 석불들이 있습니다. 천불천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운주사의 창건연대는 고려초로 보고 있으며 12세기와 15세기에 걸쳐 중건되었습니다. 특히 이 절은 가람의 배치가 파격적입니다. 법당은 계곡입구에 있는데 탑과 불상은 뒤쪽에 떨어져 있습니다. 본래대로 한다면 금당 앞에 탑이 한 개 혹은 2개가 있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가람의 배치와 천불천탑의 전설을 통해 보더라도 이 절은 파격적이라 생각되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탑들은 가파른 곳에 세워져 있다니 현대 사람들은 이를 두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탑과 불상이 남아 있는 운주사는 총 7개의 바위돌이 있습니다. 마치 원판의 돌들은 바둑알이 놓여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바위들에 대해 사람들은 하늘의 북두칠성처럼 여겼습니다. 이 바위돌 역시 운주사만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바위돌인데 12톤에서 20톤에 이르는 것으로 인위적으로 떼어와 갔다 놓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위에 대해 연구를 하던 중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내었습니다. 이 7개의 바위들이 크기에 따라 별의 밝기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운주사 탑을 연결하면 밤하늘의 1등성 별자리를 연결한 것과 비슷하다는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운주사의 탑과 불상들은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닌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치되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현대인의 생각을 뛰어넘는 선조들의 치밀한 건축철학과 종교적 신념으로 빚어낸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북두칠성은 어떤 의미일까요. 북두칠성은 오래 전부터 숭배대상이었으니 우리나라의 고인돌에서도 북두칠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간에 널리 퍼져 있던 북두칠성에 대한 믿음은 불교가 받아들였으며 불교와 관련된 탱화에서도 별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별을 직접 그린 것이 아닌 별에 해당하는 자리에 부처를 대비시켜 놓은 것인데 이러한 그림에서는 북두칠성과 더불어 북극성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7개의 바위, 즉 운주사의 칠성바위가 북두칠성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아마 북극성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하여 북극성에 해당하는 자리를 찾아가다보면 해당하는 곳에 불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누워있는 불상, 와불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와불의 위치확인으로 인해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무정형의 아름다움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자리를 옮겨다 놓은 천문도역할을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와불은 두 개의 불상이 나란히 붙어 누워 있습니다. 부처가 돌아가실 때 옆으로 누워 돌아가셨기 때문에 측와상으로 나타내었는데 운주사의 와불은 엄밀히 따지면 와상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는 입상, 하나는 좌상입니다. 아마 우리 조상들은 바위를 떼어내어 일으켜 세울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생겨 일으켜 세우지 못했을까. 알고 보니 이 바위돌은 일정하게 얇은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일부가 깊이 박혀 있는 부분이 있던 것입니다. 결국 이 두 불상은 누워 있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를 두고 많은 전설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 전설에는 희망을 품고 민중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이 둘부처가 일어나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천불천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운주사에 현재는 100여기만이 남아 있습니다. 나머지는 다 어디 갔을까요. 이것 역시 세월이 흔적입니다. 절이 폐사되면서 불상의 훼손을 피하지는 못한 것인데요. 여러 전란을 겪고 재건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허물어 지거나 분실된 것으로 보입니다.
운주사에 천불 천탑을 실제로 세웠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천불 신앙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연가 7년명금동여래입상도 천불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천이라는 숫자는 무수히 많은 양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천불을 만든다는 것은 인간세상에 있는 수많은 번뇌로부터 구제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알려 국가가 번영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할 것을 발원하기 위해 그 당시 사람들은 운주사에 불탑과 불상을 만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우주의 질서를 탑으로 그리고 불상으로 지상에 그린 것이 바로 운주사의 천불천탑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운주사에 대해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라말 고려초기의 고승 도선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이 스님은 왕건이 고려를 세울 것을 예언한 스님으로 알려져 있어 고려건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스님입니다. 이 스님이 어느 날 산에 올라가 생각하니 우리나라의 산이 북쪽이 많고 남쪽이 적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빠져나갈까 봐 걱정하였습니다. 아마 도선스님이 풍수지리에 있어서도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걱정을 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날 도선스님은 꿈에서 도인을 만나게 됩니다. 도인은 남쪽으로 가면 화순이라는 동네에 일곱 개의 바윗돌이 있다고 알려주고 그 곳에 절을 세우고 천불천탑을 만들라고 조언합니다. 그리하면 도선스님이 가지고 있던 근심거리도 없어진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도선스님은 도인의 조언대로 불상과 탑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꿈속의 도인은 첫 닭이 울기 전에 모든 일을 마쳐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첫 닭이 울게 되면 북두칠성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석공들을 동원하여 천불천탑을 짓던 도선스님은 신통력으로 해를 붙잡아두고 동자승에게 석공들을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도록 지켜보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천불천탑의 완성을 앞둔 순간, 너무 졸려한 동자승이 꼬끼오 하고 닭소리를 내었고 해가 뜬 줄 알았던 석공들은 도구들을 놓고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채 마치지 못한 작업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누워 있는 와불입니다. 그리고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열릴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창건설화를 뒤집어 보면 흥미로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사실 운주사가 창건된 건 고려초기나 그 이후로 보는데 도선스님은 운주사의 창건연대보다 앞선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왜 운주사의 천불천탑 설화에 도선스님이 등장하게 되었을까. 도선스님은 고려건국에 도움을 준 스님인 만큼 고려불교 역사에 있어 그 위치가 매우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절이 이런 도선 스님의 도움으로 절이 창건되고 불상, 불탑이 지어졌다면 아마 절의 위상이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지 않나 싶은데요. 도선스님이야기 외에도 절의 창건과 천불천탑에 관해서는 운주(雲住)스님이 주도했다는 설과 마고 할미가 세웠다는 설이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마 전설처럼 와불이 스스로 일어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희망과 기대를 안고 이 불상에 와서 기도를 하고 불공을 드렸을 것입니다. 세상이 좀 더 밝아지고 살기 좋아진다면 우리들의 마음 한 켠에 누워있는 꿈들이 일어나 환히 비추지 않을까요. 와불이 일어나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는 더 좋은 세상이 오길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완성을 위해 우리들이 서로 노력해야 한다면 기적은 일어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평범함을 되찾는 작은 소망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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