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불화 이야기 첫번째, 수월관음도
2022. 9. 2. 20:19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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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고려청자를 꼽을 수 있습니다. 상감청자로 익히 알고 있는 고려청자는 당시 송나라에 그 아름다움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당대 최고 예술작품입니다. 그에 못지않게 뛰어난 고려예술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려불화입니다. 이러한 고려불화는 전 세계적으로 160여 점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수월관음도는 40여 점이 남아 있어 그 비율이 매우 높은 작품들입니다. 불화는 말 그대로 종교적인 작품으로 한 때는 종교그림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9점, 보물 87점이 지정된 것을 비롯하여 고려불화는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고려불화자체가 현대에서는 국보급 예술작품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당시 주변국들의 미술에 비해 수준높은 회화실력의 예이자 이는 고려미술의 독보적인 영역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단연 백미는 바로 수월관음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이 그려져 있는 그림입니다. 관음보살이 물가 달 아래에 오른 발을 왼쪽 무릎에 올린 그림으로 선재동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53명의 스승을 만나며 수업을 받는 것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8번째로 만난 스승이 관음보살로 선재동자는 관음보살에게 가르침을 구하고 있습니다. 관음보살의 주변으로 신광이 둥글게 감싸고 있으며 사라라는 엷은 비단옷이 몸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관음보살을 찾아가 깨달음을 구하는 선재동자는 간절한 미소가 마치 당시 중생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만 같은데요. 그 앞에 자비로운 미소를 띤 관음보살이 앉아 있는 그림인 것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수월관음도를 가리켜 모나리자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과연 이러한 표현이 맞을까 싶지만 이 작품은 700년 전 작품인데도 보존상태가 양호한데다 섬세한 표현력이 살아 있습니다. 일례로 무려 8겹의 채색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원래는 덧칠을 하면 원래의 색감이 사라지기 마련인데 수월관음도에서는 본연의 색깔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정교하고 섬세한 작품으로 현대 미술기법으로는 재현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수월관음도는 당시 수준 높은 고려불교미술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최고조에 이른 14세기의 고려불화는 원나라로 보내졌고 원나라에서는 섬세하고 화려하기 그지 않는 작품이라고 기술해 놓았습니다.
이러한 수월관음도는 46점이 있으며 그 중 국내에 남아있는 것은 5점뿐이라고 합니다. 불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림으로 성인의 가르침을 전하려던 목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림으로 교리를 전하였던 것입니다. 수월관음도는 화엄경의 한 대목을 표현한 것인데 관음불은 현실을 관장하는 부처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현생에세 잘 살게 해달라고 관음불에게 많이 빌게 되었고 불경을 드렸습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이 비는 대상으로서 수월관음도가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생에서 잘 되기 바라는 마음은 이미 권세를 누리고 있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개인사찰을 지어 그림을 자기 집에 걸어놓기도 합니다.
수월관음도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은 943년에 제작된 돈황지역에 나온 비단에 그려진 그림으로 물가의 암석 위에 반가부좌형태로 않은 관음보살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왼손에는 악기가 들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암과석을 배경으로 반가좌부한 관음과 대나무로 표현되는 그림은 8세기중후반에 성립되어 10세기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11세기에는 수월관음도에 선재등자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이후 서유기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언제 어떻게 수월관음도가 전해졌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려진 고려불화는 수월관음과 아래에 선재동자가 등장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는데요. 언제 고려로 전해진지 알 수 없는 수월관음도가 고려에서 그려질 수 있었던 계기는 유추할 수 있을까요.
『당조명화록』이란 책에 의하면 당나라 화가 주방의 그림은 신라에서 인기가 높았고 그리하여 그의 그림이 신라에 많이 팔려갔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수월관음도가 있었을 것이고 그 그림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조명화록』의 기록은 어디까지나 신라에서 주방의 그림을 많이 사갔다는 것일 뿐, 그게 수월관음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고려의 수월관음도에 등장하는 관음보살이 주방의 미인도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모습과 매우 닮아서 그런 추측이 나온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것도 하나의 설 뿐입니다. 게다가 주방이 활동하던 시기보다 훨씬 후대에 수월관음도가 고려에 전해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의 수월관음도의 원형이 되는 그림을 이거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당시 국제 교류를 통해 한 그림이 고려로 흘러들어갔고 그 그림이 고려 궁중에서 유행을 한 건 아니었을까요.
지금 남아 있는 그림 중에 고려의 화가 서구방이 남긴 작품도 있습니다. 당시 서구방은 내반종사라는 관직에 있었고 1323년에 수월관음도를 그렸다는 내력을 그림 속에다가 기록해 놓았습니다. 내반종사는 낮은 직급의 궁중화가입니다. 직급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알 수 있게끔 이름을 남기게 한 것은 고려왕실은 예술가에 대한 존중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이러한 예술가는 어떠한 심정으로 그렸을까요. 고려는 불교국가입니다. 그리고 궁정화가가 그리는 고려불화는 개인소장용으로 그려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백성들에게 부처님의 뜻을 알리기 위해 그려진 것들입니다. 화가 입장에서는 이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었지만 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그렸을 것입니다. 많은 백성들이 이 그림을 보고 불심을 키워나가고 부처님에 빌 것을 생각하면 화가는 쉬운 마음으로 그리지 못했다라는 것입니다. 아마 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마음은 수행하는 마음이 더해져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렸을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을 제작할 때도 글자 하나 하나를 파고 절을 드렸습니다. 아마 수준높은 미술기법과 고행하는 수행자의 마음으로 그려냈기에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는 그렇게 명작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에서도 고려의 불화의 가치, 당시에는 어땠을까요. 고려는 불교국가였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귀족들의 지원도 상당했을 것입니다. 특히 이전 삼국시대나 남북국 시대는 탑과 불상 같은 건축과 조형물이 발전했다면 고려는 회화 위주로 발달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고려의 회화미술은 대몽고항쟁을 겪으면서 이를 이기고자 하는 신앙심과 예술가들의 집념이 만나게 되었고 여기에 비단 뒷면에 안료를 바르는 배채법이 만나면서 고려불화는 인기의 절정을 맞게 되었습니다. 당시 원나라는 고려에 고려의 사경과 불화, 그리고 나전경함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수탈의 의미와는 다른 것으로 해석됩니다. 원나라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고려의 기술로 만들어진 최고의 작품들을 갖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들어선 조선은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을 폈습니다. 사실상 불화의 흐름이 끊겼습니다. 그에 더해 일본정부가 요청하면서 고려불화가 반출된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대장경을 구하러 온 일본승려와 사신에게 대장경 대신 범종 등 불교유물을 주었다고 하니 아마 그 중에는 고려불화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에 불화가 많다고 해서 그게 다 약탈문화재는 아닙니다. 이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불화의 뛰어난 가치는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인정받았고 우리 민족은 그 뛰어난 예술품을 지키지 못하고 일본을 거쳐 세계 각지에 퍼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국내에 있는 10여 점의 고려불화도 개인의 노력으로 높은 금액을 주고 다시 들여왔으니 이제라도 그 작품들을 소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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