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불화이야기 두번째 아미타삼영도

2022. 9. 3. 20:21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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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소장 국보 218호 아미타삼존도.

불교에서 시방 정토 특히 아미타불의 정토에 다시 태어나려는 극락왕생신앙이 있었는데 이를 정토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미타불을 계속 외우면 서방정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신앙입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신라의 원효가 크게 퍼트린 신앙이었습니다. 원효는 불교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이와 같은 정토신앙을 널리 알렸으며 따라서 정토 신앙은 서민적인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행을 쌓고 염불을 외우다가 생을 마감할 때 즈음이면 아미타여래와 여러 보살들이 직접 찾아와 극락으로 데려간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통일신라 때부터 유행하여 고려시대에는 불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아미타내영도가 그것입니다. 아미타내영도에는 여러 구도가 있습니다. 아미타여래가 단독으로 와서 임종을 맞아 극락에서 다시 태어날 사람들(극락왕생자)을 데려가는 독존도, 아미타여래·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삼존불이 함께 와서 극락왕생자를 맞이해 가는 삼존도, 아미타불과 팔대보살이 극락왕생자를 데려 가는 구존도, 아미타불과 25보살 등 수많은 권속이 극락왕생자를 맞이하는 그림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미타내영도는 임종할 때 아미타부처님이 서방극락에서 오셔서 임종자를 극락으로 이끄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세계에 많은 아미타내영도가 있지만 국내에 남아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아미타삼존내영도는 고려불화 중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단 아미타삼존내영도라고 한다면 아미타부처가 임종자를 맞이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인데 삼존이라고 명칭이 붙었으니 아미타부처를 포함한 세 부처가 등장합니다. 그리하여 보통 아미타삼존내영도라고 하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나옵니다. 그런데 삼성미술관에서 소장한 고려시대 삼존내영도에서는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7세기경에 중국에서 이러한 조합이 유행하였습니다만 이렇게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그리고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배경을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려의 아미타삼존내영도에서는 관음보살이 허리를 구부리고 있습니다. 보통 보살들은 곧이 서 있다고 합니다. 고려의 아미타삼존내영도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두손으로 작은 연꽃을 받들고 있으며 수행의 정도에 따라 황금연꽃 위에 내영자를 태우고 극락으로 태우고 간다고 합니다. 이 불화에서는 황금연꽃인지는 모르지만 내영자를 데려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바로 임종자가 그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내영자가 그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럼 아예 내영자가 그려져 있지 않느냐 그런것도 아니어서 서하의 불화에서는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하의 불화에서는 고려의 불화에서 보이는 지장보살 대신 대세지 보살이 보입니다. 서하의 불화에서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함께 커다란 황금연꽃을 받들고 있습니다. 서하의 불화에서도 내영자를 볼 수 있으며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함께 커다란 황금연꽃을 들고 내영자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삼존내영도와 서하의 삼존내영도의 비슷한 점을 꼽으라면 아미타불의 백호에서 빛과 같은 형체가 내려와 내영자를 비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빛의 생김새는 고려와서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하의 불화에서는 아미타불을 보좌하는 두 협시보살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빙 돌아서 내영자에게 비추고 있지만 고려 불화에서는 거침없이 내영자를 비추고 있습니다. 또한 고려의 불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내영자 앞의 어린 아이가 서하의 불화에서는 보인다는 점입니다. 극락으로 왕생할 때 순수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와 같이 표현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고려의 불화와 서하의 불화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지만 중국의 불화와 비교해서는 오히려 고려의 불화는 서하의 불화와 닮아 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러시아 에르미타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3세기 서하의 아미타내영도. 보살이 연화대를 들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그럼 서하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서하는 실크로드 상에 있었던 유목국가로 190년간 있었던 국가로 탕쿠트 족이 세운 나라였습니다. 이러한 서하는 불교가 국교인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북송과 활발히 교류하였습니다. 그리고 서하는 북송을 통하여 경전과 판본을 수입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고려와 서하가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도상이 서하와 고려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꿔 말한다면 서하의 아미타삼존내영도가 고려의 아미타삼존내영도와 비슷한 구도를 보이는데 서하와 고려의 연결성이 대해서는 추측만 가능합니다.
고려의 아미타삼존내영도는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조성연대, 조성한 사람, 목적 등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화기란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중국의 불화에서도 화기란에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여러점의 불화를 미리 만들어 넣고 시주하고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때 그 때마다 맞는 내용을 적어주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만들어놓고 주인을 기다리다가 임자를 만나지 못한 그림이거나 혹은 팔렸지만 어떤 이유로 화기란이 공란으로 표시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이 그림이 주문자를 위해서 먼저 제작된 그림이라면 보편적인 구도를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러면 아미타보살 옆에 협시보살 관음과 대세지가 있어야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협시보살이 관음(觀音)과 세지(勢至)가 아닌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그려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당시 이러한 그림이 유행했다는 증거일까요 아니면 이 그림에서만 보인 파격적인 구도였을까요. 어쩌면 이 불화를 제작한 화가는 어느 순간 서하의 불화를 접하게 되어 거기에 영감을 얻어 제작된 불화는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제작되었지만 우리가 알고 잇는 고려 아미타삼존내영도는 너무 파격적인 삼존불의 배치로 선제작해놓고도 주인을 찾지 못한 불화였는지 모릅니다. 자세한 내막을 알기 힘든 아미타삼존내영도, 당시에는 외면 받았을지도 모르는 이 작품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걸작으로 대접받고 있는 그림인데요. 화기란에 내용이 표시되었더라면 이 그림을 그린 사람에 대한 내력을 알 수 있을텐데 높아진 작품의 위치만큼 수수께끼가 가득한 불화입니다. 
 당대 최고의 그림이라고 극찬 받았던 고려 불화, 사람들은 고려불화에 대해 높이 평가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해외에서는 고려불화에 대해서 ‘신묘의 경지’라고 극찬하였습니다. 일본 불화 연구의 원로학자인 키쿠타케 준이치 교수는 고려불화를 가리켜 아시아에서 최고라고 했으며 이에 더해 최근에는 세계 최고라고 한 것입니다. 불화를 평생 연구한 사람이 고려의 것에 대해 극찬한 배경은 무엇일까. 일본에서는 고려불화를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작품 관람용 돋보기를 나누어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고려불화는 멀리서볼 때보다 가까이에서 관찰할 때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는데 그 세밀함이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신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비단 바탕의 뒷면에서 색을 칠하여 색감이 은은하게 앞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기법인 배채법은 자연스러운 피부색의 효과와 부드러운 농도를 나타내며 복잡하고 여러 겹의 의상과 피부가 겹쳐져 있는 배치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탁하지 않고 사실에 가까운 채도를 자랑합니다. 특히 등장인물의 몸을 감싼 비단은 씨줄과 날줄이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투명도를 자랑하며 이는 다른 불화와 구별되는 고려 불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마치 초정밀 기법으로 표현한 듯한 그림은 신의 경지라 할만한 것으로 당시 고려사람들도 이 그림을 보며 불심을 더욱 높여 나갔을 것입니다. 이러한 고려불화의 우수성을 고려청자에 비해 알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이러한 고려불화들이 국내보다는 해외에 유입되어 흩어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려불화에 대해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새에 이미 해외에 나가있는 고려불화는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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