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장례문화 그리고 고려장
2022. 9. 11. 11:08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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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가족제도는 어땠을까요. 고려시대는 단혼(單婚)부부와 미혼의 자녀들로 구성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노부모나 생활능력이 없는 친척을 부양하기도 했고 일부 소수는 대가족도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왕실에서 근친혼이 행해졌던 것과는 달리 고려백성들은 법적으로는 근친혼이 금기시되었으나 이는 3촌 정도의 아주 좁은 범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근친혼과 동성혼이 완벽하게 금지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남자가 처가에 들어가 사는 경우가 많았으며 때로는 다시 남편의 집으로 넘어와 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사회는 일부일처가 대세였는데 일부 부유층에서는 첩을 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재혼에도 제약이 없었습니다. 결혼은 신분계급내혼이 경향이 강하였기 때문에 노비는 노비와 결혼하였고 양천이 결혼을 하는 경우 그 자식은 노비를 취급하는 일천즉천의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려는 여성의 지위가 조선후기처럼 열악했던 것은 아니어서 재산은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균등상속이었으며 자녀 간에도 균분상속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럼 이 시기의 장례 문화는 어땠을까요. 고려는 불교국가였기 때문에 사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불교적 의례가 있었고 여기에 유교적인 절차가 더해졌습니다. 절 근처에서 화장을 하고 유골을 수습해 절에 모시고선 예법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한 가문이 여러 세대에 걸쳐 같은 묘역에 묘지를 정하는 이른 바 문중묘지 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 때라고 합니다.
고려시대 한 기록을 보면 사람이 죽었을 때 26일 만에 화장을 했고 5개월 뒤에 다시 매장하였다고 합니다. 지금보다 꽤 긴 시간동안 망자를 기리며 애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복장(複葬)이라 하는 것으로 여러 차례 장례를 치른 것입니다.
“옛날에 조상의 장례를 치르면서 날을 오래 잡은 것은 예로써 장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지금 사대부들이 관례적으로 삼일장을 치르는 것은 전혀 예법에 맞지 않다.” 『고려사』
이렇듯 고려에서는 망자를 보낼 때 그 기간을 길게 잡았으며 그것을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장례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들게 되어 폐단도 있었습니다. 임시로 부모의 유골을 사찰에 모셔두고는 수 년이 지나도록 매장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부에서 이를 조사하도록 했으며 만일 가난하여 그리하였다면 그 비용을 국가에서 대어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유골은 석관에 담아 매장함으로 장례식은 마무리하게 됩니다. 고려에서 시신을 화장하는 것은 불교식 의례라고 볼 수 있으나 사실 유럽에서도 그 모습이 확인되며 선사시대 때부터 행해진 장례가 화장이라고 합니다. 어찌되었든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화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으며 이것은 왕족,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에게도 행해졌습니다. 고려시대 때에는 화장을 하여 모든 것을 태워 보냈으며 해골만을 남기거나 혹은 그 뼈마저도 태워 그 재를 물고기와 새에게 베풀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망자가 하늘에 가서 다시 태어나 서방세계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백성들은 화장의 절차 없이 그냥 매장하기도 했으며 그나마 상황은 나은 백성은 작은 석관을 수습한 유골을 넣었으며 옹관에 넣어 묻기도 했습니다. 장례를 치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면 그냥 들판에 버려두는 경우도 있었으니 이른바 풍장 혹은 조장이라는 부르는 장례 풍습입니다. 그리고 이와 달리 지배층은 화장을 한 뒤, 그 유골을 석관이라는 곳에 담아 두었습니다.
고려시대의 명망있는 사람이 죽었을 경우 유명한 석공을 불러 석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러 문양과 더불어 사신도를 새겼습니다. 또한 관 뚜껑엔 별자리를 새겨 넣었으니 이는 죽음을 맞이했지만 하늘을 볼 수 있게 하고픈 마음에서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려의 석관 장인들이 표현과 기법이 들어갔으니 고려의 석관 역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궁금한 게 바로 고려장이라는 풍습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만화로도 만들어져 그 충격적인 스토리가 아이들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옛날에 노인을 산중에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노인이 70세에 이르렀을 때에 어떤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지게에 짊어지고 산중으로 들어가서 약간의 음식과 지고 왔던 지게를 놓아두고 내려옵니다. 그런데 따라왔던 그 아들이 그 지게를 가지고 돌아오려 했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왜 지게를 가지고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아들은 아버지가 늙으면 이 지게에 버리려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에 잘못은 깨달은 남자는 다시 늙은 아버지를 돌아와 봉양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려장의 내용입니다.
‘주보무나 부모가 살아 있는데 아들과 손자가 호적과 재산을 달리하고 고양을 하지 않을 때에는 징역 2년에 처한다.’
‘부모나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슬퍼하지 않고 잡된 놀이를 하는 자는 징역 1년, 상이 끝나기 전에 상목을 벗고 평상복을 입는 자는 징역 3년에 처한다.’
이것은 고려에서 법률로 정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고려에서는 효도를 강조하였으며 이를 어길 경우 나라에서 벌을 내린 것입니다. 따라서 고려장이 풍습으로 존재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한편 중국의 ‘효자전’에는 원곡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빈다. 원곡의 아버지가 늙은 할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속에 버리고 돌아오는데, 원곡이 자기도 아버지가 늙으면 이렇게 버리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크게 뉘우치고 할아버지를 데려왔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장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합니다. 중국에서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설화만 전해져 내려오고 이를 입증하는 문헌이나 고고학적인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의 설화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전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고려장과 비슷한 내용의 원형은 어디서 왔을까. 기록상으로는 4세기 중반~5세기 후반 가야(吉迦夜)와 담요(曇曜)가 한역한 〈잡보장경(雜寶藏經)〉 기로국연(棄老國緣)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주 옛날에 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있었던 기로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대신이 그 법을 어기고 동굴에 아버지를 숨겼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신이 나타나 기로국 임금에게 문제를 내니 뱀 두 마리를 보여주고는 암수를 구별하라 하고 틀리면 7일 이내에 벌하겠노라 한 것입니다. 이 때 그 대신이 동굴에 계신 아버지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니 가늘고 연한 물건을 뱀 몸에 놓았을 때, 몸이 움직이면 수컷, 움직이지 않으면 암컷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후에도 여러 문제를 냈음에도 대신은 동굴의 아버지의 지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이에 기로국의 임금은 탄복하여 대신에게 상을 내리겠노라고 했으나 사실은 동굴에 계신 아버지에게 지혜를 얻은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이에 임금은 기로국의 나이든 사람을 버리는 풍습을 폐지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의 전생 중에 있었던 이야기로서 나이든 노인이 부처님의 전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럼 고려장이란 풍습은 왜 나왔을까요. 이 이야기는 미국인 그리피스가 쓴 『은자의 나라, 한국』에 소개된 것으로 이 이야기를 수록한 그리피스는 일본에 머물며 일본인들에게 들은 내용을 썼으므로 조선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919년 일본인이 쓰고 조선 총독부가 발간한 ‘조선 동화집’에 불효식자, 부모를 버린 사내라는 제목으로 고려장과 관련된 내용이 수록되었습니다. 국내 한 교수는 고려장이란 명목으로 일제가 우리나라 무덤을 도굴했는데 해당 무덤의 주인의 부모를 버린 고려인의 무덤이라며 조선인 인부를 시켜 파게하고 그 유물을 반출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고려장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법률로 효를 정하고 있으니 고려장이란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오해해서는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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