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의 가치

2022. 9. 27. 10:4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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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고려말기의 승려인 동시에 학자로 호는 묵암입니다. 그는 1206년에 경북 경산 지역의 향리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견명이며 자는 회연이었으나 후에 일연이라고 고쳤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태양이 배를 비치는 꿈을 꾸고 태기를 얻어 그를 낳았으며 어려서부터 불교에 뜻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아홉 살 때부터 광주 무량사에 글공부를 하였으며 14살 때에는 중이 되었습니다. 22살이 되던 고종 14년에는 승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1283년에는 국사가 되었습니다. 최씨 정권기에는 대장도감에서 대장경 조판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무신정변기 이후의 왕인 원종과 충렬왕에게도 존숭을 받는 고승이었다고 합니다. 일연에 대해서는 과묵하고 허튼 말을 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효심도 지극하여 언제나 어머니의 곁에 머무르고자 하였으며 『삼국유사』 외에도 여러 책을 저술하니 그 책이 100여 권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책이 바로 『삼국유사』입니다. 특히 『삼국유사』에 대해서는 고려가 국가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와 혼란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찾기 위해 『삼국유사』를 집필했다고 여겨집니다. 일연은 일생을 전국의 절을 돌아다니며 수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백성들의 고충을 알고 그에 대한 경험이 『삼국유사』 집필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삼국사기』가 1145년에 편찬되고 그 뒤에 『삼국유사』가 1281년에서 1283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기적으로 삼국사기보다 130여 년이상 뒤에 지어진 것이 『삼국유사』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에는 없지만 『삼국유사』에는 있는 것, 그리고 현재 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것, 바로 ‘단군신화입’니다. 따라서 『삼국유사』는 우리가 단군의 후손임을 명확히 알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31년부터 이어진 몽골의 침입에 지쳐가는 민중들에게 우리의 자존심을 알리기 위해서 그리고 후손들이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단군신화를 수록하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삼국유사』는 단군신화를 전하며 후대에게 알렸으니 일제는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근거로 삼국유사를 거짓이며 창작물이다라고 저평가했습니다. 더러는 우리나라 유학자들도 해괴하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곰이 인간으로 되는 과정이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인 학자들의 평가절하는 역사 서술에 대한 유연한 해석을 배제한 것입니다. 곰이라 함은 바로 곰토테미즘과 관련있는 이야기인데 당시 일제강점기 시대에 단군신화를 중심으로 조선인들이 뭉치니까 이를 아니꼽게 본 일본인학자들이 『삼국유사』를 부정했고 또한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한반도 식민지배를 정당화해야 했기에 임나일본부를 주장했고 따라서 그들의 역사조작에 방해가 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부정되어져야 했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에게도 두 책 다 소중한 역사서입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은 승과에 장원급제할 만큼 불교지식도 뛰어난 분이었지만 여러 분야 특히 문학 부분에 있어서도 엄청난 재능을 가진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삼국유사』에는 불교와 관련된 시와 더불어 고대국가의 모습을 설펴보게 하는 설화와 고대 시가인 향가, 그리고 고대의 민중들이 불렀던 민요, 게다가 서사시적 구성을 가지고 있는 고대신화도 있는데요.『삼국유사』는 고대 국가시절의 다양한 문학작품이 실려 있기 때문에 고대사의 중요한 사실과 더불어 고대국문학의 뿌리를 들려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책이 없었다면 우리는 향가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삼국사기』는 술이부작의 원칙 아래 서술되었으니 그것은 서술은 하되 편찬자가 창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객관적인 입장에서 편찬하였다는 의미로 그 사료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나 보니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신화나 많은 역사가 누락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증거주의가 우선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은 후대 신채호같은 역사가에게 비판받았습니다. 사대주의에 입각하여 편찬된 책이라는 것이며 김부식을 포함한 『삼국사기』의 편찬자들이 실제로 유교이념을 가지고 있던 관료들로 당대 대외적으로도 그러한 외교를 견지했기에 이러한 평가가 나왔습니다. 
반면 『삼국유사』는 기이하고 신비한 일들도 수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불교 사상, 불교 설화, 고승들의 일화와 일반 백성들의 불교 신화, 구도와 득도 과정에 수록되었습니다. 이는 유교중심의 『삼국사기』에서는 당연히 찾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삼국유사』가 불교관련 내용이 많다보니 누군가는 윤색되었다는 표현을 쓸지도 모릅니다. 윤색의 의미는 사실을 과장하거나 미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니 이는 자칫 『삼국유사』가 역사를 창작하거나 왜곡한 작품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스님이고 고려는 불교국가입니다. 불교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일연스님이 백성들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백성들을 대하면서 믿기 힘든 이야기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 진위여부를 떠나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수록하여 당대의 느낌을 생생하게 후대에 전하려는 일연스님의 의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후손들에게 맡기려한 건 아닐까요.

삼국유사

『삼국사기』가 중국정사의 기전체 형식을 도입하여 쓴 역사서라면 『삼국유사』는 보다 자유로운 구성의 역사서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후고구려, 후백제 등의 간략한 연표를 넣은 「왕력 」편과 고조선에서 후삼국까지의 단편적인 역사를 서술한 「기이」, 삼국의 불교수용과 융성에 관한 이야기가 실린 「흥법」, 탑과 불상에 관한 이야기와 구도와 성불 과정에서 일어난 신비스러운 사건이 담긴 「탑상」, 고승들의 저술과 포교 활동을 기록한 의해, 신라의 신비하고 초월적인 힘으로 악과 미신을 퇴치하는 모습을 그린 「신주」, 그리고 신비한 신앙체험이 들어있는 「감통」, 그리고 속세에서 초탈한 이물의 행적을 실은 「피은」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둘 다 고려 이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역사인식에 큰 차이가 있으니 삼국사기는 유교적 합리주의사관에 입각하여 쓴 것이고 삼국유사는 불교신앙을 중심으로 기층문화가 대거 포함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두 역사서 다 신라 중심으로 서술되었고 발해에 대한 내용이 빈약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삼국사기』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나라만 서술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고조선부터 삼한과 부여, 그리고 고려시대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락국기를 통해 가야의 이야기도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육당 최남선은 삼국사기에 대해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함께 한국 고대의 생활과 문화의 원형을 알려주는 최고의 자료’라고 평가했습니다. 『삼국유사』가 비단 역사라는 학문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기 있었고 우리 고대문화를 알고자 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평한 것입니다. 
한 때 어느 학자는 이러한 『삼국유사』에 대해 당시의 사학계가 이루어놓은 합리주의 접근이라는 전진적 자세에 반발한 복고적인 것이라는 혹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잘못된 해석이며 유교의 도덕적 합리주의 사관에 대항하기 위해 신이를 기록한다는 방침아래 저술된 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일연스님이 신이한 설화를 수록한 것은 창작의 의도로 역사를 꾸민 것이 아닌 설화들이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역사적 진실을 발견하려는 노력입니다. 또한 이러한 신이한 역사세계관은 불교에 기반한 것이 많았는데 이는 당시 불국토를 외치던 고려의 민중들에게 종교적 감동을 일으킬 목적도 『삼국유사』에서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삼국유사는 당시 불교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인식, 이에 대한 강한 비판정신이 흐르고 있으니 계속된 고려사회와 불교계의 혼란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짙게 깔린 역사서입니다. 따라서 삼국유사가 삼국사기보다 후대에 나온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삼국사기에 비해 신이하고 믿지 못할 내용이 못하다고 하여 구성이나 내용이 뒤처져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삼국유사』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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