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이단아 허균 그가 홍길동전을 지었나.

2022. 10. 22. 20:17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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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그는 천지간의 괴물이다. 그 몸뚱이를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고 그 고기를 씹어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일생을 보면 악이란 악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이러한 평가를 조선의 인물은 누구일까요. 엄청난 악당인 것처럼 묘사한 이 문장 속 주인공은 의외로 허균입니다. 허균은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조선시대의 문학가로 더 알려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그는 글을 잘 짓기도 했습니다. 
“오직 문장의 재주로 세상에 용납되었다.”-선조실록-
“허균은 문재가 극히 높아 붓만 들면 수천 마디를 써냈다. -광해군일기-
그가 얼마나 글을 잘 지었는지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그는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그들을 맞이하고 했습니다. 당시는 창외교라 하여 시를 주고 받으며 서로 뜻을 전하는 조선시대의 외교방식이 있었는데 이를 허균이 맡아서 했습니다. 허균이 문장에 관해 워낙 뛰어나서 그렇기도 했지만 허균은 다방면에서 뛰어난 지식을 가진 유학자였습니다. 그래서 명나라에서 온 사신들을 상대하기에 제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를 통해 명나라에서는 『조선시선』이라는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는 조선의 문인들의 시 뿐만 아니라 최치원같은 조선에 앞서 있던 왕조의 문장가들의 시들까지 수록한 책으로 조선의 글들이 명나라로 수출된 드문 사례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들이 명나라에서 발간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들을 알고 있던 허균이 암송함으로써 명나라 사신이 써간 것이었습니다. 그가 문장에 뛰어난 것뿐만 아니라 한 마디로 천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천재는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에 더욱 열성적이었습니다. 명나라로 사신으로 가서는 다른 사신들이 인삼을 팔아 골동품을 살 때에 그는 수많은 책을 사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이한 행동을 일삼기도 했습니다. 뛰어난 실력으로 인해 벼슬자리에 나가기도 했지만 6번이나 파직당했습니다. 황해부사로 부임했을 때 자신이 알고 지내던 기생을 데리고 가서 6개월 만에 파직당하는 등 성리학 지배질서가 잡힌 조선사회에서는 거의 기인에 가까운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불교가 억압받던 당시 승려들과 어울리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명나라에서 유교의 이단아로 취급받던 이탁오의 저서를 사와서 읽기도 했습니다.
“서얼의 자손에게는 문과, 생원 진사시의 응시를 허락하지 않는다.” -경국대전 예전-
기이한 행동도 보였지만 그는 조선이란 사회에서 보면 앞선 생각을 가진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나라가 작은 조선에서 서얼에 차별을 두어 벼슬에 제한을 두는 것을 배우 안타까워했습니다. 특히 뛰어난 시인이었으나 서자였기 때문에 관직을 포기해야 했던 스승 이달을 보고 조선사회의 모순을 느낀 그는 이상국가를 건설한다는 『홍길동전』을 통해 분을 풀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칠서의 난이 일어나고 이들을 문초하는 과정에서 광해군을 없애려는 역모를 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칠서의 배후로 허균이 지목되었습니다. 허균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목대비 폐비론을 거들었고 그리하여 광해군의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숭례문에 흉방이 붙었습니다. 백성들을 위해 광해군을 제거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이 허균의 조카인 하인준의 소행으로 밝혀져 허균도 잡히게 되었습니다. 허균은 변론의 기회도 없이 능지처참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유재론과 호민론이 담긴 『성소부부고』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이와 같은 글이 담겨 있었습니다.  
“천하에 두려워 할 바는 백성뿐이다.”
허균은 조선이란 사회가 담긴 힘든 앞선 사상가였는지 아니면 역모를 통해 왕위에 오르려는 반역자였는지 누군가의 판단에 맡겨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로 흔히들 알고 있지만 허균은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발자국을 조선에 남긴 인물로 딱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사람입니다. 그래도 그가 지은 『홍길동전』을 들여다보면 그의 생각을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소설 가운데 작자가 표시된 몇 되지 않는 작품으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허균의 비판의식과 개혁사상이 들어가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홍길동은 조선 인조 때의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홍판서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의 어머니가 홍판서의 몸종 춘섬이었으므로 홍길동은 홍판서의 아들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에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간 홍길동은 활빈당을 조직하고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인물입니다. 조정에서는 그를 잡지 못하고 끝내 홍길동의 요구대로 병조판서의 벼슬을 내리지만 이마저도 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게 됩니다. 

홍길동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균의 『홍길동전』은 그저 최초의 한글소설 딱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말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허균은 조선보다 큰 세상을 꿈꾸었고 그건 아마 바다로의 진출을 꿈꾸는 건 아니었을까요. 그보다 앞선 바다영웅 장보고처럼 그리고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한 이순신처럼 그는 바다를 유토피아가 숨어 있는 미지의 장소로 표현한 것을 넘어서 좁은 영토를 가진 조선이란 나라가 이를 해결하고 바다를 이용하여 무역을 하고 해상왕국을 건설하기 꿈꾸었는지 모릅니다. 이미 네덜란드가 이 시기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17세기 가장 강력한 국가로의 도약을 마치고 있었으니 허균의 사상은 그와 아무 관련도 없는 지구반대편에서 이미 실현되어가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은 현실을 비판하고 유토피아를 꿈꾼 소설 이상의 의미를 지닌 사회개혁지침서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만 직설적으로 말할 수 없었던 당시 조선사회 분위기상 허균은 자신의 생각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문학작품은 『홍길동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시각도 있습니다. 『홍길동전』을 이식이 쓴 『택당집』에서는 ‘허균이 『홍길동전』을 썼다’고 전해지지만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진보적 사상을 담은 책을 이름난 학자 허균이 과연 집필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홍길동전의 원본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 소설이 최초의 한글소설이 아니라는 의견도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한문으로 출간된 책을 이에 대한 수요가 늘자 한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홍길동전』을 지었다고 하는 허균은 16세기의 인물인데 『홍길동전』에 17세기의 인물 장길산이 등장한다는 점, 18세기에 활성화되는 선혜청이 소설에 나온다는 점, 그리고 『홍길동전』을 제외한 모든 한글소설이 18세기 후반부터 등장한다는 점은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허균은 성품이 사납고 그 행실이 개, 돼지와 같았다. 윤리를 어지럽히고 음란을 자행하니 인간의 도리가 전혀 없었다. 죄인을 잡아 동쪽의 저잣거리에서 베어 죽이고 그 기쁨을 누리고자 대사령을 베푸노라.’ 
조선은 허균이 역모죄로 1618년 역모죄로 처형되자 위와 같은 내용이 담긴 반교문을 내립니다. 혁명적가이기도 했지만 그와 별개로 일탈되는 행동으로 조선역사상 가장 기이한 문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질서가 확립된 조선이란 사회에서 탁구공 마냥 통통 튀는 허균이란 사람을 품고 가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몇 백수의 시를 줄줄 외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천재란 말 대신 ‘귀신의 정(精)’이나 ‘도깨비의 화신’이라 불렀습니다. 어쩌면 자유분방한 그의 비참한 최후에 사람들은 『홍길동전』을 연결지어 그를 조선최고의 풍운아 내지는 혁명가로 표현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계는 한글소설의 시작점을 앞당기기 위해 허균을 억지로 끌어들인 건 아닌지 아니면 정말로 허균이 한글로 홍길동전을 지었는지 후에 이 논란을 밝혀줄 원본이 발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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