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수준높은 공예 감은사 사리함

2022. 12. 11. 08:09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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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수도 경주시에는 아주 예전에 감은사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이 절은 31대 신문왕이 선대 왕인 문무왕을 위하여 지은 절로 문무대왕은 일본으로부터 신라를 지키기 위해 이 절을 짓다가 절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어 용이 되었다고 하며 신문왕은 682년에 즉위하여 내부장치를 마쳤다고 합니다.  
“문무왕이 왜병 진압을 위해 이 절을 창건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이 왕위에 올라 개요2년(開耀·682년) 공사를 끝냈다. ‘금당 밑 섬돌을 파고 동쪽으로 향하는 구멍 하나를 냈는데(排金堂●下東向開一穴)’ 이 구멍으로 용(문무왕)이 금당으로 들어와 돌아다니게 하였다. 왕이 내린 유조로 뼈를 묻은 곳을 대왕암이라 했고, 절의 이름을 감은사라 했다.” 『삼국유사』
“박숙청이 아뢰었다. ‘동해에 있는 작은 산이 물에 떠서 감은사로 향해 오는데 물결에 따라 왕래합니다.’ 왕이 이상히 여겨 일관(日官) 김춘질에게 명하여 점을 치니 ‘대왕의 아버지께서 지금 해룡이 되어 삼한을 진호(鎭護)하고 계십니다’라고 했다.” 『삼국유사』 
이 절 문지방 아래 동쪽을 향하여 구멍이 한 개 났는데 이는 용이 절에 들어와서 서릴 것을 예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절은 조선시기까지 존속했지만 이후 폐사되었고 절의 금당터 앞에는 거대한 석탑 2기가 동서 양쪽에 있다고 합니다. 

감은사지 동탑사리장엄구


1959년 이 절터의 3층 탑에서 완벽한 상태의 사리를 발견하였습니다. 4면에 사천왕상이 조각되어있는 사리함에 속에는 신장상(神將像)과 주악상(奏樂像) 등을 따로 만들어 장식한 사리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라기 안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넣은 사리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 감은사 동 3층석탑을 해체복원하면서 사리장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리함은 금으로 장식되어 겉으로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때 발견된 사리장엄구의 크기는 외함 31×19.9cm, 내함 20.3×14.7cm, 사리병 2.8×1.2cm이었습니다. 외함의 바깥 네 면에는 사천왕상이 압출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압출기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만든 틀 위에 금속판을 올려놓고 여러 종류의 정으로 두드려 형체를 만드는 기법으로 감은사지 동탑사리장엄구에서는 세밀한 문양을 위해 추가적인 공정이 가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천왕상은 방위에 따라 창, 검, 탑을 들었으니 사면의 사천왕상은 각기 다른 포즈에 따라 세밀하게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양 옆에는 귀면이 나타나 있어 수호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며 빈 공간은 구름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발굴 당시 감은사 동탑의 사리장치는 59년에 발굴된 사리장치와 규모와 양식이 비슷한 것으로 보면서도 거의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서탑에서 발견된 것보다 더 높게 평가했으며 특히 이 동탑의 사리장엄구는 신라 금속공예의 결정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이 유물에 대해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녹인 금속을 주물틀에 부어 모양을 내는 주조는 물론이고 금속을 두들겨 모양을 다듬는 단조, 문양을 두들겨 내는 음각, 선을 내는 선각, 금속을 입히는 도금, 알맹이 모양의 금덩이를 금속 표면에 붙이는 누금(樓金) 기술 등이 빠짐없이 동원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천왕상

그럼 외함에 표현된 사천왕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동서남북, 사방에 배치된 천왕이라고 합니다. 천왕의 이름은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 서방 증장천왕(增長天王), 남방 광목천왕(廣目天王),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사천왕은 사방을 지키는 신이자 나라를 지키는 신으로 신라시대에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서쪽 바다에 당나라 군사들이 수시로 출몰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서는 ‘낭산 자락에 채색 비단으로 절을 짓고 명랑 법사와 명승 12명이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쓰니 당나라 배가 모두 침몰했다’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신라가 당나라와의 수군과의 결전에서 자연의 힘으로 물리친 적이 있나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조금 과장이 엿보이는 기록에 이어 왕은 같은 곳에 사천왕사라는 절을 짓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 목탑이 있었는데 그 터에서 채유소조상의 형태를 띤 사천왕상이 발견됩니다. 사천왕사의 사천왕상의 제작자에 대해 기록에서는 양지라고 전합니다. 그리하여 이 사람이 혹시 감은사지 탑 밑에서 발견한 사리장엄구의 제작에 참여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그에 대해서 생몰년이 알려지지 않으므로 그가 천민출신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고 양지가 만든 다른 작품들에서 마치 간다라의 양식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 되어 있어 그가 외국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따지면 보면 감은사지 사리장엄구는 신라의 최첨단 도금기술·제작 기법과 더불어 국제적인 감각이 결합된 걸작이라 할 수 잇습니다 .
부처의 사리를 직접 담은 내함은 높이 20cm, 너비 14.7cm로 기단과 지붕에 해당하는 천개(天蓋)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단의 네 귀에는 사자가 조각되어 있으며 표정도 제각기 다릅니다. 아랫면에는 무늬곽을 뚫어 장식하였으며 그 안에는 신장상과 공양보살이 양각되었습니다. 그단 위에는 사리봉안대를 설치하여 여기에 수정병을 놓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리병을 놓은 복발형 보주라는 것이 있는데 사천왕상과 승상 8기가 그 작은 크기에도 표정을 지으며 호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리병은 3cm정도의 크기인데 금으로 된 받침대와 뚜껑이 있으며 이를 특수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지름 0.3mm의 아주 작은 금알갱이가 꽃모양으로 막혀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 있는 보살상 얼굴은 그 크기가 5mm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얼굴 안에 눈, 코, 입과 표정까지 새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천개 부분에는 금방이라도 소리를 낼듯한 여러 장식들이 달려 있어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여기서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풍탁이었습니다. 풍탁은 자연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소리를 내는 일종의 풍경(風磬)인데 길이가 겨우 5~7㎜, 무게는 0.04g 가량에 지나지 않아 워낙 작은 크기라서 도구의 도움 없이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풍탁은 금으로 판을 납작하게 만들고 두루마리 감듯이 말아 올려 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조그마한 금덩어리도 붙였는데 지름이 0.1mm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함의 도금막은 두께가 17㎛로 균일한 것으로 나타나 당대 신라인들의 고도의 금속기술을 알 수 있습니다. 

풍탁


이러한 작게 표현한 사리장엄구를 보호하고 있던 것은 바로 거대한 건축물인 탑입니다. 그리하여 부처의 사리를 모신 사리장엄구를 품은 탑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리는 입멸 석가모니 부처의 다비(茶毘)식 뒤에 타지 않고 남은 유골들을 말하며 요즘에는 다른 고승들이 남긴 유골도 사리라 하기 때문에 부처의 사리는 불사리라고 합니다. 석가모니의 사리는 인도의 8개 지역에 나뉘어 봉안되었는데 아소카왕대에 7개 지역의 사리탑을 헐어 그 사리를 전세계에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불교가 널리 퍼졌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사리가 선덕여왕 때에 자장율사를 통해 100립을 들여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도사 금강계단과 황룡사 9층 목탑, 그리고 태화사 탑에 봉안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서탑사리장엄구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바로 서탑사리장엄구와 동탑사리장엄구의 빛깔입니다. 애초에 먼저 관심을 받은 것은 기운 탑을 복원하기 위해 해체하면서 59년에 먼저 발견된 서탑사리장엄구였습니다. 당시 발견된 청동제 사리함과 전각형 사리기, 그런데 96년에 발견된 동탑사리함은 금동이었습니다. 왜 둘은 각각 청동과 금동으로 발견되었을까. 애초에 서탑의 사리함도 금동이었을 것입니다. 청동제로 보이는 이유는 서탑의 사리공이 동탑의 것보다 습기 피해를 더 입어 청동을 싸고 있던 도금막이 훼손된 것이었고 50년대보다 앞선 보존기술을 갖고 있던 90년대에는 X레이 촬영, 오염물질 제거를 거쳐 금동도금을 살리기 위한 약품처리를 통해 금빛을 살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9년에는 전자현미경이 없어 아마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초소형 풍경과 사리기의 지붕도 세상에 나오자마자 사라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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