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영토는 어느 정도였을까.

2022. 12. 13. 08:09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남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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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로레첸스코예 유적은 발해의 지방행정구역 15부 중 솔빈부(率濱府)의 옛 땅에 있는 평지성

2018년 중국과 러시아가 국경을 이루는 아무르강 북쪽 평원 취락 유적에서 발해의 토기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발해 수도인 상경성이나 발해 유적지인 크라스키노 성에서 나온 토기와 유사한 것으로 9점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곳은 백두산까지 직선거리가 약 1000km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근거로 한다면 발해의 영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실제로 넓게 형성이 됩니다. 그럼 문헌에서는 발해의 영역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옛 문헌에 대해서는 발해의 영역에 대해 사방 5000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5000리라면 1600km가 넘는 길이로 토기가 나온 트로이츠코예 취락유적이 발해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발해의 북쪽 영역은 하얼빈에서 쑹화강을 거쳐 하바로프스크 남쪽까지였는데 트로이츠코예는 이보다 훨씬 북쪽입니다. 
그리고 4년 전인 2014년에는 왕성급에 해당하는 발해시대의 유적지가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습니다. 장소는 러시아연해주 중북부 우수리강 근처로 평지 성곽인 콕샤로프카-1 성곽이었습니다. 성곽의 유적과 유물은 이른바 왕성에 비견될 만큼 격이 높고, 고구려시대 전통을 강하게 지니고 있어 발견된 곳이 발해의 확실한 영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확인된 평지성터는 북벽 405m, 동벽 650m, 남벽 250m, 서벽 340m인 성벽 총길이 1천645m, 전체 면적 16만㎡에 달하는 대규모 성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발해시대에 사용된 온돌시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래와 점토를 이용하여 최소 1m이상 판축하여 조성했다는 점, 온돌을 사용하고 잘 다듬은 판석의 사용, 그리고 대규모 담장과 기와가 존재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왕성급에 해당하는 행정치소였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이곳의 발견은 연해주 중북부를 발해의 영역으로 포함시킬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학계에서는 해당 지역에 대해 발해의 영역임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러한 왕성급 유적지의 발견은 이곳이 확실한 발해의 영역 내에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 연해주 중북부 우수리강 근처에 위치한 평지 성곽인 콕샤로프카-1 성(城)을 발굴조사한 결과 발해시대 유적과 유물을 다수 확인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00 km 떨어진 곳에 우수리스크라는 곳이 있습니다. 지금은 인구가 20만도 안되는 중소도시이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지나가는 나름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발해의 성이 있습니다. 이곳이 발해의 성이 있던 이유는 발해가 전국을 통치하기 위해 5경 15부 62주였는데 솔빈부는 15부 중의 하나로 지금의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설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곳은 라즈돌나야 강이 있고 그 근처에 발해 성에 있는데 이 때 라즈돌나야 강의 수이푼강이라고도 불렀으니 이는 솔빈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리고 이 곳에 위치한 스타로레첸스코유적지에서 솔빈부 평지성이 자리했습니다. 현재는 150m 길이의 남벽과 30m 길이의 짧은 서벽이 남아있으며 성벽은 강자갈과 점토로 기초를 다진 후 중심부를 사다리꼴(폭 4m, 높이 2m)모양으로 판축기법을 사용해 쌓고 다시 흙으로 덧쌓아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심부는 점토층과 모래층을 번갈아 20겹 정도 쌓았으며 판축한 점토층의 윗면에서는 목봉 등으로 다진 흔적이 확인되었습니다. 판축은 판자를 네 벽쪽에 대고 그 사이에 흙은 단단하게 다져쌓는 건축방식으로 한성백제의 도성인 서울 풍납토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난 2009년에는 러시아에서 한 유물을 대여해 주었습니다. 이 유물은 두 개가 짝을 이루는 것으로 서로 합하면 옆면에 ‘합동(合同)’이라는 글자가 완성되는 일종의 명령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유물의 뒷면에는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 섭리계(섭<攝에서 손수변 없는 글자>利計)'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섭리계는 사람 이름이며 좌효위장군은 그가 맡은 직책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러한 유물이 한국의 박물관에 오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이 유물이 발해시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유물이 발견된 것이 러시아 연해주 니콜라예프카 성터였습니다. 따라서 이 유물이 발견된 니콜라예프카도 발해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해의 영역은 연해주 동쪽 끝 올가만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올가만 인근 산비탈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이른바 시니에스칼르이유적이라는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10여 채의 주거지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서 발견된 청동발울은 발해 귀족들의 무덤이 중국 육정산 고분과 니콜라예프카 성에서 출토된 방울과 일치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발해는 동쪽으로 해안가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러시아 연해주 니콜라예프카 성터에서 발굴된 발해시대 청동부절

‘무예가 장수 장문휴를 보내어 수군을 거느리고 등주에 쳐들어와 자사 위준을 살해하였다.’ 『자치통감』
등주라는 곳은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으로 산동반도(山東半島)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하여 요동(遼東)·한반도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웠던 곳입니다. 따라서 등주와 가까운 곳에 발해의 확실한 영역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발해가 등주를 공격한 이듬해에는 발해 무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당나라의 마도산 지역을 공격합니다. 이 길은 요동반도는 지나야 하는 원정로이므로 당시 발해는 요동지역을 확고하게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발해는 멸망하기 전에 거란과 일전을 벌였으니 그 장소 중에 하나가 바로 요동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발해 멸망 전까지 요동지역은 발해의 영역이었던 셈입니다. 따라서 발해는 남쪽으로는 신라와 맞닿아 있고 동쪽으로는 연해주를 포함한 바닷가에 접해 있었으며 서쪽으로는 요동반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하바로프스크를 포함하여 더 북진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발해는 최소 고구려의 영토의 1.5배에서 그 이상의 영토를 가지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이러한 영토를 가진 발해의 위상을 어떠했을까. 일본 구라시키시의 오오하라 미술관에서 발해의 유물이 있으니 그것음 함화 4년명 비상이라는 것입니다. 함화 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는 83년을 말합니다. 여기서 허왕부라는 단어가 보이는데 이것은 발해에서 왕으로 봉했다는 것입니다. 왕부는 황제를 주장하는 나라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허왕부라는 단어는 발해가 스스로 황제국임을 자처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에 보낸 국서에도 천손이라 표현했으니 발해는 하늘의 자손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정효공주 무덤의 묘지석에는 황상(皇上)이라는 표현이 있고 이 때 황상은 황제를 의미합니다. 당시 발해의 왕은 누구였을까. 공주의 아버지는 문왕이었습니다. 발해의 문왕은 3대 왕으로 당나라와 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하면서, 발해가 당나라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발해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왕으로 그러한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황제라 칭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발해는 주변의 민족들, 말갈족이나 만주지역의 소수민족에게 복속시키면서 그들에게 황제국임을 인식시키고 그 관계를 통해 조공을 받고 답례를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발해의 상경성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상경성의 둘레는 16km에 달하여 이는 조선의 한양과 비슷했으며 중앙으로는 110m에 이르는 주작대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듯한 도로의 설계는 상경성이 계획도시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성체계는 장안성을 모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헤이조코의 성도 마찬가지인데 이를 근거로 국내 한 학자는 발해의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니라고 반박하였습니다. “당의 지방성 가운데 상경성과 크기가 비슷한 대형 성들에는 주작대로와 같은 중앙대로가 없고, 궁이나 관청이 성의 서북쪽 혹은 서남쪽에 치우쳐 있다”며 만약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면 장안성의 등급을 넘으면 안되나 상경성은 그 예에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상경성은 20만의 인구가 사는 황제국 발해의 수도였으며 이러한 배경에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발해의 영토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아마 더 넓지는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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