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은 왜 도적이 되었나.

2023. 1. 2. 08:21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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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서울만화모형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임종열씨가 만든 이두호 원작 임꺽정 모형.

유명한 도적이 있었다는 것은 해당 시기가 평안하지 않은 시대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홍길동, 장길산, 임꺽정같은 인물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부정부패가 심했다는 것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 중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가 고향으로 어떠한 과정으로 도둑이 되었는지는 잘 알려진 바 없습니다. 다만 위와 같이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먹고 살기 힘든 현실적인 문제가 부딪혀 도적이 되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그에 대해서 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록에 따르면 임꺽정은 날쌔고 용맹스러우며 교활한 면이 있는 인물이라 했으며 그와 함께한 도둑들도 모두 민첩하고 잔인했다고 합니다. 사서의 기록이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실록에 대한 그의 첫 기록은 바로 성의 포도군관 이억근이 임꺽정을 추적해 체포하려다가 도적들에게 오히려 해를 당해 죽은 일이었습니다. 그 때가 1559년경의 일입니다. 물론 도적이 있었던 것은 당시로서는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나 임꺽정은 좀 달랐습니다. 도적이 포도관을 죽인 건 조선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당시 죽은 이억근은 수많은 도적을 잡은바 있는 포도관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 했습니다. 임꺽정의 난은 조선 건국 이후 최초의 난이자 조직적이고 꽤 긴 기간 지속된 저항이었습니다. 
조선조정에서는 임꺽정을 잡기 위해 꽤나 많은 포상금을 내걸었습니다. 신분상승을 약속했으며 임꺽정을 잡은 대가로 얻은 재산을 지급할 것이며 이를 잡은 수령은 당상관으로 승진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별 소득은 없었습니다. 임꺽정을 잡기 위해 동원된 토벌군은 임꺽정부대를 포위하고 그들을 뒤쫓다가 오히려 그들의 작전에 말려들어 패퇴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동원된 관군의 숫자가 500여 명이라고 하니 임꺽정부대의 병력도 이와 준하는 숫자이거나 이보다 많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특히 이들이 관군을 상대로 저항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보력에 있었습니다. 토벌에 나서면 백성이 되어 숨어버리고 아니면 역습을 가해 관군을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심지어 지역의 아전과 백성들이 임꺽정일당과 연결되었다고도 하니 조선정부로서는 조직화된 임꺽정 부대를 상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임꺽정 부대는 대낮에도 버젓이 활동하며 관아를 습격하고 살인과 약탈을 자행하였습니다. 이에 골머리를 앓은 수령들은 가짜로 임꺽정을 잡아 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 임꺽정은 어떠한 모습일까 하지만 사실 임꺽정에 대한 이미지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골이 장대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은 그야말로 산적이라는 이미지에 임꺽정을 덮어씌운 우리들의 상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당시 황해도에는 외국난민이 유입되고는 했는데 그 중에서 몽골계 시베리아 유목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실록에서는 이들을 달단이라고 했는데 일명 타타르입니다. 세종 때에는 이들을 신백정이라 하여 양인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이런 난민들이 조선에 정착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백정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백정하면 도축업을 떠올리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직업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악기 연주, 노래 등 재주를 부리며 구걸 유랑하는 사람은 창우, 사형집행을 맡는 사람을 회자수(망나니), 가죽신 등 피혁제조업에 종사한 사람은 갖바치, 임꺽정은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서 바구니 같은 것을 만드는 일을 한 고리백정으로 추정됩니다. 
임꺽정은 임거정(林巨正), 임거질정(林居叱正)이라고 불렸습니다. 거질정은 ‘거친놈’의 한역이라고 합니다. 다만 그가 태어날 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머리가 아닌 다리부터 나왔다고 하며 그리하며 부모는 ‘거꾸로 나왔더라도 바르게 살으라’는 의미로 ‘꺽정’이라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가 도적이 된 이유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밝혀진 바 없지만 당시 그가 살던 황해도 봉산은 논농사가 어려운 갯벌지대로 갈대로 삿갓이나 밥그릇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던 곳이었습니다. 어려운 살이에 극심한 흉년과 전염병으로 인해 시체가 들판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운 살림에 열받게 한 것은 권세가들의 횡포였습니다. 특히 백정이라는 특수한 계층에 대한 수탈도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6세기부터 국가재정에 문제가 생겼고 이로 인해 백정같이 가장 만만한 계층에 대한 수탈이 심해집니다. 백정은 신량역천으로 대우받았고 권력가들의 착취가 이들에 대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타타르인들은 북방시베리아 게통의 유목민 계층으로 당시 토착해 살던 조선인들과는 외모가 달랐고 그러한 점이 이러한 차별을 부추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을까. 당시 조선의 실세로 윤원형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당시 왕인 명종의 외삼촌으로 즉 왕의 엄마의 친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왕 대신 어머니인 명성황후가 섭정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윤원형의 권세가 더욱 심했습니다. 당시 임꺽정의 동네에서 대형 토목공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윤원형이 벌인 사업에 농사일에 바쁜 백성들을 강제 동원시킵니다. 그리고 노동의 대가는 없었습니다. 그럼 윤원형이 벌인 사업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간척지 개발입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농법이 개발되고 수리시설이 발달하면서 간척지 개발이 활발해졌고 이것이 성공하면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황해도 간척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윤원형입니다. 
그런가 하면 일대의 버드나무군락지가 내수사의 것으로 들어갑니다. 내수사는 조선 시대에 왕실 재정의 관리를 맡아보던 관아로 해당 토지를 국유화시킴으로서 백정이나 농민이 버드나무 가지를 가져갈 때에는 돈을 내라고 한 것입니다. 버드나무를 그냥 채취해서 만들어 팔 던 일을 하던 백정계층은 황당할 따름이었습니다. 당시 황해도 지역의 관리들 상당수가 문정왕후의 친척들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왕실에 의한 횡포는 명종 대에 심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명종이 어려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했는데 이는 정치적 부작용을 불러왔습니다. 문정왕후는 내수사의 기능을 강화하여 임금에게 직통으로 보고 하는 권한을 주었고 형옥을 설치하여 죄인의 취조와 심문까지 행하는 막대한 권력기관으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이런 내수사는 강화된 권력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재산을 수없이 빼앗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인들도 백성들이 공물을 바치는 방납제도를 이용하여 횡포를 저질렀습니다. 본래 공물은 고을 수령이 거두어 나라에 바쳐야 하는데 권세가와 결탁한 상인들이 이 일을 대신하였고 공물을 먼저 납품한 뒤, 백성에게는 그 값은 수 백 배 부풀려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명종이 재위하는 기간 동안 토지세가 26만 석에서 10만석으로 줄었고 관리들의 녹봉조차 제대로 주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또한 불교에 빠진 문정왕후는 경기도 양주 회암사의 불사에 들어간 돈을 내수사의 돈으로 충당하니 이것들도 아마 백성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러다 보니 굶어죽지 않기 위해 내수사의 노비가 되거나 유랑민이 되거나 도적이 되는 일도 많았습니다. 


"도적이 불처럼 일어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중략) 백성들은 곤궁해져도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너도나도 죽음의 구덩이에 몸을 던져 요행을 바라고 겁탈을 일삼으니, 이 어찌 백성의 본성이겠는가." -명종실록, 명종 14년 3월.
하지만 임꺽정은 어디까지나 도적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대변하는 탄관오리를 혼내주는 정의의 대변자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명종실록』에도 백성들을 약탈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부해들을 산채에 버려두고 기생과 정을 맺는다던가 첩을 두고 향락에 젖어 사는 소설 속이라 하더라도 임꺾정의 모습은 의적이라 보기 어렵고 아마 실제로는 더더욱 도적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임꺽정은 결국 토벌군의 대대적인 작전과 식량과 무기 보급 어려움 속에서 결국  황해도 토포사 남치근(南致勤)에게 체포당하면서 3년여에 걸친 임꺽정의 난은 일단락됩니다. 비록 의적은 아니었지만 지배층의 수탈에 저항항 임꺽정의 행적을 통해 백성들은 대리만족을 느끼며 백성들의 마음 속으로는 그를 의적으로 탄생시켰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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