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해역의 생물학사전 자산어보
2023. 1. 10. 07:47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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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에 완성된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당시 7년간 집필한 해양생물학 사전으로 해양 생물의 형태, 생태, 요리법, 효능 등이 기록된 책입니다. 현대에도 흑산도는 어업의 전진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미 200여 년이 앞선 시대에 이 흑산도 부근의 생태계에 대한 해양총서를 남겼습니다. 그럼 『자산어보』는 어떤 책일까.
조선시대 해양에 관한 책은 1803년(순조 3) 김려(金鑢)가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학서(魚類學書)의 『우해이어보』가 있으며 이 책은 남해안 진해 부근의 어족에 관한 것을 중심으로 연구한 책입니다. 그리고 1820년경 서유구(徐有榘)가 저술한 어류학(魚類學)에 관한 기술서인 『난호어목지』가 있으며 이 책은 서유구가 난호 지방의 어족에 관하여 조사한 책입니다. 그 중 『자산어보』는 조선시대의 서적 중 가장 많은 해양생물에 관해 기록해 놓았으며 여기에는 물고기뿐만 아니라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에 대해 적어놓았습니다. 그에 따라 원래 책 이름도 『해족도설』이었습니다. 이 책은 원본 대신 7권의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책의 배경은 명물학이라는 학문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명칭을 통해 사물의 성질을 알고 그 이치를 이용해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고자 하는 것이 바로 명물학입니다. 그리하여 관찰한 생물에 이름을 짓고 이를 관찰, 분류하고 기록한 것입니다. 정약전 역시 생물을 관찰하여 그 특징을 살려 다른 명칭으로 생물의 이름을 기록해 놓았는데 예를 들면 고등어는 벽문어, 곰치는 해점어, 가리맛조개는 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자미는 소접, 흑대기는 전접, 참서대는 장접, 각시서대는 우설접이라 이름지었는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는 생물의 맨 끝에는 ‘접’이라는 글자를 붙였습니다. 이렇게 당대 명물학은 완성된 학문이라 생각되더라도 그 학문에 덧붙여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었고 따라서 유배를 가더라도 그 상황에서 연구를 진행하여 책을 남겼으니 『자산어보』도 그러한 움직임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정약전은 1801년 가톨릭박해사건으로 알려진 신유박해와 화사영 백서 사건으로 흑산도로 유배와 이 책을 썼습니다.
『자산어보』의 특징은 생물들을 분류, 체계화시켜서 소개하고 있는데 인류(비늘이 있는 어류), 무린류(비늘이 없는 어류), 개류(딱딱한 껍질이 있는 어류), 류(물고기가 아닌 수중 생물)로 분류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산어보』에서는 총 55류 226종에 관해 생물들을 소개합니다.
‘길이는 20~30자 정도이다. (중략) 뿌리를 뽑아 거꾸로 걸어 놓으면 마치 수천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버들 같다. 색은 까맣다.’ 『자산어보』 잡류 해말
‘이 태가 성숙해지면 새끼가 태어난다. 새끼상어의 가슴 아래에는 각기 하나의 태와 알이 있다. 크기는 수세미와 같다.’ 『자산어보』 사어(상어)
‘추자도 부근에서는 5월부터 잡히기 시작하여 7월에 자취를 감추며 8,9월에 다시 나타난다. 흑산 바다에서는 6월에 낚시에 걸리기 시작하여 9월에 자치를 감춘다.’ 『자산어보』 벽문어 (고등어) 회유시기 기록
그는 『자산어보』에 기록을 남김에 있어 육안으로 관찰하여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으며 뿐만 아니라 해부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도 수록되어 그가 해부를 직접 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고등어의 회유경로를 수록해놓았으므로 해양생물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넣고자 했습니다. 또한 현대 흑산도는 홍어의 산지로 유명한데 『자산어보』는 홍어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 ‘수놈에는 양경이 있다. 그 양경이 곧 척추다. 모양은 흰 칼과 같은데, 그 밑에 알주머니가 있다. 두 날개에는 가는 가시가 있어서 암수가 교미할 때에는 그 가시를 박고 교합한다. 낚시를 문 암컷을 수컷이 덮쳐 교합하다가 함께 잡히기도 한다. 결국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간음 때문에 죽어 음(淫)을 탐내는 자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자산어보』
‘암놈은 알 낳는 문외에 구멍이 하나 더 있는데 안으로 구멍 세 개와 통하고 그중 가운데 구멍은 장의 양쪽으로 통하면서 반을 형성하고 있다. 대 위에 알 같은 것이 있는데 이 알이 없어지면 태가 만들어지면서 새끼가 형성된다. 태 안에는 각각 4, 5마리 새끼가 만들어진다’ 『자산어보』의 홍어에 대해서는 정약전의 해부기록을 알 수 있으며 만성 복결병(腹結病)이 있는 사람은 홍어 삭힌 것으로 국을 끓여 먹으면 더러운 것을 배출시키고 숙취를 해소하는 데 매우 좋다.‘라고 기술해 놓았으니 정약전은 민간요법도 이 책에 수록해 놓았습니다.
‘나주 부근에 사는 사람들은 썩은 홍어를 좋아하는데 기호는 같지 않다.’ 『자산어보』 무인류
그리고 흑산도의 홍어는 정약전 살던 조선시대 후기에도 이미 삭혀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청어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습니다.
‘영남산 청어는 척추골수가 74마디이고 호남산 청어는 척추골 수가 53마디이다.’ 『자산어보』
같은 청어라 하더라도 사는 지역에 따라 뼈의 수가 다르다는 것은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록들은 정약전 혼자 오롯이 관찰하고 적은 것만은 아닙니다. 『자산어보』에 있는 내용들은 현재 흑산도 주민들도 알고 있는데 이는 주민들이 『자산어보』를 알고 지식을 습득한 것이 아니라 정약전이 흑산도 주민들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알아낸 것입니다. 그가 지은 『자산어보』가 어민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독자층도 한정적이었을 것이고 유학자라는 체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자산어보』을 집필한 것은 순전히 어민들을 위한 지식을 책으로 남기기 위한 자기희생이었고 또한 이러한 분야에 관심있을 극소수의 양반들에게 새로운 문학세계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어민들 사이에서 구전되던 지식들을 모아 체계화하고 학문화하여 이를 후대에 전하고자 했는데 구전되는 지식인만큼 시대에 따라 없어질 수도 있으니 그것을 우려했을 것입니다. 유학자인 그는 이를 좀 더 체계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검증하고 사실과 지식을 책으로 남기고자 했으며 유학자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이 책을 저술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약전 자신은 집필의도에 대해 치병(治病, 질병치료), 식량(食糧 해양 동식물을 이용한 음식), 이재(理財 재물을 잘 다스림), 작시(作詩 바다를 통한 문학적 소양)를 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당시 양반이던 정약전이 물고기를 잡고 배를 갈라보고 했을까 의문이 듭니다. 그를 옆에서 도와준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의 외로운 저술작업에 장창대라는 사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섬 안에 창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함께 묵으면서 물고기 연구를 계속했다.’
뿐만 아니라 심해에 사는 아귀가 먹이사냥하는 모습과 해파리의 물속 생태 모습, 그리고 상어의 교미와 출산과정을 담았으니 이는 물속을 직접 탐험하지 않고는 알기 힘든 내용입니다. 당시에는 흑산도에 해녀들이 있었고 그들도 자산어보 집필에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 『자산어보』는 단지 옛날의 기록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지구의 해양 온도를 올라가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의 해역은 그 정도가 가장 빠르다고 합니다. 『자산어보』에서는 조기와 청어를 기록해 놓았는데 이를 포함한 30여종의 물고기가 현재 흑산도에서는 볼 수 없으며 열대성 범돔과 제주도에 살던 자라돔같은 새로운 물고기가 출현했으니 『자산어보』를 통해 해양생태계의 변화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100년 200년 이후를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자산어보』의 필사본이 전해지는 것은 드라마틱합니다. 정약용은 자신의 형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가 한 장 한 장 뜯겨 벽지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에 정약용은 제자 이청에게 필사하도록 하였고 그러면서 이청은 필사에만 그치지 않고 본초강목같은 문헌들을 참조하여 주석을 달았습니다. 오랜 유배생활 끝에 유배지에서 삶을 마감할 정도로 그의 인생은 행복했다 할 수 없겠지만 200여 년이 지난 21세기 그의 기록물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현대인들에게 큰 감흥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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