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토종견 삽살개
2023. 5. 1. 18:57ㆍ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1910~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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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정승 중에 우리에게 익숙한 황희가 있습니다. 황희의 눈빛이 어찌나 강한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이나 동물이나 기가 팍 꺾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하루는 개와 눈 맞추고 한참을 보다가 ‘나도 이제 늙어서 죽을 날이 다 되었구나.’ 한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 눈싸움을 벌이던 개가 바로 삽살개였습니다.
삽살개는 털이 긴 우리나라 토종개로 흐트러진 긴 털이 눈 앞을 가리어 덮여 있는 개입니다. 삽살개는 우리나라에서 199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삽살개는 한반도의 동남부 지역에 널리 서식한 개로 삽살개(삽사리)라는 이름은 귀신이나 액운을 쫓는 뜻을 지닌 ‘삽(쫓는다, 들어내다)’·‘살(귀신, 액운)’개라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본래 티베트에 있던 개가 우리나라에 정착하여 토종개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긴 털 때문에 해학적이기도 한 이 개는 가사와 민담, 그림 가운데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요. 신라시대에는 주로 귀족사회에서 길러오다가 신라가 망하면서 민가로 흘러나와 서민적인 개가 되었으며, 오랜 세월 우리민족과 더불어 애환을 같이 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려 동물 중에 가장 가까운 동물을 꼽으라면 개일 텐데 그것은 우리 조상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을 여러 곳에서 개의 모습을 그려남겼고 그것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상당히 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삽살개도 우리 선조들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김두량이 그린 그림으로 그림의 개는 금방이라도 누군가에게 달려 나갈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개가 삽살개로 불린 이유는 다른 화가 8명의 그림과 함께 ‘제가명품화첩(諸家名品畵帖)’에 장첩 되어있는데 후대 소장자가 김두량의 개 그림에 대해 “내가 방(尨) 그림 한 본을 구했더니 필세가 발랄하고 묘하다”고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고 여기서 방은 삽살개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김두량은 임금에게 보여주었는데 당시 영조는 이 그림을 말없이 바라보더니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넣었다고 합니다.
‘사립문을 지키는 것이 네 임무거늘 / 어찌하여 낮에 또한 여기에 있느냐 / 계해(1743년, 영조19) 6월 초하루 다음날 김두량이 그림’
그 외에도 신라의 왕자이자 승려인 김교각 스님은 신라에서 중국으로 넘어갈 때 몇 가지 물건을 가지고 갔습니다. 오차송이라는 소나무 종자, 황립도라는 볍씨, 금지차라는 신라 차, 그리고 흰 삽살개 한 마리였고 이 개는 선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개는 김교각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충실히 스님을 따르고 지켰다고 합니다. 9세기 이후 중국에서 그려진 지장보살도에는 대개 이 선청이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이분을 ‘지장보살’ 혹은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인식하였으니 따라서 10세기 이후에 그린 불화의 지장보살은 모두 김교각스님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렇듯 황희 정승과 눈싸움을 벌이던 삽살개지만 주인 앞에서는 반드시 꼬리를 내리는 개였고 집 지키기를 잘 하는 개였습니다. 그리고 낯선 발소리를 먼저 듣고는 이를 가족에게 먼저 알리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많이 등장하는 개가 바로 삽살개입니다.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1994년 9월 29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05호로 지정된 '의구총(義狗塚)'이란 비석이 있습니다. 무명자는 “개도 주인 위해 목숨 바칠 줄 아는데(狗能爲主死·구능위주사), 사람이 개만 못해서야 되겠는가(人可不如之·인가불여지)”라는 말로 글을 맺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옛날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 누워 잠이 들자 그 옆에 개가 지키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들불이 번져오자 개가 짖으며 주인의 옷을 잡아당겼지만 주인은 끝내 깨지 않았습니다. 개는 강으로 달려가 제 몸을 물에 담갔다가 와서 꼬리로 주인 주위의 풀을 마구 두드렸습니다. 이렇게 계속 오가며 풀을 적시니, 풀이 축축해져 불이 가까이 타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한참 지난 뒤에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 보니, 개가 지쳐 곁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주인이 의롭게 여겨 개를 묻어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삽살개는 작자미상의 고전소설 『숙향전』에도 등장합니다. 이 『숙향전』은 조선 후기의 애정소설로 구성이 복잡하고 등장인물도 다양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삽살개는 숙향이 마고할미의 주막에 살게 되었을 때 사는 청삽사리라고 합니다. 삽살개는 마고할미가 사라지고 숙향 혼자 남게 되자 충실하게 숙향을 보살피고 훗날 이선에게 편지를 전하고 답장을 받아오는 개로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도적이 올 때 미리 알고 숙향을 피신할 수 있게 했으며 역할을 다한 뒤에는 자신을 묻을 장소를 알려준 후 그 곳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의 여러 곳에서 함께 해온 개가 바로 삽살개입니다. 우리에게 토종개하면 진돗개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그에 못지않게 역사 속에서 삽살개가 차지하는 지분은 상당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삽살개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것은 바로 일제 강점기, 당시 일제는 자신들의 토종개를 보호하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아키타견, 기주견, 훗카이도 견등을 보호하기로 한 것입니다. 반면 일제는 한반도의 개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을 취했을까. 진돗개에 대해서는 1938년 일본 정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일본과 조선이 한 몸이라는 일명 내신일체의 뜻에 따라 일본의 토종개와 닮은 조선의 토종개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입니다. 반면 삽살개는 보호받기는커녕 오히려 학살의 피해견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삽살개는 일본의 토종개와 전혀 생김새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일제는 진돗개 외에 다른 토종견들을 모조리 족보없는 들개로 취급하여 마음 놓고 잡아들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견피의 판매 제한에 관한 법령'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조선 안에서 개의 가죽을 판매하는 것을 일제가 독점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었고 일본 군인들의 추위를 막아줄 방한용 군수품을 만들기 위해 조선의 개 가죽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조선 땅에 흔했던 삽살개가 긴 털을 가진데다가 방한과 방습에 탁월한 가죽을 가졌다는 이유로 학살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정책 때문에 삽살개뿐만 아니라 동경견도 역시 표적이 되었습니다. 동경견은 1932년 일본은 자신들이 상서로운 짐승으로 여기는 고마이누와 닮았다는 이유로 동경이를 모조리 잡아들여 씨를 말린 것입니다. 사실 일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신성시여기는 고마이누와 닮은 개가 한반도에는 흔하다는 것이 일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으로 보입니다. 신라시대 때부터 사육된 경주개의 특징은 꼬리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민간에서도 꼬리가 없다는 점 때문에 ‘병신’이라고 천대받았는데 일제의 정책 때문에 아예 사라져간 것입니다. 그렇게 일제는 최소 100만~150만 마리의 토종개를 학살했고 이러한 유례없는 토종개 학살행위에 삽살개는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광복을 맞이하고 삽살개 보존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1969년 경북대 교수진이 산간벽지에서 삽살개 탐색작업을 진행한 것을 시작으로 1985년 하지홍 경북대 교수팀이 삽살개 복원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삽살개는 1992년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되면서 관련 연구가 더 활발해졌고 2013년에는 3,000마리까지 번식에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삽살개가 현재는 우리나라 땅인 독도를 지킴이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 독도 이주 1세대 ‘동돌이’ ‘서순이’ 커플을 시작으로 2대 ‘곰이’와 ‘몽이’, 3대 ‘독도’와 ‘지킴이’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요. 초기엔 독도 환경오염 비판 탓에 추방될 뻔했으나 독도경비대원들의 간청과 국민의 옹호 여론에 힘입어 독도 정착에 성공하였습니다. 염분이 많은 동해의 바람과 동물 몸에 달라붙는 깔따구 탓에 적응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씻어낸 것입니다. 우리나라 토종개인 삽살개가 독도에 성공적으로 정착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실효지배하는 독도에 일제의 개학살정책에도 살아남은 삽살개가 이제 그들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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