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강제 징용 현장 군함도 하시마섬

2023. 6. 6. 19:3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1910~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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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나면 그 나라의 국민들이 고통 받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일제강점기 전시상황에서 우리 선조들이 겪었을 고통은 더 했을 것입니다. 일본은 중일전쟁(1937년)을 벌이면서 많은 전시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식민지 조선인들을 강제로 전선이나 탄광으로 내몰기 위한 악법을 만들었습니다. 국가총동원법(1938년 4월)으로 전시 총동원 체제를 다져 나갔고 이어 국민징용령(1939년 7월)이 나오고 그해 10월부터 식민지인 조선과 타이완에서 이 법이 적용되었고 근로보국대, 여자근로정신대 등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려갔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강제적 군 입대는 육군특별지원병제(1938년 4월), 해군특별지원병제(1943년 7월), 학도지원병제(1943년 10월), 징병제(1944년 4월)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이들 법령들 가운데는 ‘지원’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일제가 식민지 조선의 인력을 효율적으로 수탈하는 것이었고 일제 말기에 얼마나 많은 식민지 조선 사람들이 강제 동원의 희생양 15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였습니다. 그 내역은 군함도(하시마)를 비롯한 석탄광산 60만, 미쓰비시중공업을 비롯한 군수공장 40만, 토건 30만, 금속광산 15만, 항만운수 5만 명 등입니다. 그 중 ‘죽음의 섬’ 군함도(하시마) 탄광에서도 소년 광부들이 혹사당했습니다. 나가사키 항구에서 18km 떨어진 하시마는 탈출이 불가능 해 ‘죽음의 섬’이란 악명을 얻었습니다. 군함처럼 보인다 해서 ‘군함도’란 이름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졌으며 그곳에도 14살, 15살, 많아야 16살이던 소년 광부들이 있던 것입니다.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시에 소속된 섬으로 일본 근대화의 상징으로 2015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본래는 매우 작은 섬이었지만 매립공사를 통해 2배로 확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면적이 6.3헥타르, 해산선의 둘레가 1.2㎞ 정도로 작은 섬입니다. 19세기 후반 하시마에서 탄광이 개발되어 관심을 받았으며 매우 좋은 품질의 강점탄이 채굴돼 일본의 산업화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섬은 1890년부터 미쓰비시 재벌이 소유했습니다.  미츠비시사는 이 섬 둘레를 높이 약 10m 높이로 콘크리트 공사를 한 뒤 많은 사람들이 살게 하기 위해 고층아파트를 지었습니다. 이  섬의 남서부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7층 건물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 아파트는 지난 1916년 지어진 일본 최초의 철근 고층 아파트. 탄광직원들의 사택으로 이용됐으며 모두 140가구가 살 수 있었습니다. 또 높이 7~9층의 아파트 5개 동이 아직 형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좁은 섬은 많은 사람들이 살고 일할 수 위해 주로 고층건물을 많이 지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섬 내부에 하시마 탄광을 개발하고 지하 1㎞가 넘게 파고 들어가 채굴하기도 했습니다. 이 섬은 1960년대까지는 광업도시로 번영을 누렸으며 많을 때는 4000명이 넘는 사람이 살던 섬입니다. 전쟁 막바지인 1945년 섬 전체 인구는 약 5300명에 이르렀는데 비좁은 땅덩어리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관청과 신사, 영화관, 수영장, 병원, 미용실, 파칭코, 상점와 고층 아파트 등 필요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일제는 석탄을 생산할 인구수가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한국에 실시된 '국가 총동원법'을 통해 한국의 젊은이들을 강제 징용했습니다. 일본이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 하시마에 강제로 끌려온 한국인이 많게는 8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며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1925년부터 1945년까지 122명의 조선인 강제노역자가 숨졌다고 하였습니다. 끌려온 이들은 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탄광에서 강제노역하며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들은 해저 700m에 있는 탄광에서 가혹한 노동과 학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 천장의 암석이 떨어져 내리는 낙반 사고로 한 달에 4~5명씩은 죽어나갔다고도 합니다. 굶주림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이들 중 일부는 탈출을 시도했지만 바다에서 목숨을 잃거나 도중에 잡혀 맞아 죽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하시마섬은 5천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설은 기본적으로 일본인을 위해 만들어졌고 조선인이 살았던 주거공간은 태풍이 불면 바닷물이 들어차는 건물 최하층이나 지하방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도 탄광산업은 이어졌지만 석유의 중요성이 커진 1960년 이후에 섬은 점차 쇠퇴를 거듭해 1974년에 폐광하고 거주하던 모든 사람들이 섬을 떠났습니다.

한편 2022년 12월 1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이행경과보고서’에서 일본 정부는 “하시마섬의 탄광 노동은 모든 광부들에게 가혹했다. 조선인에게 더 가혹했다고 신뢰할 만한 증거는 지금까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한반도 출신 노동자는 일본 출신과 동일한 환경에서 일했으며, 노예 같은 노동을 하도록 강제당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보고서는 유네스코가 하시마섬 탄광 등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일본 정부에 “강제동원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후속 조치를 취하라”고 경고한 데 따라 제출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2020년에는 일본의 자유보수 계열 신문사인 산케이는 지난달 21일, ‘[외교 안보 취재] 날조 사관에 흔들리는 군함도, 옛 도민의 증언 동영상으로 반증(【外交安保取材】ねつ造史観に揺れる軍艦島 元島民の証言動画で反証)’ 이라는 제목의 ‘하시마회’와 ‘산유국’ 관련 기획기사를 게재한 바 있습니다. 하시마회는 나가사키 시 하시마 탄갱(통칭 ‘군함도’)에서 전시기를 보냈던 옛 도민들이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한반도 출신의 조선인과 함께 했던 생활을 증언한 다수 동영상들 제작해 산유국의 웹사이트인 ‘군함도의 진실-조선인 징용공의 검증(軍艦島の真実-朝鮮人徴用工の検証)’에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산케이는 “옛 도민들은 ‘차별과 학대 등은 없었다’고 말하며, 가난하면서도 서로 협력하여 살았던 실태를 떠올렸다”고 전했습니다. 옛 도민들에 따르면 한반도 출신자들은 하시마섬에서의 잔치에서 한반도 지역 민족의 의상인 ‘치마저고리’를 입고, 외치면서 원을 지어 춤을 췄다고 합니다. “쾌지나 칭칭 나네”라고 하면 “그래, 좋다, 좋다”하면서 추임새도 넣는 등, 이러한 장면은 그간 군함도와 관련 우리 한국 측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다른 것입니다. 진실은 무엇일까.
‘모기는 모기대로 덤비고 도저히 살 수 없고, 그냥 밤네는 영양실조로 다리에 쥐가 나고, 그냥 사느니 죽는 것만 못하다는 형색이었지요. 그것이 1년만 지속되었으면 다 자살하든지 어떻게 해버리려고 가졌던 거예요.’ -최장섭 (하시마 섬 강제동원 피해자)-
이곳에서 탈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는 처음 약속과 달리 너무 적은 임금 혹은 저축을 명목으로 임금을 제 때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본광산협회가 펴낸 「반도인 노무자에 관한 조사 보고」에 따르면, 한인 노동자의 월수입 평균 70.67엔 중 저금 등의 명목으로 32.09엔이 공제되었으며 38.58엔 중 5엔만 지급된 채 나머지는 회사의 친목단체 회비로 나가거나 예금하여 사업장 노무계에서 보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돈을 벌어 돌아가거나 가족들에게 돈을 부치는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여기서 일한 사람들은 원자폭탄 피핵가지 겪었습니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복구작업에 투입되었으며 시체를 치우고 청소를 하는 과정에서 방사능 피폭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2017년 8월에는 일본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마이니치신문은 8일 미쓰비시중공업이 1948년 6월 나가사키 지방 법무국에 한국인 근로자 3418명의 명부를 제출하고 미지급 임금을 공탁했으나 법무국이 이를 폐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지급 임금은 약 874만1029원입니다. 마이니치신문은 명부에 있는 한국인 근로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원자폭탄 투하해 피폭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명부는 일본 정부가 피폭자에게 발부하는 '피폭자 건강수첩'의 중요한 증거 자료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일본이 군함도에 이어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졌던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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